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7-10-25   1435

“국제사회는 남북관계의 급속한 발전 원치 않아” (미래전략연구원 좌담회, 프레시안, 2007. 10. 25)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70>

남북정상회담의 국제정치적 함의

1.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본 입장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교수: 최근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 시점에서 정상회담보다는 핵문제의 해결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번 회담과 한반도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을 먼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Muthiah Alagappa 미국 이스트웨스트센터 연구원: 오늘은 북한 핵실험 1주년이 되는 날이라 들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전에 비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그렇게 많이 끌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2002년의 회담에 비해 이번에 관심이 줄어들었던 이유는 현재 남북 간에 그렇게 획기적인 해결을 볼 만한 사안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전쟁 위험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5~10년 전에는 적지 않은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지만, 많은 요소가 변했습니다.

합의는 상당히 일반적인 선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문서를 보면 평화체제, 평화적인 협력 등 많은 사안을 내포하고 있는 일반적 합의였는데, 그것을 실행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역량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의 역량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인구도 적고 경제력도 작습니다. 남한은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역량이 뛰어나지만, 그래도 스스로 모든 과정을 진행할 만한 역량은 아닙니다. 역량의 확보, 실현 가능한 계획 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제사회는 세 가지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주체도 매우 포괄적입니다만, 첫 번째 우려는 남한이 북한과의 관계를 상호주의를 차치한 채 빨리 진행하려 할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남한이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더욱 강화시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남북대화가 다자적 문제 해결 과정을 저해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사안은 미국이 6자회담과 관련하여 우려하는 점입니다. 핵 문제 등 한반도 전반적인 문제는 남북대화로만 진행되기보다는 6자회담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입장이 달라서, 미국은 핵 비확산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북한의 체제 변환입니다. 일본은 먼저 납치문제이고, 핵 문제도 매우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남한도 그 위협을 느끼고는 있지만 미국과 일본만큼은 아닌 것 같고,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용 단계에 있어서 남북대화가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현재 일본이 좀 소외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역안보구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남북대화가 늘고 관계가 증진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나 정책에는 한계가 있고, 변화가 필요합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 정상회담에 많은 사람들이 저번처럼 큰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중도 별다른 흥분 없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단지 두 번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임기로서는 무엇을 논의하고 선언해도 별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무엇인가를 성취하려 했다면 적어도 2~3년 전에는 실행했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모두 차기 정부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환영할 만한 발전인 것은 분명하나,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시간적인 면, 역량의 면, 관계적인 면에서 과제도 많습니다. 회담에 부정적인 입장은 아닙니다만,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면에는 동감합니다.

합의 내용이 매우 일반적이었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직접 다녀오신 분들도 애매하고 일반적인 합의에 머물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여행이나 서해 문제 등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행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갑자기 하루 더 머물라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첫 만남에서 35가지 사안에 대한 긴 목록을 가지고 논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틀 안에 끝낼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정일로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록을 만들어서 협의를 하기 위해 하루를 더 제안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적용 단계에 오면, 더욱 많은 문제에 봉착할 것입니다. 백두산 여행은 가장 쉬운 사안입니다. 현대에서 이미 테스트를 거쳐 추진하고 있고, 남북 양쪽에 이윤이 생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통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돈을 절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안들은 너무 많은 이슈가 연관되어 있고, 역량도 제한적입니다. 물론 몇몇 기업들은 진출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많은 기업가들이 회담에 참여했고 경제적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려 할 것입니다. 민간 분야에서 이번 회담을 통한 기회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이행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될 것입니다. 더구나 공기업, 즉 철도공사나 도로공사, 토지공사 등은 국회의 동의 없이는 큰 공사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국회에서 승인해야 하는데, 반대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쉽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이 사인했다 해도, 논의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고 장기적 안전성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백승주: 국제사회에서 이번에 지난 2002년 정상회담에 비해 관심이 없었다 하셨는데, 국제사회에서 보기에는 노대통령의 법적인 임기가 4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를 이해하려면 한국의 민족주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통일에 대한 기대와 민족적 감정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와 선언에 대해서도 향후 관계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물론 적용에 많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장기적이고 궁극적 목표에는 부합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약속한 대로 향후 협력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궁극적 목표인 통일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알라가파: 그렇지만 남한에서도, 10년 전에 비해서 지금 국민들은 통일을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고 있어, 한국의 민족주의가 통일과 동일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박철희: 통일은 그래도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거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부가 통일부를 따로 만들어가면서 통일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질적으로 통일을 촉진하는 정책이 실현된 것은 10~15년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예전에는 북한과 동등하거나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훨씬 자신감을 가지고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통일은 근본적인 목표입니다만, 시간을 가지고 진행하며 평화적인 공존으로 시작하여 화해와 협력을 이루려 하는 것입니다.

2. 남북정상회담의 국제정치적 영향

백승주: 선언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전통적 의미의 통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합의 내용이 차기 정부의 부담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작년에도 국회에서 남북 경협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적용 단계에 가면, 국회는 경제적 지원 등에 있어서 부담을 확실히 계산하고 영향을 줄이려고 할 것입니다. 적용 과정의 프로젝트 지원이나 투자 유치 등의 국가 부담을 논의할 것입니다.

앞서 남북 직접대화가 6자회담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남북정상회담은 6자회담의 결과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도 국제사회의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알라가파: 우려되는 점은, 남북 직접대화와 관계가 더 앞서가서 핵문제 해결 과정과 갭이 생기거나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그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합의문을 보면 남북끼리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아직 북한문제는 미국의 남한에 대한 강력한 안보 지원을 전제하고 있는데, 그 체계의 일부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합의가 진행되어 적용 단계에 접어들 경우 일본이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투자와 지원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남한이 성급하게 북한과의 관계 증진을 추구하는 것은 지역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박철희: 국제사회의 고민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먼저 남북대화와 6자회담이 동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고, 또 하나는 북한이 핵을 완전 포기하기 전에 남한의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지금 이루어진 이유는 6자회담 덕분에 관계가 많이 개선되고 정책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압력 앞에서 남한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세가 변했기 때문에 협상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분업이라 볼 수 있으며, 결코 6자회담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2월에 한국과 미국이 협력해서 많은 진전을 이루어냈습니다만, 이후 남한의 입장에서는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너무 협상이 잘되면 남한이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라가파: 지난 회담보다 이번에 관심이 적었던 이유는 많은 결실을 끌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남한이 무엇인가 더 많이 협상하고 양보해서 6자회담을 저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변화된 정책과 진행 과정이 남한의 이러한 시도를 촉진했다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변화한 이유는 첫 번째 정책이 실패했었기 때문입니다.

백승주: 미국 학자들의 그런 우려에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은 6자회담의 참가국으로서 북한의 비핵화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의 비핵화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동시에 남북관계도 증진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그런 논쟁 중에 선순환적 결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북한에 물적 지원을 약속했고 중유를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남한의 지원에 만족하고 6자회담에 열심히 임하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6자회담에서는 핵 시설의 완전한 폐쇄 이후에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이 6자회담 진행을 저해할까 하는 우려가 생겼을 수 있습니다만, 한국 정부나 북한도 6자회담을 충분히 중시합니다.

알라가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의 대화와 6자회담이 서로 잘 조절해서 같이 가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적인 이미지도 우려를 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철희: 이미지는 재정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정책적인 면에서 가장 친미적인 대통령입니다. 수사와 행동을 떠나서, 이라크 파병과 같은 정책적 궤적을 보면 전혀 반미적이지 않았습니다.

알라가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친미도 반미도 아니고, 남한을 위하는 민족적 대통령인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경우도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될 때에는 반미적인 이미지가 유리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고 당선 후에도 그런 태도를 보였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에 맞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한미동맹을 재설정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범위를 벗어나서 더욱 광범위한 관계로 가려는 것이라고 봅니다.

백승주: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 이미지를 이해하려면, 당선 당시의 선거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반미 이미지가 선거에 훨씬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현재 일본은 납치문제를 매우 중시하고 있고, 아베와 고이즈미도 국내에서 납치문제를 부각시켜 지지층을 확보했습니다. 일본의 선거에서는 북한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 이미지도 그런 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앞으로 2~3달 동안 이번 대통령후보들도 반미가 유리할지 친미가 유리할지 계산하여 입장들을 밝힐 것입니다.

3. 핵문제 및 대북한 관계에 대한 전망과 제언

박철희: 비핵화 논의에서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매우 확실한 공동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김정일을 압박해서 항복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압박을 통한 김정일의 항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작은 숨 쉴 틈을 주어 협상하기를 원했습니다. 많은 재량을 주는 것은 아니고 숨 쉴 정도를 허용하고 협상하려는 것이었는데, 물론 김정일이 전혀 예측 불가능하게 나올 경우에는 위험에 빠지게 되는 접근방식이었습니다.

또한, 미국은 이번 이슈에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한국은 상당히 실질적인 접근을 합니다. 미국은 독재자는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정부가 보기에는 비록 독재자라고 해도 그 김정일이 없어질 경우가 더 힘들어집니다. 60년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정상화는 박정희라는 독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북한과는 김정일 단 한 사람과만 이야기하면, 그가 모든 것을 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진행하기 쉬워집니다. 김정일이 없어지면 독재자는 없어지지만, 혼란에 빠진 여러 그룹을 상대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독재는 좋지 않지만, 일단 협상을 하고, 결과가 나쁠 경우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알라가파: 물론 그런 접근도 일리가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독재자가 협상 의지가 있다면 숨 쉴 틈을 주어서 협상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협상으로 해결이 안 될 때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버마의 경우를 보면, 그 동안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정책이었고, 또 하나는 중국이나 인도, 아시아 국가들의 건설적 포용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간 두 가지 다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버마와 북한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억압적이고 군사적 지배입니다. 독재자에게 주어진 작은 숨 쉴 구멍이 그 체제를 더 강화하고, 오히려 협상의 여지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숨 쉴 구멍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2000년과 2007년에 북한이 적어도 6자회담에 나와서 협상할 의사를 보였다는 근거를 듭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북한이 협상에 나올 의사가 생긴 이유는 핵실험이 그들의 자신감을 늘린 덕분이 컸습니다. 남한이나 미국에 비해 북한이 역량은 약하지만, 핵실험 후 일정 정도 자신감을 얻어서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고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일정 정도 일리가 있지만, 숨 쉴 구멍을 주는 것이 김정일을 얼마나 포용해서 협상을 지속하게 하고 효과를 거둘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박철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반드시 합쳐져야 합니다. 미국이 입장을 바꾸기 전에는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이전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은 ‘고의적 무시’였습니다. 그것이 핵실험을 불러왔습니다. 미국이 입장을 바꾸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입니다. 흐름을 보면, 협상의 여지가 주어질 때 예전에 비해 협상 가능한 부분들이 많아지고 북한의 입장이 수그러지는 것이 보입니다. 미국이 입장을 약간 바꿈으로 인하여 북한의 자세도 변화했고, 남한도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물론 한 번에 해결될 수는 없으며, 매우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상호주의가 지켜져야 합니다. 이미 2월의 합의에 기반한 프로세스가 존재하며, 그 원칙과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진행해야 합니다. 단지 제스처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이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백승주: 미국과 한국이 협력한 경제제재 등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중국 모델을 차용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천안문 사태 후 미국은 남한과 협력하여 포용정책(engagement), 확장정책(enlargement)을 써서 중국의 개방을 촉진하였습니다. 이라크 후세인 체제의 경우에는 남한과 같은 존재가 없었습니다. 북한에는 남한이 있습니다. 미국이 남한과 연합하여 경제제재를 하고, 포용정책을 써서 북한을 개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년 가을에 미국이 입장을 바꾸어 대북 관계를 정상화한 후 북한체제에 더욱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지난 27일에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잔혹한 정권 (brutal regime)이라 표현하는 일이 있었는데, 접근방법을 바꾸어 제재보다는 포용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알라가파: 중국과 북한은 경우가 다릅니다. 중국은 처음부터 소련을 의식한 이중 구조가 있었습니다.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1979년에 덩샤오핑이 시장개방을 추진했고,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라이징 파워로 등장했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은 그와 다릅니다. 저는 미국정치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일단 1994년 북한과의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것에서부터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훨씬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조치들은 그렇게 강경하지 않았었고, 북한은 그 후 6년간 핵 시설을 더 확충했습니다.

미국의 전략 변화는 인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이라크에서의 실패 등 기능적 차원에서 정치지형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남한, 일본도 현재는 북한에 어떤 강경한 방책을 원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정책은 변화했지만, 북한은 협력 가능한 체제가 아니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략적으로 정책을 변경하여 협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핵 문제를 해결하여 평화적인 변화를 촉진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비전이 없습니다. 과연 미국이 북한에 약간의 핵무기라도 남겨놓은 상태에서 공존하려 할 지 우려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20개 정도의 핵무기만 갖고 있다면 어떨까요?

백승주: 파키스탄과 북한의 차이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미국은 핵무기를 개발한 파키스탄에 강한 제재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부터는 200억 달러의 지원을 하였습니다. 만약 북한이 미국에 협조적인 자세로 돌아선다면 미국도 북한에 약간의 핵무기가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알라가파: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 되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테러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핵무기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고 방위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핵무기가 공격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엄청난 위협이 됩니다. 갖고 있다는 것보다도 공격용으로 사용할 우려가 있는 점이 문제입니다. 책임감 있는 국가가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는 책임감 있는 국가로 인정했지만, 파키스탄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큰 우려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파키스탄을 용인한 것은 전략적인 사고일 뿐, 지금도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가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도 있고 해서 미국 내에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북한도 책임감 있는 국가로 증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명을 하고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테러국가에 무기를 팔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을 믿고 핵무기의 완전 폐쇄라는 입장을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는 것입니다.

박철희: 바로 그것이 한국이 북한에 대해 우려하는 점입니다. 미국은 핵무기의 존재보다도 그 확산을 막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있는 핵무기 자체의 존재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이 약간의 핵무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군사적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현재 여러 가지로 남한이 우세한 상황을 핵무기의 존재가 불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최악의 경우 절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핵 억지능력을 가지게 되면 일단 숨 쉴 구멍이 생기고, 자신감을 얻어 협상이 지속될 수는 있지만, 자신감이 지속되어 통일이 미루어지다 보면 통일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북한이 그렇게 계속 혼자 서게 만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므로, 한국으로서는 단지 핵확산을 막는 차원이 아니라 완전한 폐기를 진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북한과 핵무기에 대한 걱정은 한국이 더 합니다. 군사전략 차원에서, 북한이 적은 양이라도 핵무기를 숨기고 있다면 2차 공격 능력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한국으로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백승주: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입장에서는, 미국이 6자회담에서 핵확산을 막는 데 관심이 있고 상대적으로 핵 폐기 주장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한국은 핵확산보다도 핵폐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알라가파: 미국도 물론 적은 핵무기라도 남겨놓지 않은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해체가 불가능하다면, 우려하지 않을 만큼 약간 남아있는 것에 대해서는 큰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우 한미동맹은 더 중요해집니다. 95~96년 대만해협 위기 당시, 중국은 북한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중국이 핵무기를 배치했을 때 미국은 핵무기가 아닌 항공모함을 파견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공격할 다른 무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억지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약간의 핵무기를 가진다 해서 군사전략에 그렇게 큰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미관계가 쉽게 변질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핵실험 후 한미간 많은 논의가 오갔고 핵 억지력의 보장도 논의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입장은 모두 같습니다. 물론 어떻게 김정일을 설득하느냐가 진짜 문제입니다.

박철희: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원하고 있다면, 그래도 합리적이고 정치적인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에 어느 정도 가용한 억지력을 허용해주는 것은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북한의 핵시설 수준이 어느 정도 단계인지 확실히 알아내야 합니다. 현재 추측을 하고 있는데, 그 계산이 정말 큰 일입니다.

알라가파: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가정한다면, 향후 10~15년간의 화제는 핵 억지력에 집중될 것입니다. 일본도 북한의 위협을 크게 우려하게 될 것입니다. 남한도 결과적으로는 직접공격보다는 위협을 많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타이완을 보면, 모든 핵 능력을 갖춘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핵 공격을 우려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만, 핵무기의 공격적 사용은 사실 매우 제한되어, 단지 억지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백승주: 매우 유익한 대담이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 좌담은 지난 10일 미래전략연구원에서 백승주 교수의 사회로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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