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촛불

6·13 효순 미선 1주기 추모대회 이모저모

▲ 시청앞 광장을 밝힌 촛불

촛불을 들고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 심미선, 신효순 양이 눈을 감은지 꼬박 1년이 된 13일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들었다. 이날 늦은 5시 추모콘서트를 시작으로 본대회의 막을 연 저녁 7시께 광장은 4만여 명의 촛불로 넘실거렸다. 이날 추모대회는 전국 80여 개 지역, 일본, 독일 등 해외 14개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추모대회가 끝난 9시께 참가자들은 미대사관을 향하여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시청주변은 물론, 광화문 일대 통로를 전경버스로 막아놓은 경찰들과 참가자들간의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촛불의 힘, 당당한 내나라”=본대회의 첫무대에는 두 여중생이 사망한 직후부터 이제껏 진행된 집회, 추모행사를 담은 영상물이 올려졌다. 통일, 노동, 시민사회 등 각 단체들을 비롯해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었던 각종 집회에서 불평등한 소파개정과 미군피의자 처벌을 외쳤던 모습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있었다. 사건해결을 위한 요구사항들 중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답답함은 더한 듯 했다.

▲ 인사를 마치고 내려온 신효순 양의 어머니 전명자씨가 흐느끼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신현수 씨

이와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시위에 참가해온 ‘광화문 할아버지’로 유명한 이관복 할아버지의 추모 영상메시지도 대회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그는 현재 병상에서 암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이날 자리에는 두 여중생의 부모님도 참석했다. 무대에 오른 미선 양의 아버지 심수보 씨는 그동안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여중생 범대위와 국민들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면서 “촛불추모제가 불평등한 소파가 개정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애통한 심정을 전했다. 촛불을 들고 함께 참석한 효순 양의 어머니 전명자 씨는 선 채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미선, 효순 양의 모교인 조양중학교 출신들로 이루어진 청소년 연희단과 가수 안치환 씨 등의 다양한 추모공연 등이 어우러진 이날 대회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여중생 범대위의 홍근수 (공동대표)목사가 무대에 올라섰다. 홍 목사는 “미국과 한국정보는 우리 국민들이 진정으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며 “대등한 한미관계와 소파개정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촛불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당당하게 우리 목소리 내야죠”=이날 역시 학생, 노동,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개인, 친구,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말부터 촛불시위에 꾸준히 참석해온 이들에서부터 이날 처음으로 촛불을 들고나와 가슴벅차해 하는 이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행사에 동참했다.

▲ 지난해 촛불시위부터 함께 참가해오고 있는 모녀. 김영숙 씨(오른쪽)과 딸 다솜이

대학원생 복도훈(30)씨는 “우리가 당당하지 못하면 미국의 제국주의에 이용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오늘 역시 이렇게 모인 힘에서부터 희망을 찾는다”고 말했다. 열두살 짜리 딸과 함께 촛불시위에 꾸준히 참석해온 김영숙(46) 씨도 촛불시위를 반미감정만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촛불시위가 “대미 종속적인 관계에서 우리의 영역을 확보해나가기 위한 단계”라며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바뀌어진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이은정(25)씨는 촛불시위에 이날 처음 나섰다. 그는 “아직 바뀐 것은 없지만 오늘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바뀔 것을 확신하게 됐다”며 눈을 반짝였다. 선생님과 함께 나온 중학교 1학년인 민선영(14)양도 이날 처음 촛불을 들었다. 그는 “텔레비전으로 봤을 때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어렴풋하게 느꼈지만 오늘 와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미군들도 원망스럽고요. 앞으로 촛불시위 또 나올래요”라며 촛불을 바라봤다.

◇경찰의 시위 “원천봉쇄” 작전 논란=이날 추모대회 주변을 둘러싸기 위해 동원된 전경은 약 1만 5천명. 100개 중대 규모였다. 경찰은 추모대회가 끝나고 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려던 참가자들에게 놓인 모든 길을 차단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틈새 없이 세운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있던 전경들에 항의해 참가자들이 버스를 몸으로 밀어붙여 안전사고의 위험이 우려되기도 했다.

뿔뿔이 흩어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던 추모제에 합류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광화문 사거리의 지하통로 역시 전경들에 의해 철저하게 막혀 있었다.

▲5호선 광화문 역 출구를 막고 선 전경과 이에 항의하고 있는 시민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날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난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대회장소 일대의 전철역의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켜 시민들의 발을 묶었다. 밤 10시께 5호선 광화문 역에는 ‘승객폭주로 열차 무정차통과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역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당일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무정차 역은 광화문역 뿐만 아니라, 시청역, 종각역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시의 배경이 “당연히 시위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공지 없었던 이같은 조치에 대해 역을 이용하려던 승객들은 곳곳에서 역관계자와 경찰들을 상대로 항의하는 등 광화문 일대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경찰이 과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시청 부근부터 광화문 일대는 전경버스로 이뤄진 숲을 보는 듯 했다. 버스로 막아놓은 도로는 적막감이 맴돌았다. 그 안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이었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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