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7-08-29   2270

핵포기 ‘확약’보다 9.19 공동성명 재확인이 현실적(조성렬, 프레시안, 2007. 8. 14)

핵포기 ‘확약’보다 9.19 공동성명 재확인이 현실적

[정상회담 전망과 과제] ① 한반도 비핵화

2007-08-14 오후 2:58:15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전망하고 의제별 목표를 설정하는 ‘정상회담 전망과 과제’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연재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와 군사적 신뢰구축 △통일논의 △경제협력 △인도주의 및 사회문화 교류 등 정상회담 의제별 과제와 △국제사회와의 조율 문제 △국민적 합의 기반 조성 문제 등 의제 외적인 과제를 두루 살필 예정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 10여 명이 참여하는 이번 기획은 정상회담 발표 직후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각종 시나리오와 대북 제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함으로써 정상회담에 관한 독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나오고 있는 과도한 기대와 억측, 무리한 요구를 걸러내고 남북관계의 현실에 맞는 의제는 과연 무엇인지를 제시할 계획이다. 나아가 이 시리즈에서 제시된 과제는 정상회담 후 회담을 평가하고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편집자>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현안이자 국제현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예상되는 의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일부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북한의 핵포기 결단을 끌어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회담이 실패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과연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끌어 낸다며 어느 수준이 될까?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발단은 “당면 외교노력의 진정한 무게 중심은 6자회담”이라고 한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의 말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남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주도적’으로 논의하려 하는 반면,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의 배경에는 기존에 보여줬던 북한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북 측이 ‘핵문제는 북미간의 문제이므로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룰 수 없다’고 논의조차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핵문제를 북미 간의 문제로 바라보는 북 측 입장에서 본다면, 정상회담의 합의문(이하 가칭 ‘8.30선언’)에 비핵화 문제가 담기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8월 8일 남북이 동시 발표한 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에 회담의 목표로 △한반도의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 전개 등을 담으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우지 않은 것도 이러한 억측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상회담 개최 발표 직전에 있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석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회담 의제의 하나로 ‘한반도 비핵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어, 그런 억측들은 그야말로 억측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한간의 현안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현안이다. 한국이 6자회담의 핵심 참가국인 데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의 국가안보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런 점에서 비핵화가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현안만 얘기하지 말고 비핵화 문제를 확실히 거론해 달라고 요청해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현실적 합의목표는 ‘9.19공동성명’의 재확인

2차 남북정상회담의 뒤에는 9월 이후 6자회담, 6자 외무장관 회담,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 등 굵직굵직한 다자회담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8월말에 개최되는 것은 이 같은 다자회담들을 앞두고 대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북 측의 의도가 담겨 있다. 즉, 북 측으로서는 직접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제무대에 나서지 못하는 대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자신들의 핵포기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무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 제재의 해결과정을 통해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핵포기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8.30선언’에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비핵화의 의지가 담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 측이 핵포기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8.30선언’에 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북 측이 둘 중의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도 있고, 둘 다 선택할 수도 있다. ‘8.30선언’에 담는 방법도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를 모두 나열하는 방법이 있고, 어느 하나만 적시하는 방법이 있다.

9.19공동성명은 제1조에서 1992년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은 준수, 이행되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2.13합의는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라는 원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9.19공동성명의 부속합의문이다. 따라서 이번 ‘8.30선언’에 담길 내용은 “9.19공동선언에서 밝힌 한반도 비핵화를 성실하고 조속히 이행할 것을 재확인한다”로 합의하는 정도로 족하다. 북 측의 의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북 측이 요구하는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내용도 담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성과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정상회담 중에 ‘핵시설 불능화의 조기실현’이라는 김 위원장의 구두약속을 받아낸다면 금상첨화이다. ‘8.30선언’에 담기지는 못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입으로 ‘핵시설 불능화’를 약속해 준다면, 9월초에 개최될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서 ‘불능화 로드맵’을 합의해 내는 데 매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과 북미수교에 모멘텀으로 작용

6자회담과 북미수교의 최대 관건은 과연 북한의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최종적인 핵 프로그램 포기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이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나타내준다면 앞으로 있을 6자회담과 북-미, 북-일 수교협상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김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핵시설 불능화의 조기실현’으로까지 표현돼 나타난다면, 당장 오는 9월 6자회담에서 ‘불능화 로드맵’의 가시적인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불능화 로드맵’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의 조건으로 요구해 왔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를 검토하기 시작할 것이다. 적성국교역법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는 1999년에 대부분 해제되어 상징적인 수준만 남은 상태이지만,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면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어 북한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시기를 즈음해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8월 말이 되면 한반도 주변정세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요동칠 것이다.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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