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4-07-13   1471

[인터뷰] 사진작가 이시우

비무장지대에서 오끼나와까지 유엔사 해체를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사진작가라 불리는 이시우 씨의 손에는 정작 사진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사진작가에게 사진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받은 어색함은 도보명상을 끝까지 완수하려는 그의 결심을 읽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민통선과 미군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수많은 사진을 찍어온 그로서는 이번 도보명상에 사진찍기가 꼭 들어갈 필요는 없으리라.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의 허름한 터미널에서 만난 이 작가는 ‘아침밥은 먹었냐’며 김밥부터 배불리 먹게 했다. 식욕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먹어두길 백 번 천 번 잘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작가가 오늘 하루 걷는 거리만 해도 40-50km. 이렇게 매일 걸어 거의 석달이 되는 기간동안 걷기로 결심한 거리는 총 3,000km. 서울과 부산을 일곱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할 거리이다.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 명상’은 지난 6월 20일부터 시작됐다.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유엔사후방기지가 있는 일본까지 걷는다. 이 작가가 머물고 있는 강화도 집에서 휴전선을 따라 강원도 고성까지, 다시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사세보기지. 사세보에서 오끼나와로 건너가 나머지 3개의 유엔사 기지를 따라 걷는다.

직접 손으로 쓴 ‘유엔사 해체에 대한 걷기 명상’ 티셔츠를 입고, 텐트와 침낭을 넣은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걸음을 한 지 열흘째. 까실까실한 수염이 뒤덥인 턱이 그의 도보여정을 말해줄 뿐, 그의 얼굴은 생동감과 넉넉한 웃음이 배어 있었다. 이 작가와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하면서 정전협정 50주년의 최고숙제를 유엔사 해체라고 외치는 그의 이야기가 한 올 한 올 풀어져 나왔다.

그와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유엔사의 존재로 한일간 국경은 무의미한 것

– 유엔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유엔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민통선을 돌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해왔다. 민통선과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가 유엔사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연관이 되어 있나?

“대인지뢰 피해자들의 경우도 유엔사가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는 시기에 피해를 당했던 분들이고, 경의선 개통도 유엔사가 최종 사인을 해야 남북간의 철도도 연결될 수 있다. 또한 서해교전이 보통 남북간 교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방 한계선을 관할하고 있는 것이 유엔사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 문제도 유엔사의 문제이다.”

–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이 유엔가 가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바보같이 작전지휘권을 다 넘긴 후, 유엔사는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관할하며 남과 북을 분할통치하는 실질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한국과 일본은 우리에겐 국경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미국에겐 하나의 전쟁터일 뿐이다. 유엔사가 한미군사동맹과 일미군사동맹을 연결하는 상위체계로 미국의 패권이 극동지역에 작용할 수 있도록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유엔군보다는 한미연합사 문제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한미연합사령관은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지만 유엔사령관의 직함으로는 여전히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유엔사가 해체되었다면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한국정부의 작전지휘권내에 있다는 말이 타당하겠지만,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유엔사는 아직 해체되지 않았다.”

미국의 전략이 아닌 한국의 요구에 의한 해체여야

– 유엔사 해체 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주한미군의 군사기구 중 유엔사는 가장 폭넓은 범위에서 막강한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다.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한미관계의 변화만을 가져올 것이지만 유엔사의 해체는 남, 북한, 미국, 일본과 유엔 등 국제적인 차원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유엔사의 해체는 평화협정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종식에도, 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한 자주적 군사주권의 확립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 유엔사 해체가 한미동맹을 깰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학자들은 유엔사 해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이것이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해 온 것이고, 마치 한미동맹을 깨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부담감도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유엔사 해체가 곧 한미동맹의 해체라고 보는 것은 과장된 해석이고, 한미동맹을 유지하더라도 유엔사만큼은 해체되어야 한다.”

– 해결점이 보이나?

“북의 군사적 점령을 상정하고 있는 한국군으로서 북 점령 후 군정을 실시해야 하는 단계의 시나리오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북의 점령주체가 한국군이 아닌 유엔군사령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관계의 차이로 정부에서도 현재 작전통제권 환수를 국정목표로 하고 있다. ”

– 언제쯤 유엔사가 해체될 것으로 전망하나?

“곧 될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재배치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판문점을 지키는 유엔사 경비대의 임무를 한국군에게 전면이양하는 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발표는 때에 따라 이들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 질 수도 있음을 결정적으로 증명한 거다.”

– 그럼 기쁜 것 아닌가?

“오히려 마음이 급해졌다. 김구 선생이 광복군을 꾸려 국내진공을 시도하는 순간 일본의 항복 발표가 있었고, 이 역사적 실기는 해방정국에서 민족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외세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과정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힘이 아닌 미국의 자체논리에 의해 어느 날 유엔사 해체 발표를 듣게 될지 모른다.”

바람결을 따라 걷는 도보명상은 관성과의 싸움

유엔사 해체를 촉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왜 하필 힘든 명상도보를 택했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5월 어느 날 때 아닌 봄 태풍이 불던 밤이었는데요. 차가 다니지 않는 농로를 따라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남풍을 맞았거든요. 순간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유엔사 기지가 있는 곳들을 걸으면서 유엔사 해체에 대해 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혼자 걸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리와 기간이 만만치 않은 만큼 도보명상 제안을 받은 단체나 개인들이 주춤했던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비도 맞고 땡볕더위에도 걷고 산도 탄 날이 더 많았지만 다행히 기자와 만난 날은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선선한 날씨였다. 가는 길도 평지로 그냥 걷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이 길조차도 나름대로 생생하다고 생각한 기자에겐 무리였다. 열흘 동안 지쳤을 만도 한 이 작가는 초지일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듯 했다.

강원도 계곡 물이 시원스레 흐른다. 내려가 보고 싶은 욕심 굴뚝같지만 감히 청하지 못한다. 갑자기 뒤돌아보더니 “내려가서 좀 쉬었다 가죠?” 말을 건넨다. 계곡물을 보자마자 발부터 벗고 담고 발 마사지를 한다. 예상과 달리 이 작가의 발은 물집이나 굳은살은 없고 매끈매끈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결’이 있어요. 바람에도 걸음에도 결이 있어요. 이것을 느끼며 걸으면 쉬워요.”

그는 <민통선 평화기행>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유의 반대가 구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었다. 저항하고 꿈꿀 자유까지 막는 것은, 놀랍게도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관성은 자유와 구속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고 살아 있음의 확인조차 막아버린다.”

이 작가는 오늘도 자신이 관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자유와 만나는 길을 걷고 있다.

못은 80년 동안 철로를 부여안고

자신을 박아 놓고 있었습니다.

때론 포화와 싸우며,

때론 무관심과 싸우며,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과 싸우며…

(글: 이시우)

홍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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