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TV Photo 2003-11-26   932

[포토에세이] 겨울의 문턱 : 온기를 찾아서


알라딘의 요술램프라도 찾아볼까. 반은 장난으로 반은 기분전환삼아 서울 황학동 거리를 찾았습니다. 찾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못 찾을게 없다는 도깨비시장. 누가 압니까. 먼지쌓인 고물상 한켠에서 요술램프나 도깨비 방망이라도 찾아낼지 말이죠.

이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해마다 겨울의 문턱에서 멈칫거리게 됩니다. 체면이나 유지할 정도로 존재하던 초록 잎들은 가을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 도시는 회색빛 본색을 드러내고 맙니다. 거대한 소비 시스템이 뿜어내는 인위적인 화려함은 서로 경쟁하다 못해 이젠 무채색 풍경처럼 여겨지고, 겨울이 드러내는 도시풍경은 삭막하기만 하군요.

무채색 도시만큼이나 이곳의 바람도 건조하고 매몰찹니다. 양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웅크린 채 빠르게 걸어봐도 매몰찬 바람을 피할 수가 없군요. 거리를 지나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까짓 바람이 뭐 무섭겠습니까. 계엄상황까지 악화되고도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안사태, 정쟁으로 얼룩진 파행국회, 3차전으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 전쟁과 한국정부의 파병계획, 카드위기로 신용불량자 급증, 악화되는 실업률과 늘어가는 노숙자들, 늘어가는 자살들… 신문과 텔레비젼, 인터넷매체로 실시간 전해지는 흉흉한 소식을 듣다 지쳐 알라딘의 요술램프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도깨비 시장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찾은 황학동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습니다. 청계천 복개 공사로 인해 좁은 길은 더 좁아지고 몇몇 가게들은 문을 닫기도 했지만 황학동은 황학동입니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고물들, 골동품은 물론 사람들이 가득하더군요.

그들과 함께 저도 온종일 쏘다녔습니다. 요술램프 비슷한 것이라도 없나 눈을 크게 뜨고 말이죠.



그래서 뭔가를 찾았느냐구요? 물론 찾기는 찾았습니다.

꽁꽁 얼어버린 손부터, 그 다음에는 목구멍으로 넘어가 위를 채우는 따스함. 요술램프 대신 찾아낸 것은 1인분 만큼의 따뜻함. 오뎅 국물 한 그릇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은 요정이나 도깨비가 만들어주는 요술이 아니라 1인분만큼의 따스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그릇만큼의 온기를 얻어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쌓여있는 일도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그대로이지만, 왠지 해결해 낼 수 있을 것 같군요.

여러분도 여러분 만의 온기를 찾아보세요. 대신 큰 욕심내지 말고 1인분정도만요.

사진 류관희, 글 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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