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7-09-28   1546

핵, 원칙을 포기하면 안 된다 (지미 카터, 2007. 9. 19)

출처: 중앙일보 해외칼럼

미국은 지난 50년간 국제사회가 합의해 온 핵 관련 약속들을 속속 저버림으로써 북한과 이란, 그 외 핵 기술 보유국에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올 3월 체결된 미국·인도 간 핵 협력 협정은 이 혼란을 더욱 가중했다.

 현재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이스라엘·영국·인도·파키스탄이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갖고 있을지 모르는 핵무기는 전 세계적으로 약 3만 개가 있지만, 이를 감축하려는 노력은 아직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 냉전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실수나 오판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대량 학살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초기 핵 보유 5개국(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과 여타 180여 개 국가가 핵을 억제해 온 핵심 도구는 1970년에 발효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이다. 이 조약의 주요 목적은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의 확산을 막고, 지구촌의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2005년 유엔에서 그 전 5년간의 성과를 평가하는 회의가 열렸을 때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북한이 불참했다. 이 중 북한을 제외한 세 나라는 핵보유국이고, 북한은 핵 개발의 초기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미국 정부는 핵 문제와 관련해 다른 나라에 별 모범이 되지 못했다. 탄도미사일방어조약(ABM)을 폐기했고, 핵실험 및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제한을 완화했다. 걸핏하면 핵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NPT 가맹국들이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이끌었다.

 74년 (첫 핵실험) 이래 핵에 대한 인도의 변함없는 야심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비롯한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일관된 정책을 펼쳐 왔다. 인도를 비롯한 NPT 비가입국에 핵 기술이나 연료를 수출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제한들은 폐기되는 추세다.

 나는 인도의 정치 지도자들이 초기 핵보유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취급하는 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 사이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초기 핵보유국 다섯 곳은 NPT에 가입했고,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 분열성 물질의 생산을 중단했다. 인도 지도자들도 똑같은 서약을 해야 한다. 포괄적인 핵실험 금지조약에도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치를 거부한 채 인도는 국제사회에 1년에 핵무기 50개를 만들 수 있는 핵 분열성 물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한 없이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인도의 수용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인도의 요구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면 왜 브라질·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일본 등 기술적으로 앞선 다른 NPT 가입국들은 스스로 제한하고 있겠는가.

 핵 협력 협정과 관련, 미국으로부터 잠정적인 승인을 받았다지만 인도는 여전히 두 개의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맺는 것이 한 가지다. 또 핵공급국그룹(NSG: 핵 확산을 방지할 목적으로 75년 결성된 국제기구. 런던클럽으로도 불림)으로부터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 그룹의 45개 회원국은 지금까지 국제적인 기준을 수용하길 거부하는 그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핵 거래를 막아 왔다. 이들 국가와 IAEA의 역할은 인도가 원자력 또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걸 막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인도가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그랬듯 NPT에 가입하고, 여타 합리적인 제한적 조치들을 수용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들은 스스로 제한하고, 향후 NPT의 제한적 조치로부터 추가적인 이탈을 막음으로써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들이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지구촌의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고, 평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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