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 기고②] 강정마을에 자행된 고고학적 테러

[초점] 제주 민속신앙의 터전인 구럼비 바위 마구잡이로 파괴… 공사 앞서 생태보호지역이자 유적지의 보존 방안부터 강구해야  


해군의 구럼비 폭파 장면

해군이 지난 10월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사업구역 안 ‘구럼비 바위 해안’에서 시험 발파에 나서, 폭발물과 굴착기로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고 있다. 뉴시스


제주도 강정마을은 자연환경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생태마을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 군락지, 천연보호지역, 생태계보전지역, 해양보호구역 외에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 등 무려 5개 항목의 보호지역이 자리한 곳이다. 개발보다 보전이 우선돼야 할 환경이다.



무자격 전문가에 의한 공사 강행 


또한 고고학적으로 제주 북부의 용담동·삼양동 유적과 더불어 제주 남부에서는 강정마을에 선사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많았다. 조사해보니 제주 문화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청동기, 철기, 조선 후기 유적이 골고루 나왔다. 제주의 한 지역에서 이처럼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적은 없었다. 당연히 국가 사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제주 해안에는 수백 기의 당집이 있다. 즉, 제주는 신의 나라다. 고대부터 척박한 영토에서 농사를 짓기보다는 바다로 나가 채집하며 생활하던 제주도민에게는 유독 바다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물질을 나가는 그들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에게 자신의 안녕과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는 1.2km의 제주에서 유일한 단일 용암바위다. 바위 사이로 용천물이 흘러나온다. 이 물을 떠놓고 바다를 향해 기도한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그러다 지치면 따뜻한 바위에 등을 대고 깊은 하늘을 본다. 구럼비 바위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숭례문 같은 국보도 아닌데 문화재로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아니다. 숭례문이 국보지만 제주 강정 사람들에게는 구럼비 바위가 국보다. 즉, 문화재는 처한 상황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따라 중요도가 다른 것이다.


문화재보호법상 개발 현장에서 문화재가 출토되면 유적 보존을 위해 당장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해군은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무자격 사유에 해당하는 전문가들의 공사를 해도 좋다는 단 한 줄의 서명만이 있을 뿐이다. 1차 문화재 조사 때도 유물이 많다고 했는데 조사 결과도 읽어보지 않았다. 발굴에 의해 유물이 발견됐는데도 유물이 없다며 공사 허가를 한 것은 전체적인 강정의 문화유적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문화재 조사를 했다면 고고학자, 인류학자, 민속학자, 지질전문가, 역사학자, 고건축학자 등의 전문가 합동회의에서 유적의 가치와 보존 방안에 대해 결론지어야 했다.


무자격 전문가가 서명한 결과물에 의해 한 나라의 국책사업인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된다면 국가의 자격이나 명분도 없어진다. 국군의 임무 중에는 문화유산을 잘 지켜야 하는 것도 있다. 중요한 문화유적이 발굴됐는데도 제주 강정에 해군기지를 계속 만들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개구럼비당과 20m 떨어져 있어 괜찮다? 


특히 ‘개구럼비당’과 같은 민간신앙의 대상물이 있으므로, 개발할 때는 이런 민속 전통이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해군과 제주도는 보존 조처는 하지 않고 포클레인으로 마구잡이로 깨고 있으며, 구럼비 바위와 개구럼비당이 20m 이격돼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몸에는 심장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심장을 싸고 있는 몸은 중요하지 않은가? 구럼비 바위의 넉넉한 바위 안에 개구럼비당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집만 중요하고 당집이 서 있는 터는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인데, 문화재는 해당 건조물과 그것을 싸고 있는 터도 모두 포함한다. 제주 강정에 고고학이라는 이름의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한겨레 21 [2011.10.17 제881호] ‘강정마을에 자행된 고고학적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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