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4-03   698

“전쟁과 파병의 정당성 논란은 계속된다”

국회 파병동의안 처리가 남긴 것

▲4월 2일은 미국의 명백한 침략전쟁인 이라크전에 한국군을 파병한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파병동의안의 국회 가결로 그동안 파병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회의 파병동의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라크 전쟁의 명백한 침략적 성격, 한반도 평화라는 국익의 실체 여부 등 앞으로도 파병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파병반대운동을 이끌었던 시민단체들은 앞으로도 파병을 막기 위한 법적, 물리적 투쟁을 계속 전개한다는 방침이어서 정부와 시민단체의 갈등은 오히려 증폭될 가능성이 커졌다.

2일 오전까지만해도 불투명했던 파병안 표결은 청와대와 집권당의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며 처리 연기 가능성을 계속 흘렸던 한나라당 지도부가 오전에 진행된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일단 수용가능한 노력으로 평가하면서 표결처리의 가닥을 잡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오후 1시 30분 의원총회를 통해 각각 파병안의 표결 여부와 반대토론 제한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각 당의 대세는 기운 상태였다. 김홍신 서상섭 의원 등은 “찬반이 엇갈린 상황에서 좀 더 충분한 의견을 갖자, 대통령 연설 내용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면서 표결 연기를 주장했지만 지도부에 의해 묵살됐다.

국회가 평화 대신 침략전쟁을 선택한 치욕의 날

민주당에서는 김근태, 정범구 의원 등이 반대토론의원 수를 민주당과 한나라당 각각 3인으로 제한하자는 지도부에 맞서 최대한의 반대토론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한나라당 지도부와 의견을 맞춘 지도부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다.

▲반전평화의원 모임이 표결 직후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파병반대 의원들은 본회의에서도 그간의 파병반대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주장하면서 정부 동의안의 부결을 호소했다. 송영길 김홍신 정범구 김성호 김근태 서상섭 김원웅 등 7명의 의원이 파병에 반대하는 주장을 논리적이고 감동적으로 전개했지만 더 많은 의원들을 파병반대로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했다. 반전평화의원들은 표결 이후 “오늘은 국회가 평화 대신 침략전쟁을 선택한 치욕스러운 날”이라는 논평을 통해 우울한 마음을 전했다. 반전평화의원들은 앞으로도 반전평화와 관련된 현안에 대해 계속 뜻을 함께 한다는 방침이다.

68명의 파병반대 결과에 대해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당론이 일사불란하게 관통되던 전례와 국회의원 개개인에 의해 내면화된 미국의 패권주의에 비춰 나름대로 의미있는 수치”라면서 반대의원들의 정치적 결단을 평가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 역시 “미국의 파병요청-정부 파병안 제출-국회통과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한국 40년 파병사에 있어 이번 동의안 처리과정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이제는 전쟁의 성격을 묻고 국민의 여론이 변수가 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단체 “파병반대는 계속된다”

압도적 다수에 의해 파병안이 가결됐지만 앞으로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파병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유창선 박사는 “전쟁의 성격 자체가 명분이 없고, 민간인 피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병 정당성에 대한 질문은 계속 나올 것”이라면서 “이번 파병안은 국가적 차원의 무리한 국론통합이 가능한 성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이번 파병을 둘러싸고 국론 분열이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기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담론에 불과한 것이고, 이번 파병안 처리에 대해 국민들의 다양한 견해와 의견이 도출된 것은 오히려 시민사회의 성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국론통합 주장을 반박했다.

시민단체 역시 앞으로도 파병 저지를 위한 투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라크전 국군파병에 대한 결정 취소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계획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국익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드러나지 않은 채 파병안이 통과되었지만 철회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역시 “한국사회와 국제사회 평화세력들의 뜻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하고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한 평화운동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중생 범대위와 전쟁반대평화실현 공동실천을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들은 오는 12일 총궐기대회를 갖고 범시민사회의 파병철회 요구를 결집할 방침이다. 또한 해당 지역 의원을 불러 이번 사안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투표를 통해 제재여부를 결정하는 주민소환운동을 위한 서명운동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낙선운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시각차

정부의 파병동의안 요청 이후 일사불란하게 표결로 이어질 것 같던 국회 표결을 수차례 연기시키는 데 큰 압력으로 작용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놓고 학계와 시민단체 내부에서 그 여부와 수위를 놓고 미묘한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낙선운동은 처음부터 반전평화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시민단체가 명확한 목표와 전략을 공유한 상태에서 발표됐다기보다는 파병처리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일부 시민단체의 즉흥적인 발언이 노동단체의 공개적인 낙선운동 표명과 정치권의 반박을 거치면서 범시민단체 일반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정사실화된 측면이 있다. 이번 파병안 통과를 계기로 명확한 공유없이 기정사실화된 낙선운동이 시민단체간 입장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

우선 학계에서 ‘이번 파병안 처리가 낙선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이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정치적 견해는 낙선운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견해는 무식한 논리”라면서 낙선운동 불가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치적 견해에 따른 낙선운동은 시민운동의 일반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창선 박사는 “개혁의원 중에서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파병에 찬성한 경우도 여럿 눈에 띈다”면서 “이번 이라크 파병 찬성의원들을 시민사회가 퇴출시켜야 할 정치인으로 꼽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미 파병 찬성의원에 대해 내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상태다. 그러나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이번 파병안에 대한 찬성여부가 내년 총선에서 의원 개개인에 대한 중요한 평가항목이 될 것”이라고만 밝혀 아직 파병 찬성의원에 대한 구체적 낙선전략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녹색연합의 김제남 사무처장은 “야만의 전쟁에 동참해야 한다고 찬성한 의원들을 유권자 스스로가 기억하고 이에 대해 당연히 국민적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병 찬성의원들에 대한 심판을 위해 시민단체가 강력한 낙선운동을 전개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시민사회가 낙선운동에 대한 전략을 어떻게 세울 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이버 참여연대

장흥배·김선중 기자

장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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