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5-02-21   1852

한국의 핵물질 실험(세종연구소-정세와 정책: 강정민, 2004. 11)

한국의 핵물질 실험

강정민(핵정책전문가, 공학박사)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04년 11월호

배경

지난 70년대 한국은 핵무기개발 능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핵물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캐나다로부터는 NRX형 연구용 원자로를, 랑스로부터는 재처리 시설을 도입하려 하였다.

이러한 한국의 시도는 미국의 개입으로 중지되었다. 이후 국제사회는 한국을 핵무기개발 시도국가로 오랫동안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 9월 초 드러난 한국원자력연구소(이하 원연’)의 일련의 과거 핵물질 실험은 국제적으로는 한국 정부의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 의혹을 러일으켰으며, 국내적으로는 핵주권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일본은 정부와 언론 모두 한국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등 민감하고 집요하게 반응하였다. 북한 또한 미국의 2중 기준을 비난하고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6자회담과 연계시키고 있다.

이에 정부는 9월 18일, 핵무기 개발, 보유 의사가 없음, 핵투명성 원칙 유지 및 국제협력 강화, 비확산 국제규범 준수, 핵의 평화적 이용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평화적 핵이용 4원칙’을 발표하여 국제 사회의 신뢰 회복과 평화적 핵 이용 의지를 명확히 했다. 그렇지만 국제 사회의 의혹은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 관련하여 9월에 사찰단을 두 번 보내어 시료 채취를 실시하는 등 철저한 조사를 수행하였다. 조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을 경우 추가 조사도 예상된다. IAEA는 사찰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여 11월 말 이사회에 제출하고, 이사회에서 이를 본격 논의하여 유엔 안보리 회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이 11월말 이사회에서 마무리되도록 관련 국가를 방문하여 설득할 계획이라 한다.

이런 가운데, 10월 21일 원연은 80년대 중반 열화우라늄탄용 금속우라늄을 비밀리에 대량생산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열화우라늄탄용 금속우라늄 제조는 핵무기개발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한국 정부의 핵 투명성 신뢰도에 또 한번 금이 가게 생겼다.

플루토늄·우라늄 혼합물 추출 실험

1982년 4~5월 원연의 연구원 몇몇은 서울 공릉동 구 원자력연구소 부지 내에 있는 TRIGA Mark III 연구용 원자로(열출력 2MW)에서 태우고 나온 약 2.5kg 분량의 열화우라늄1)으로 만든 샘플 핵연료로부터 밀리그램 수준의 플루토늄·우라늄 혼합물을 추출하였다.

이 실험의 대해 원연은“핵연료 개발과 관련한 연소도 측정 실험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득력이 약하다. 당시 원연이 국산화하고자 개발중이던 핵연료는 천연우라늄으로 조성된 월성의 CANDU용 핵연료였다. 핵연료 개발 실험이 목적이었다면 천연우라늄으로 만든 샘플 핵연료를 태웠어야 했다. 그리고 원연의 주장대로 정당한 실험이었다면 그 당시 이 실험을 IAEA에 신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열화우라늄으로 만든 샘플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태우고 난 뒤 재처리와 유사한 추출 실험을 수행한 이유는 플루토늄 추출 여부 확인 의도가 짙다. 그렇지만 순수한 플루토늄이 아닌, 밀리그램 수준의 플루토늄·우라늄 혼합물만을 추출한 것으로 봐서, 핵무기용 플루토늄 확보실험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다2). TRIGA Mark III 연구용 원자로의 경우 연간 수 그램 수준의 플루토늄만

을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1982년 당시 원연은 이 실험에 대해 정부와

IAEA에 알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한국은 IAEA와의 안전조치협정을 위반하였다.

금속우라늄 생산

1982년 원연은 플루토늄·우라늄 혼합물 추출실험과는 별도로 대전의 연구소 부지 내에서 천연우라늄 조성의 금속우라늄 150kg을 생산하였으나 IAEA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 실험목적에 대해 원연은 방사선 차폐용기 제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게 정당한 목적이었다면 왜 그 당시 원연은 IAEA에 신고하지 않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국제사회는 원연의 2000년 우라늄 분리실험과 견주어, 80년대에 원연이 금속우라늄을 이용하

여 레이저 우라늄농축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원연이 우라늄분리에 적합한 레이저 시스템을 갖춘 것은 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실험을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늄 확보 실험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다. 무슨 다른 목적이있었을 것인데 다음 내용이 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많다.

83년부터 87년 사이 원연은 미국으로부터 방사선 차폐재 개발 명목으로 수입한 열화우라늄을 비밀리에 수백 kg 이상의 금속우라늄으로 만들어 대전차 관통자를 제작하였다. 이 내용은 10월 중순 중국 난징에서 열린‘국제안보에 관한 베이징 세미나’에서 발표한 필자의 자료에 근거하여 10월 21일 민주노동당조승수의원과 녹색연합이 폭로하였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부(이하‘과기부’)는 대전차 관통자는 핵무기개발과 전혀 무관하며, 전 연구절차를 IAEA에 신고했고 IAEA로부터 매년 핵물질 사찰도 받았으며, 미국과의 협의 속에 연구가 진행되었고 관통자를 제작한 후 미국과 협의해 연구를 종결하였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23일 현재까지 IAEA와 미국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라늄 분리 실험

2000년 1~2월 원연의 연구원 4~5명은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법(AVLIS)을 이용하여 3번에 걸쳐 1982년 생산된 금속우라늄 3.5kg으로부터 평균 농축도 10%의 농축우라늄 0.2g을 분리하였다. 이 실험의 애초 목적은 다른 가돌리니움(Gd) 동위원소로부터 중성자 흡수재인 Gd-157의 분리였는데, 연구원들의 학문적 호기심에 우라늄을 분리하게 되었으며 실험 후 관련장비들은 폐기하였다는 것이 원연의 해명이다.

핵무기 1기 제조에 필요한 90% 이상 고농축의 농축우라늄의 양은 15~20kg 정도라는 사실과 원연의 AVLIS 레이저 시스템이 농축우라늄을 대량 생산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이 실험을 국제사회의 우려처럼 한국의 계획적인 핵개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일부 분리된 우라늄의 농축도가 77%의 고농축이라는 사실과 당시의 실험을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 그래서 결과적으로 IAEA와의 안전조치협정을 위반하게 된 것은 국제적인 의혹의 눈총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과거 실험을 이제 밝힌 이유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로 국내외적으로 한국 정부가 왜 이 사실을 최근 밝히게 되었는지가 큰관심사였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 주된 근거가 추가의정서 발효다.

지난 2월 19일 국회는 IAEA와 안전조치협정의 추가의정서를 비준하였다. 그래서 정부는 비준한 날로부터 180일 내에 과거 및 현재의 핵연료 주기 활동 및 시설에 대해 보다 상세한 정보를 IAEA에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추가의정서가 발효되면 필요시 IAEA 사찰관이 신고된 장소 외의 의심지역에서 환경시료를 채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IAEA는 채취된 환경시료로부터 과거 핵물질 관련 실험을 알 수 있다. 원연은 추가의정서가 발효되면 과거 실험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4년 전 우라늄 분리실험을 지난 6월에 과기부에 보고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과기부는 이 실험에 대해 8월 17일 IAEA에 보고하였다.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의 IAEA 안전조치 위반여부는 사찰단의 최종보고서를 근거로 11월 말 IAEA 이사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관련내용은 한국과 IAEA 간 비밀사항으로 일반에게는 비공개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9월 2일 미국 워싱턴 정가의 전자우편 정보지인‘넬슨 리포트’가 미 행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원연의 4년 전 우라늄분리 실험 관련 의혹을 보도하였고, IAEA가 이를 확인해 줌에 따라 과기부는 즉시관련 사실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이 갑자기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9월 8일에는 미국의 AP 통신이 미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원연의 20여 년 전 플루토늄 추출실험 의혹을 보도하였다. 다음날 과기부는 1982년 수행된 플루토늄·우라늄 혼합물을 추출 한국의 핵물질 실험사실을 공표하였다. 한국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외국의 의혹이 고조되었다. 설상

가상으로 9월 13일에는 IAEA 정기이사회 보고에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원연의 우라늄 분리실험 및 플루토늄 분리실험을 언급한 이외에 부가적으로 150kg의 금속우라늄 생산 미신고를 지적하여 새로운 의혹을 증폭시켰다. 과기부는 다음날“150kg의 금속우라늄은 1982년에 만들었으며 그 중 일부를 2000년 우라늄 분리실험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국내외 정치적 파장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 관련하여 하나의 의혹이 제기되면 부랴부랴 다음날 관련 내용을 공표하는 과기부의 대응자세로 인해 국제사회는 핵문제 관련하여 한국 정부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의혹은 없는지,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이 정부와는 관계없다면서도 실험 관련 책임자를 문책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이 정부의 감독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라면 향후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등등의 의문을 갖게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미국의 2중 기준을 비난하고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 핵문제 논의를 6자회담 참가 전제조건의 하나로 내걸었다. 북한은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내적으로는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이 핵주권 확보가능성을 높였다 하여 국민여론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0월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원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국익을 고려해 원연의 과거 핵실험에 대해서 다루지조차 않았다.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에 대해 우호적이고 핵주권론을 선호하는 국내적 반응은 국내 원자력 기술진의 사기를 북돋운다는 측면에서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핵비확산, 핵투명성을 국제적 규범으로 삼고 더욱 강화해 나가는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볼 때는 주변국들을 자극하고 핵무기개발 도미노 현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은 국내 원자력 연구개발을 위해서도 결코 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이번 일로 미국과의 원자력 연구개발 국제협력에 당장 지장을 받고 있는 중이다.

맺는말

소규모 실험규모, 생산된 핵물질 양의 미미함, 수회의 단기성 실험 등을 고려할 때 원연의 과거 핵물질 실험을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국가차원의 비밀 핵무기개발 프로그램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상기 실험들이 일부연구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수행되었고 IAEA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백한 IAEA 안전조치 위반이며 또한 정부의 원자력 연구개발에 대한 감시감독 소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기술 습득의 의미(즉 핵무기 물질 확보 시간단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정부는 직시할 필요가있다. 더욱 강화되어가고 있는 핵비확산·핵투명성을 근간으로 하는 현재 국제사회 질서에 대한 인식을 관련 연구자뿐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 가져야 할 것이다.

1)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 DU)이란 핵연료로서의 유효성분인 우라늄235의 동위원소 존재비가 천연우라늄(0.7%우라늄235)보다 적은 우라늄을 말한다. 열화우라늄은 우라늄농축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성되거나,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에서 회수된다. 우라늄농축 과정에서 생성된 열화우라늄은 우라늄235 농축도가 0.3% 이하이고 나머지 99.7% 이상은 우라늄238. 열화우라늄 금속은 방사선 차폐 재료 또는 열화우라늄탄 소재로 사용된다.

2) 핵무기 1기용 플루토늄 양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의 경우 순수 플루토늄 6kg이었으며 폭발력은 22,000톤 TNT 분량에 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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