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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분쟁
  • 2009.03.13
  • 3045
  • 첨부 1


호메이니 혁명 30년 맞은 이란,
"반미 이슬람 자존심 지닌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김 재 명 /  kimsphoto@hanmail.net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정치학박사) 



세계 석유 매장량 2위의 석유대국이자 7천2백만 인구를 지닌 이슬람의 인구대국, 미국으로부터는 북한-이라크(사담 후세인 시절)와 더불어 ‘악의 축’이라 손가락질 당해온 반미국가, 이란이 자체 개발한 위성 운반용 로켓 사피르-2호로 우주공간에 ‘오미드’(우리말로 ‘희망’) 인공위성을 띄어 올렸고 핵무기 개발 야망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중동의 군사강국....이러한 이란이 이슬람혁명 30돌을 맞았다.

흔히 ‘호메이니 혁명’으로 알려진 1979년의 이란 이슬람 혁명은 인류 혁명사에서 프랑스혁명(1879년), 볼세비키혁명(1918년)과 더불어 나라 안팎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란 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1919-1980)를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만든 이슬람 혁명은 이란을 안팎으로 급격하게 바꾸었다.  


“이슬람혁명에 자긍심을 느낀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이란 테헤란 거리는 혁명의 물결이 넘실댔다. 2월10일, 테헤란 호메이니 국제공항으로 이어지는 테헤란 외곽의 아자디 광장에서는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혁명의 성공을 자축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참석해 반미-반이스라엘 강성발언을 토해낼 때마다 사람들은 열렬히 이란 국기와 호메이니 초상화를 흔들며 “이슬람! 이슬람! 호메이니! 호메이니!”라고 외쳤다.

2년 전 테헤란 대학에서 열렸던 대규모 종교집회에서 보았을 때와 같은 누런색 점퍼를 입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슬람 혁명 3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란은 참되고 올바른 강대국(superpower)이며 이란에 대한 외부의 위협은 영원히 사라졌다” 한편으로 그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로 지난 30년 동안, 특히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끊어진 미국과의 대화가 버락 오바바 미 새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길 바라는 속내를 비쳤다. “우리 이란은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이란에 대한 외교정책에서) 전술적인(tactical) 변화가 아닌 근본적인(fundamental) 변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를 전제로 할 경우 미국과 대화를 할 준비가 돼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란은 1979년2월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아야톨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성직자를 뜻함). 이 혁명으로 이란 민중들은 팔레비 왕으로 대표되는 친미 독재집단인 샤(Shah)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때껏 이란 석유를 거저 가져가다시피 하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이란에서의 석유이권을 되찾았다.

호메이니 혁명(공식 명칭은 ‘이슬람 혁명’)의 성공은 1953년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미 CIA가 개입한 친위쿠데타로 실각한 뒤 무려 26년 동안 미국 40%, 영국 40%, 팔레비 왕조 20%로 나뉘어졌던 석유이권이 이란 민중의 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했다. 혁명의 성공으로 석유이권을 빼앗긴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지난 30년 동안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아자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슬람 혁명이 외세의 사슬과 그 외세에 빌붙어 비밀경찰(사바크)의 힘으로 민중을 탄압하던 독재왕조의 탄압에서 벗어나 이름 그대로의 독립국가 이란을 이룬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아자디 광장에서 만난 여대생 사바르 가르비(테헤란 대학 공학부)는 “미국과 영국에 빝붙어 기생하던 팔레비독재로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우리의 부모들과는 달리 지금 우리는 자긍심을 지녔다”며 함박 웃었다. 물론 다른 목소리도 없지 않다. 속삭이듯 조심스럽긴 했지만, 지금의 이란이 정치 지도자보다는 종교 지도자(1989년 사망한 호메이니의 후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힘이 지나치게 크고, 따라서 제대로 된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통한 자유로운 ‘보통국가’로 거듭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해마다 20%에 이르는 물가상승과 높은 청년 실업률은 이란이 풀어야 할 해묵은 과제로 남아있다. 분명한 것은 절대 다수의 민중들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당위성에 대해선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인다는 사실이다. 이슬람 혁명을 부정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반혁명적인 태도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피를 뿌리고 성공한 혁명

이슬람 혁명이 거저 성공한 것은 아니다. 많은 피를 뿌렸고, 혁명적 분위기는 그런 붉은 피를 먹고 커갔다. 1978년 9월8일 금요 예배를 마친 뒤 팔레비 독재에 항거하며 테헤란 거리에 나섰던 민중들은 잘레흐 광장에서 일어난 진압 경찰 발포로 말미암아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이란 사람들은 그 사건을 ‘검은 금요일의 학살’로 부른다. 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검은 금요일의 학살’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으로 치면 1960년 경무대(청와대) 앞 발포사건이나 1980년 5.18 광주학살과 비슷한 사건이다. 그때껏 계엄령으로 정권을 이어가던 팔레비 독재와 대화와 정치협상을 통해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을 분노로 몰아넣었고, 이슬람 혁명의 불길을 치솟게 만든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슬람혁명 과정에서 팔레비 왕조에 충성하는 군대와 경찰의 발포, 비밀경찰 사바크의 고문 등으로 희생된 숫자는 지금도 논란거리다. 어떤 이들은 6-7만명으로 꼽지만, 3천명 안팎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테헤란 교외의 베헤시트-에 자흐라 묘소를 찾아가봤다. ‘베헤시트-에’란 이란 말로 ‘천국’을 뜻한다. 이곳에는 혁명과정에서 죽은 사람들, 그리고 이슬람혁명 성공 바로 다음 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맞붙어 8년 동안 치러졌던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에서 생겨난 50만명의 전사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묻혀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졌건, 무명이든 상관없이 이란 사람들은 이곳에 모셔진 사람들을 ‘순교자’라 일컫는다. 이슬람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뜻이다. 한국으로 치면 국립현충원인 셈이다.

베헤시트-에 자흐라 묘소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묘소들의 특이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죽은 이의 얼굴이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유리창 안에 보관돼 있고, 묘소 주변은 꽃과 깃발들이 장식돼 있다. 혁명 30년을 맞아 조문객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아들 또는 남편을 잃은 부녀자들이 검은 차도르를 입고 히잡을 머리에 두른 채 고인을 기리는 모습이다. 이슬람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도 1979년2월1일 오랜 망명생활을 끝내고 이란 민중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테헤란 공항에 내린 바로 뒤 이곳 묘소를 찾아 ‘순교자’들에게 꽃을 바쳤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많은 이란 사람들에게 정신적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이란 사라들은 이슬람 종교의 성인에게 붙여지는 ‘이맘’이란 호칭을 호메이니에게 붙여 그를 ‘이맘 호메이니’라고 부른다.

베헤시트-에 자흐라 묘소 바로 옆에는 혁명 성공으로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로서 절대적 영향력을 휘둘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1902-1989년)의 시신을 모신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 네 귀퉁이에 91 미터 길이의 높은 탑을 두른 이슬람 사원(모스크) 안에 모셔진 호메이니의 시신 앞에서는 혁명 30주년을 맞아 참배객이 평소보다는 훨씬 많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 간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페르세폴리스 유적지로 잘 알려진 이란 남부 도시 이스파한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한 참배객은 “내 아이들에게 이맘(호메이니의 존칭)의 고귀한 혁명정신을 심어주려 왔다”고 했다.


“미국은 사탄, 그래도 관계복원은 이뤄져야”

흔히 ‘호메이니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1979년 이슬람 혁명 30년을 맞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반미정서를 나타내는 대형 입간판이나 플래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연두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악의 축’이라 몰아붙였다. 그렇지만 많은 이란 사람들은 30년 전부터 미국을 ‘커다란 악마(satan)’로 불러왔다. 이란의 ‘적성국가(enemy state)’로는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가 꼽힌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1979년 이슬람혁명 뒤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은 채로 지난 30년을 지내왔다. 이란대외친선협회의 한 실무자는 “우리가 입을 열었다 하면 하는 말이 ‘대외친선’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미국과 이스라엘만큼은 어려운 얘기”라고 털어놓았다.  

이란 사람들의  반미정서는 다른 중동지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복합적이다. 하나는 지난날 미국이 이란에 보여준 잘못된 행태들(1953년 군부쿠데타 배후조종, 석유자원 착취,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지원 등)로 말미암아 미국에 적개심을 품으면서도, 다른 하나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로 끊어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다시금 갖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반미정서는 어디까지나 정서이고, 외교관계 복원으로 얻어질 국가이익이란 실리도 중요하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이란의 입장은 “미국은 사탄이지만 그래도 관계개선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오래 전부터 바래왔다. 이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수교를 맺을 경우 그동안 투자 제한 등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를 비롯한 압력이 느슨해질 것이고, 이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이란과의 무조건적인 대화를 강조했던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이란이 반긴 것은 그런 사정에서다.


전략조사센터 연구원, “워싱턴은 지금 물밑싸움 중”

이란 지식인들은 1979년 혁명 뒤 역대 미 행정부의 대이란 정책이 일방적인 경제제재 등 판단착오와 올바르지 못한 정책방향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이란을 ‘악의 축’이라 몰아붙였던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의 대 이란 정책은 최악이었다고 여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오바마 새행정부의 중동정책, 특히 대 이란정책이 어떻게 바뀔까에 관심을 쏟는 중이다.

이란 테헤란의 국제문제 싱크 탱크인 전략조사센터(Center for Strategic Research, CSR)  선임연구원 나세르 사가피 아메리는 이란 외무부에서 근무한 전직 대사로서, 국제관계와 전략문제 전문가다. 2년전 이란 취재길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아메리는 “지금 미 워싱턴에서는 대이란 정책방향을 놓고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무 조건 없이 이란 지도자들과 만나겠다’는 말을 했고, 그 때문에 이란과의 대화를 막으려는 반대세력의 움직임이 있어왔다. 지금 워싱턴에는 행정부의 고위 관료, 정치인들, 로비스트들, 그리고 이른바 중동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대 이란정책 방향을 바꿔 이란을 포용하려는 쪽과 전통적인 압박 구도를 그대로 끌어가려는 쪽이 오바마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다투고 있다”

“지금 워싱턴에선 유대인 로비스트들과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 여기에 이스라엘을 비롯해 이란과의 이해관계를 저울질 하는 외국 세력들까지 가세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대선과정에서 오바마 후보의 대외정책노선을 비판했지만, 이란과의 대화를 강조했던 오바마 후보가 일단 당선되자, 이란과의 대화를 올해 6월에 치러질 이란 대통령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로 미루자는 주장을 편다. 일종의 지연전술이다. 그들은 오바마 새대통령이 이란 대선 전에 (대미 강경보수의 노선을 걸어온)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만날 경우 그의 재선에 도움을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란 사람들에게 들어본 이란의 대선구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큰 그림으로 보면 재선을 노리는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온건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대통령(1997-2005년 사이에 대통령 연임)의 2강 대결구도로 압축된다. 시아파 종교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마음이 기우는 아마디네자드의 재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봉쇄냐 아니면 대화냐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을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6월에 치러질 이란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에야 가닥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란 핵목표는 석유부족 대비”

이란 현지에서 느낀 인상적인 점 하나. 미국과의 관계복원에 대해서 은근한 기대를 비추는 사람들은 여럿 만났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 복원에 대해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테헤란의 싱크 탱크인 정치국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Political and International Studies, 약칭 IPIS) 하부기관인 아시아연구센터의 잘랄 칼란타리 소장 같은 이도 “미국과는 수교로 나아가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글쎄…”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란 사람들의 정서 속엔 미국인보다도 더 미운 존재가 유대인이다.
 
테헤란에서 국제문제 관련 연구소의 한 사람과 인터뷰를 한참 하다가, 이스라엘 얘기가 나온 김에 “이란에 오기 전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갔었다”고 하자, “그럼 이스라엘을 통해서 갔겠네…”라며 더 이상 말상대를 하려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집트 영토인 라파 국경통과소를 통해서 갔다”고 하자, “이집트도 친미 독재국가이고 우리 이란과는 적국이나 다름없다”는 썰렁한 얘길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이란 나라와 그 주요구성원인 유대인들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도 잘 알고 있다. 지난 2.10 총선을 통해 이스라엘의 총리가 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벤야민 네탄야후(리쿠드당 대표)도 입만 열었다 하면 “이란은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이며 따라서 이란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미국-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한둘 아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둘러싼 투명성의 문제, 동서 양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분쟁지역’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란의 개입문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문제 등등이다. 이 사안들은 두 나라가 서로 만족할만한 접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란의 핵개발 의혹문제가 걸림돌이다. 이란의 핵야망을 의심하는 국제사회는 미국 주도 아래 유엔 안보리에서 모두 3차례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몇몇 이란 사람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안보위협으로부터 이란을 지키려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테헤란 싱크탱크들이 전하는 이란의 공식입장은 어디까지나 ‘석유고갈에 대비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론’이다.

국제문제를 다루는 테헤란 전략조사센터(CSR)의 아미르 자미니니아 부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 이란 땅에 석유가 많이 묻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라서 21세기 안에 바닥이 난다. 그렇다면 다른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는데…현재로선 원자력 에너지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는 것뿐이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려 한다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흑색선전이라는 얘기다. “이란이 원자력발전소를 여기저기에 세우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가 보장하고 있는 핵의 평화적 이용 주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자미니니아 부소장을 만난 자리에는 CSR의 군비축소 분야를 맡고 있는 라만 가흐레만포르 박사도 함께 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야말로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보호막 아래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적어도 2백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이란은 NPT에도 가입해 있고, IAEA의 사찰규정에도 성실히 따르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니 어느 나라가 국제법을 어기고 중동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냐?”


“이란 핵모델은 일본”
 
같은 CSR의 선임연구원 나세르 사가피 아메리는 2년전 필자가 만났을 때 “현 시점에서 이란이 굳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스라엘이 핵을 가졌다지만, 2006년 여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보았듯이 핵무기가 전쟁의 승패에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등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란 지도자들도 그런 측면을 잘 헤아리고 있다”

그 논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메리는 이란의 핵정책이 지향하는 모델은 ‘일본 모델’이라 밝혔다. “일본은 플루토늄 축적량도 많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췄다. 우리 이란이 나아갈 방향도 그런 쪽이다. 이란의 핵전략은 (국가안보상) 필요하다고 결정만 내린다면 언제라도 핵무기를 만들 기술적 능력을 갖추되, 지금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구도다. 현시점에서 이란이 굳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들 이유는 없다”

이 글 앞에서 나오는 IPIS 잘랄 칼란타리 소장도 같은 논리다. 그에게 “이란이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로서, 반미 이슬람의 자존심을 지닌 핵무기 보유국을 지향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을 보기로 꼽으면서 “민중의 복지에 힘써야 할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핵무기 개발경쟁에 나서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 대답한다. 원자력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농업과 의약 등 기술력과 생산력을 높이려는 것이 이란의 핵목표라는 얘기다.

멀지 않아 다가올 석유고갈시대를 맞아 산업용 핵에너지를 확보한다는 것이 이란 정부가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논리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강경파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들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안보에 직접 위협이 되뿐 아니라, 하마스나 레바논 헤즈볼라에게 핵무기를 넘겨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펴왔다. 아울러 이란의 핵개발이 같은 이슬람권의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터키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경쟁에 나서도록 부추길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미국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유엔안보리와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해 이란을 압박중이다. 그같은 의심에 대해 이란은 손을 내저으며 부인한다. 오히려 이란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비판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기존 핵보유국들의 핵 독점을 위한 불평등조약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란은 NPT 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해왔는데, 미국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 유대인 네오콘의 이란 침공론

이슬람혁명 30년을 맞이한 이란 현지취재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점 하나. 그곳 사람들이 “미국이 언젠가는 이란을 침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헤란 거리의 보통사람들은 물론, 대학교수나 싱크 탱크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그동안 보여주었던 적대행위가 결국에는 △2003년의 이라크처럼 이란에 대한 무력공격 또는 △지난 1953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뒤에서 개입한 쿠데타처럼 강제적 체제변화를 꾀할 가능성을 꼽았다.
 
이란 사람들의 미국침공 걱정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워싱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강경파들은 “내친 김에 이란을 치자”고 진공나팔을 불어댔었다. 네오콘들의 한 근거지인 미국기업협회(AEI) 상임 연구원이자 유대인 출신인 마이클 레딘(Michael Ledeen)이 한 보기다. 그는 AEI를 주도하는 유대인 네오콘 리처드 펄(마찬가지로 유대인인 헨리 키신저의 측근으로 부시 행정부에서 펜타곤 국방위원장을 지낸 인물)과 가까운 사이다.

레딘은 부시 행정부 시절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장의 측근으로서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2001년 이란 바깥에 머물고 있는 반체제 인사들과 손을 잡고 ‘이란민주연합’이란 조직의 깃발을 올리는 데도 관여했다. 레딘의 책 『테러 전문가들과의 전쟁』(2002년)은 이른바 ‘민주화 도미노’ 이론에 바탕, 이라크뿐 아니라 이란, 시리아를 비롯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체제변혁을 주장한다. 이렇듯 지금 미국 안에는 레딘처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뿐 아니라 이란 정권붕괴론을 펴는 이들이 많다.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 바뀔 때다”

테헤란의 싱크 탱크인 정치국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Political and International Studies, 약칭 IPIS) 부설기관인 아시아연구센터의 잘랄 칼란타리 소장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이란 강공책을 비난한다. 그는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전쟁의 언어’(language of war)로 이란을 상대해왔다. 부시행정부 때는 ‘악의 축’이라고까지 막말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그런 전쟁의 언어를 버리고 ‘평화의 언어’로 이란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리핀대사(2003-2007년)을 지냈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는 그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오바마 새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진전을 보길 바라는 마음을 비쳤다.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이란을 자주독립국으로 놓아두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압박해왔지만, 이란은 잘 견뎌왔다. 미국은 이란의 정치체제와 자존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란 사람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미국은 이란을 바꾸려 했지만, 이제는 그런 미국이 바뀔 때가 왔다. 미국의 새대통령 오바마는 대선 후보 때부터 이란 지도자들과 조건 없는 만남을 언급해온 만큼 긍정적인 쪽으로의 변화를 기대한다”

이란의 국제경제 관련 싱크탱크인 라반드(Ravand) 경제국제문제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마지드 레시니아도 지난날 미국 정권에 비판적이다. “20세기의 이란은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지만, 미국은 여러 곳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거나 침략자를 뒤에서 지원함으로써 지구촌 평화를 어지럽혔다”고 주장했다. ‘침략자를 뒤에서 지원’한 경우는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을 가리킨다. 레시니아는 “그 전쟁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화학무기를 대줌으로써 5만명에 이르는 이란 젊은이들이 화학무기로 죽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외교관 출신인 그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강대국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20세기 초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저질렀던 짓이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벨기에가 아프리카 콩고와 르완다에서, 영국이 우리 이란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한 짓들은 인류사에 부끄러운 범죄기록들이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들을 괴롭혀왔는데, 그런 점에서 지금 미국이 단연 으뜸이다. 전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이 왜 그렇게 높은지를 미국인들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한마디로 그는 오바마 새행정부가 21세기의 미국을 ‘책임 있는 슈퍼파워’(responsible superpower)로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이란 수교가 이뤄진다면...
 
미국-이란 사이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변화의 기운이 돈다. 올 들어 미국 오바마 새행정부의 출범이 계기다. 세계 제2위의 에너지 자원(석유매장량 2위, 가스생산량 2위)을 지닌 만큼, 중동지역에서 이란이 갖는 비중은 크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이란과의 새 외교관계 설정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시일 안에 미-이란 수교가 이뤄질 일은 물론 아니겠지만, 큰 흐름은 화해 쪽이다. 이란핵개발 의혹 등 미-이란 관계개선을 막아선 여러 현안들이 풀려 두 나라가 화해무드로 나아간다면, 석유와 가스 등 이란의 개발 잠재력으로 미뤄 외국인들의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게 뻔하다.

우리 한국과 이란 사이는 어떨까. 알고 보면, 한국-이란 사이의 교역은 제법 활발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10%쯤은 이란에서 들여온다. 이란에서는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를 너무나 자주 만날 수 있다. 프라이드의 이란형 모델인 사바(SABA)까지 합치면 200만대가 넘는다. 이란 자동차 3대 가운데 1대가 프라이드다. “프라이드는 이란의 국민차”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TV, 냉장고, 에어콘 등 가전제품의 75%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그러나 직접투자는 미국의 눈치를 무시하기 어려운 탓일까,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뀔 조짐이다. 이란과 미국이 관계를 복원하는 쪽으로 간다면, 지금껏 제한돼온 외국인 투자도 활성화될 것이다. 테헤란에서 만난 김영목 주이란대사는 신중한 어조로 “한국기업들이 이란에 투자를 한다면, 이란과 미국의 수교가 이뤄지기 이전에 하는 것이 그 뒤에 하는 것보다 계약조건 면에서 훨씬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의 국가이익이란 차원에서 보더라도 맞는 얘기다.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도 이란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바라고 있다. 그럼으로써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이란에 가해온 경제제재를 비롯해 여러 불이익을 떨쳐내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란은 북한과 닮았다. 세계 제2의 석유대국 이란의 평화는 중동평화, 나아가 우리 한국이 절실하게 바라는 유가안정과 맞물린다. 이슬람 혁명 30년을 맞은 이란 땅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길 바라며 테헤란 공항을 떠났다.

PDp2009031200-김재명강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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