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국제분쟁 2009-03-12   1839

[강연문] 팔레스타인 가자(Gaza)의 눈물은 언제 마를까



세계가 놀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가자(Gaza) 사람들의 눈물은 언제 마를까






김 재 명 /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정치학박사)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22일 동안에 걸친 이스라엘의 공습과 침공은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세계 초강국인 미국의 뒷심을 믿고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는 전세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생활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의 비극적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어느 정도이고 무엇 때문에 이런 참상이 벌어졌다고 여기고 있을까.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역 취재길을 떠났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에레즈 검문소를 거쳐 가자 지구 중심도시인 가자시티 서북쪽으로 들어가는 길, 또 다른 하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 반도를 거쳐 가자지구 남쪽 라파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번에는 라파로 가는 길을 골랐다. 밤늦게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내려 다음날 아침 가자지구 남쪽 라파 지역으로 향했다. 모래바람 날리는 시나이반도의 사막지대를 달려 라파 국경통과소에 닿았다. 카이로를 떠난 지 거의 6시간 만이었다. 그러나 친미국가인 이집트의 정부관리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서류들을 갖추느라 다시 카이로로 돌아갔고, 예정보다 사나흘 뒤늦게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거대한 파괴 현장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거대한 파괴현장 그 자체였다. 곳곳에서 매스꺼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에서 비롯된 학살과 파괴의 흔적은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쉽게 눈에 띄었다. 가자지구의 남쪽지역인 라파(인구 13만명)는 물론 가자지구 중남부의 칸 유니스(인구 20만), 그리고 가자지구의 중심인 가자시티(인구 40만) 곳곳이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신음하는 모습이다. 무너져 내린 건물이며 주택, 불탄 채 버려진 자동차들, 탱크와 불도저로 갈아 쓰러져 누운 올리브 나무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친척 집에 나뉘어 신세를 지거나, 그럴 형편이 안 되면 무너진 집 바로 옆에 천막을 치며 추운 밤을 지새는 중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멈출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을 하며 가자지구의 첫 밤을 맞았다.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에 걸쳐 22일 동안 이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세가 남긴 피해는 컸다. 사망자 1,370명(어린이 430명, 여성 110명), 부상자 5,400명(어린이 1,870명, 여성 800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그리고 파괴된 집이 2만1천 채에 이르고, 완파 또는 반파된 공장이 220개, 그리고 많은 경작지와 더불어 상하수도와 전봇대 등 사회기반시설들이 파괴됐다. 죽은 목숨은 어쩌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자 지구가 원상회복되려면 앞으로 엄청난 복구비용을 들여야 할 판이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사망자가 15명도 채 안된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극이라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연구자들은 “무력충돌에서 비롯된 사망자가 1년에 1천명 이상인 경우”를 전쟁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역에서 벌어진 이번 무력충돌을 전쟁이라고 보질 않는다. 가자 지구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인 시파 병원의 정형외과의사 모하마드 란티시는 “전쟁이란 교전이 이뤄지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전쟁이지, 이번 경우는 일방적인 공격이고 따라서 학살“이라 주장했다. 병원으로 몰려드는 사상자들로 몸살을 앓았다는 모하마드는 2004년4월 이스라엘군 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죽은 하마스 지도자 압둘 아지즈 란티시의 친동생. 란티시가 죽기 전에 두 번 만나 인터뷰를 했다고 하자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그에게 위로의 말을 했지만, 형의 죽음이 준 충격은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지중해변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고구마처럼 생긴 좁은 회랑이다(길이 40km, 폭 4~10km, 면적 360㎢). 가자 남쪽 끝인 라파에서 북쪽의 가자시티로 자동차로 달리면 그저 1시간이면 충분한 좁은 지역에 사는 인구는 무려 150만명. 가자지구의 절반 쯤이 사막형 기후로 불모의 땅인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1㎢ 당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이동의 자유가 없다. 이스라엘군 경비병의 총격에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장벽을 넘어가지 않는 한,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로도 가기 어렵다. 이웃나라인 이집트나 요르단으로의 여행도 마찬가지로 꿈만 같은 얘기다. 현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린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산다”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1967년 이른바 6일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이집트, 시리아 주축)을 이긴 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두 지역(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을 식민지로 다스려왔다. 지난 40년 넘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독립요구를 힘으로 눌렀고, 그래서 국제사회로부터 ‘깡패국가’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2001년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 우리말로는 봉기)를 이스라엘은 탱크와 최신예 전폭기의 엄청난 화력으로 눌러 5천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하마스(HAMAS, ‘팔레스타인을 지키는 회교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합성한 이름, 1987년 창립)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저항세력과 이스라엘 군의 무장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스라엘 군은 미국산 무기 또는 미국의 군사기술을 빌려 만든 강력한 무기를 갖춘 반면, 하마스는 고작 AK-47에 어깨걸이식 총류탄(RPG) 정도다. 그러니 전쟁을 벌인다면 군사력에서 너무나 차이가 나는 전쟁이 되는 셈이다. 군사전문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비대칭 전쟁’이다. 죽음을 마다한 자살폭탄테러(이른바 순교작전)에서 보듯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의지는 세지만, 군사력에서 너무나 딸린다.



  전쟁범죄의 증언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가자 전역에 걸쳐 이뤄졌지만, 북동부 지역의 피해가 크다. 가자 지구의 중심인 가자시티의 동남쪽에 자리한 알-제이툰 마을, 가자시티 동부의 알-투파 마을이 특히 그러하다. 이 지역에는 이스라엘군이 거듭 공습을 되풀이 했고, 그런 다음 탱크를 앞세운 이스라엘 군이 가자 접경을 넘어 공격해 들어와 한동안 주둔을 했었다.


알-제이툰과 알-투파 마을은 가자시티 동북쪽의 자발리야 난민촌과 더불어 하마스의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우리가 하마스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이스라엘에 맞서 싸운 전투원이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폭격해 집을 부수고 사람 목숨을 앗아가느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며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알-제이툰 마을의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이 마을사람들 70명을 한 집에 몰아넣고는 바로 그곳에다 포격을 해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전화로 연락을 받은 병원 응급차량이 마을로 들어서는 것조차 이스라엘 군이 막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고의적인 살인이자, 전쟁범죄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무너진 집 앞에서나 이스라엘군 탱크에 황무지로 바뀐 올리브나 레몬 밭에서 서성대던 주민들은 통역 칼리드와 내가 다가서면 당시 상황을 기꺼이 자세하게 설명하려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집과 농토를 잃은 그들의 절박한 처지를 헤아려 볼 때, 아마도 물에 빠져 짚불이라도 잡는 심경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니겠나 싶었다. 제한된 취재일정 탓에 그들의 이야기를 넉넉히 듣지 못하고 구경꾼마냥 잠시 왔다가 곧 떠나는 것이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가자지구 동부의 샤아프 마을. 이스라엘과의 경계선을 따라난 도로를 지나려는데 길에 말과 소 여러 마리가 쓰러져 있다. 말이나 닭 등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도 이스라엘 전폭기와 헬리콥터, 탱크에서 쏘아대는 포탄에 희생됐다.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의 광풍은 우리와 더불어 사는 동물들의 목숨도 앗아갔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굳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이 많다. 트랙터나 중고 자동차를 갖고 있더라도 비싼 석유 대신에 말이나 노새가 끄는 수레를 몰고 다닌다. 말하자면 가축은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귀한 에너지원이다. 이번 전쟁에서 가축을 읽은 현지 농민들은 에너지 보배를 잃은 셈이다.


가자시 동북쪽에 자리한 자발리야 난민촌도 이스라엘 공습에서 비롯된 파괴의 광풍을 비껴가지 못했다. 상주인구 10만명의 이 난민촌 주민들 대부분은 지난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대대로 살던 옛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하마스의 강력한 지지기반이다. 6년 동안 이어졌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 1987-1993년)가 바로 이곳에서 처음 일어나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번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자발리야 난민촌의 중심지인 알-콜라파 이슬람사원과 그 앞의 널찍한 광장에서는 제1차 인티파다 기간 중은 물론 제2차 인티파다(2001년~현재)가 벌어진 뒤에도 각종 정치적 집회가 열려온 곳이다. 지난 2004년 이스라엘군 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 사망한 셰이크 아메드 야신(하마스 창립자, 정신적 지도자)도 생전에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이곳 광장에 나타나 투쟁의지를 고취시키는 연설을 하곤 했다.

이렇듯 반이스라엘 저항의 정신적 구심 역할을 해온 알-콜라파 사원은 그동안 새로운 성전을 크게 짓고 있었는데, 이번 이스라엘 공습으로 말미암아 거의 완공단계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모습이다. 1층이 거의 내려앉아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생겨났다. 바로 그곳에서 만난 한 이슬람 성직자는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성스런 사원을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유대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사악한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돕는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관(UNRWA)이다. 그곳 UNRWA 창고마저 이스라엘의 공습을 비껴가지 못했다. 현장에 가보니 타다 남은 구호물자들이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다. 지난 1월 18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직후 가자지구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행위를 비난했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UNRWA 대변인은 “난민촌을 파괴하고 점령지역의 민간인들을 강제 이동시키는 강압조치들은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위반하는 뚜렷한 전쟁범죄 행위”라고 이스라엘 정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보기에도 이스라엘 군의 강압조치가 해도 너무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었다.


무차별 학살과 폭격은 분명히 전쟁범죄다. 유엔 인권위의 결의안을 비롯,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높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미국과 강고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이스라엘의 전쟁지도부를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끌어낼 현실적인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뒤에는 현실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 있는 까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강고한 동맹국가로서, 해마다 30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건네 왔다. 그런 미국의 뒷심을 믿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지구 침공에서 저질러진 잔혹행위를 ‘전쟁범죄’라 보지 않는다. 전쟁 총지휘자인 에후드 올머트 이스라엘 총리는 “어떤 이스라엘 병사도 가자에서 저질러진 전쟁범죄로 기소되는 것을 막겠다”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리의 보통사람이나 대학교수나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비난하면서 강한 반미감정을 드러냈다. 므카미마르 아부사다(알라자르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도 받았지만,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과 그 배후 지원세력인 미국이 하는 못된 짓을 보고 겪으면서 도저히 미국을 좋게 보기 어렵다”고 얼굴을 흐렸다.


  하마스 대변인, “우린 승리했다”


이번 전쟁에서 하마스가 입은 피해도 컸다. 이스라엘은 전폭기와 헬기를 동원, 가자 지구의 하마스 보안청사, 경찰서 등을 초토화시켰다. 가자 시내 중심가를 둘러보니 하마스의 하자가 들어간 건물들은 하나같이 성치 못했다. 하마스 내무부 청사와 경찰서, 하마스가 운영하는 감옥, 하마스 의회(PLC) 건물들이 모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모습이다.


하마스는 “이번 전쟁에서 단지 48명의 대원이 순교(전사)했다”고 발표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하마스 대원들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스가 지명한 가자지구 내무장관 사이드 시암이 이스라엘 군의 공습으로 아들과 함께 죽은 것도 하나의 사건이다. 이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마스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표적사살을 피해 지하로 잠복했다. 가자에 도착한 다음날 “하마스 지도부가 어디 있냐?”고 묻자, 그곳 사람들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말이 지하벙커이지, 잠행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하마스는 “우린 이번 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한다. 가자 지구의 친하마스 방송매체인 알-아크사 TV는 “우리가 이겼다”는 자막과 함께 가자 지구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전 총리의 말을 내보내고 있다. 가자 시내의 중심가인 목타르 거리에 나가보니, 이번 전쟁의 결과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워낙 군사력에서 차이가 나기에, 하마스의 군사부분인 알카삼 여단이 이스라엘 군을 이기기는 어렵고 민간인들 피해만 더할 뿐이라는 얘기다.


가자 시내의 한 사무실  건물에서 하마스 대변인 파우지 바르훔(Fawzi Barhoum)을 만나자마자, “하마스가 이번 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리에선 이런 전쟁에서 한 번 더 승리했다간 가자 사람들 다 죽겠다는 불만의 소리도 들리는데…정말로 하마스가 이겼다고 보는가?”고 주장의 이유를 물었다. 하마스 대변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하마스의 승리 선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하마스의 투쟁을 지지 하지 않는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다. 우리 하마스가 승리했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어느 쪽에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이는 데 성공했는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하마스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승리를 가두었다. 이번 전쟁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다. 이는 하마스의 승리를 뜻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휴전 조건에서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풀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마스 대변인의 말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팔레스타인 점령을 끝장내고 1967년 6일전쟁 경계선 밖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오랫동안 고생해온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을 모두 풀어주고, 셋째는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걸핏하면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하마스는 ‘이스라엘이야말로 팔레스타인의 삶의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점령자에게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잘못인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결국 민족문제


가자 알라자르 대학의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정치학박사)는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 침공을 통해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다스릴 능력이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이 하마스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만들려는 계산을 세웠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부사다 교수는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서 하마스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하마스 붕괴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풀이한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하마스 붕괴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공백은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안된다. 이번 전쟁을 통해 보다 약해진 하마스를 만들어내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위협을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2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가 계속적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을 이어감으로써,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지속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을 보다 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부사다 교수의 분석대로, 이스라엘이 이번 가자 지구 침공을 통해 하마스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꾀하려 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자지구의 전쟁 피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과 하마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면서도, 하마스가 신속하게 피해복구를 지원하려고 나서지 못하는 데 대해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하마스는 지금 뭐하고 있나? 말로만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는데…우린 전쟁의 패배자가 아닌가. 이런 전쟁 두 번만 했다간 우리 가족 다 죽고 말겠다. 하마스에 실망했다”는 불만들을 털어놓았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민족문제다. 타민족을 힘으로 내리누르는 민족(유대민족)과 피압박민족의 문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억압과 좌절, 분노에서 비롯된 눈물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21세기에도 우리 인류가 정의로운 세상이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시대를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빛의 여신, 희망의 여신이 있다면 그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독립국가의 꿈을 빛의 여신, 희망의 여신이 힘을 합쳐 이뤄줄 날은 언제쯤일까. 지금으로선 그저 아득해만 보인다.


지난날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도 35년의 암담한 세월을 보냈지만, 팔레스타인은 훨씬 더 긴 세월을 고민 속에 지내는 중이다. 지금의 여러 상황을 돌아보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의 눈물이 멈출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을 하며 가자지구를 떠났다.



[인터뷰] 팔레스타인 외무차관 아흐메드 유세프
           “미국은 중동정책 바꿔 이스라엘에 압력 가해야”


가자지구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2006년1월 치러졌던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가 됐다(2007년6월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 쿠데타 뒤 무하마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에 의해 해임). 아흐메드 유세프 외무차관은 이스마일 하니야 전총리의 정치보좌역을 지냈고, 가자 이슬람대학 교수(정치학박사)이기도 하다. 유세프 외무차관은 미국 버락 오바마의 중동특사와 비밀리에 접촉하는 등 하마스의 대외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다음은 가자지구 라파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 요약이다.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중에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하마스는 어떤 입장인가?
▷유세프 외무차관=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어기고 백린탄을 사용하는 등 많은 잔혹행위를 저질렀다. 이는 인도주의에도 어긋나는 범죄다. 우리 하마스는 국제사회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전쟁지도부인 올머트 총리와 바락 국방장관, 리브니 외무장관을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우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이스라엘의 가자봉쇄는 이번 전쟁 전에도 문제가 돼왔는데, 이스라엘은 휴전협상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정책을 풀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앞으로도 가자 봉쇄를 이어갈 경우 하마스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유세프 외무차관=이스라엘은 휴전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막고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가자의 생필품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제법상으로 봉쇄(siege)와 제재(sanctions)는 전쟁선포나 다름없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1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항복을 요구하지만 우린 그럴 수 없고, 다만 우리에겐 살아남느냐가 절박한 과제로 남아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번 전쟁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을 겪었고, 얼마만큼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는가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길 바랄 뿐이다. 
 
-중동평화에는 미국의 몫이 크다. 하마스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가?
▷유세프 외무차관=”하마스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전대통령과는 달리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중동문제를 바라보기를 바라고 있다. 오바마는 이스라엘이 그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해 가해온 전쟁범죄 행위를 그만두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서야 한다. 결론적으로 오바마는 미국이 그동안 보여왔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거두고 중동정채을 보다 객관적으로 공정한 쪽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이스라엘 정부도 팔레스타인 봉쇄와 압박정책을 바꿀 수 있다”

PDp2009031100-김재명강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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