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1-26   1231

<안국동 窓> 무엇을 위한 정치개혁인가

정치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기만 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정치개혁은 그야말로 국민적 소망이며 시대적 요청이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정치개혁은 사회개혁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개혁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치개혁을 이루지 않고 사회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금 반드시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고칠 것은 무엇이고,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변화의 기준은 누가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좋은 사회’의 꿈은 누구나 쉽게 꿀 수 있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펼쳐진 여러 논의들을 참고삼아 살펴보면, 평화, 복지, 문화, 생태의 네가지 개념이 핵심적 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개혁은 이런 목표를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중장기적 목표의 바탕에는 하루빨리 이루어야 하는 한가지 과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경유착’을 깨는 것이다. 정경유착은 정치인과 기업가가 ‘암거래’를 통해 결탁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가는 정치인에게 돈을 주고, 정치인은 기업가에게 특혜를 준다. 기업가가 정치인에게 주는 돈의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른다. 물론 돈을 주는 방법도 다양하다. 정치인이 기업가에게 주는 특혜도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세금감면에서 많게는 엄청난 잇권의 제공에 이른다. 이런 암거래를 통해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입는 반면에 극소수 정치인과 기업가는 엄청난 이득을 누리게 된다.

정경유착은 실로 ‘만악의 근원’이다. 그것은 한 사회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어서 마침내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고 만다. 정경유착은 비리와 부패의 먹이사슬로 구조화된다. 이 먹이사슬이 넓게 퍼지면 퍼질수록 사회는 자정력을 잃고 망해간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어디서나 정경유착의 먹이사슬을 볼 수 있고, 그 사슬에 걸려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정경유착의 구조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사회이다. 이 정경유착의 구조를 깨지 않고, 정치와 경제의 투명화를 이룰 수는 없다. 정치와 겅제의 투명화를 이루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정경유착의 구조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 뿌리는 ‘금권정치’에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는 ‘강권정치’에서 ‘금권정치’로 바뀌어왔다. 강권정치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정치를 뜻한다. 12년에 걸친 이승만 독재, 18년에 걸친 박정희 독재, 7년에 걸친 전두환 독재, 그리고 5년에 걸친 노태우의 과도기까지, 무려 42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것은 강권정치였다. 이렇듯 기나긴 세월에 걸쳐 자행된 강권정치는 사실상 ‘폭력정치’였다.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한 이러한 폭력정치는 많은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폭력정치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강권정치는 금권정치를 낳았다. 민주화는 일차적으로 강권정치를 끝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권정치의 척결은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새로운 민주화’의 첫번째 과제는 금권정치를 척결하는 것이다. 망국적인 지역주의라는 것도 사실 금권정치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금권정치의 척결이야말로 정치개혁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금권정치는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이와 관련된 주요한 개혁의 방향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첫째, 정치자금법을 개혁해야 한다. 그 요체는 정치인들이 ‘암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의원선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그 핵심은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전국구 의원을 늘리는 것이다. 이 두가지 제도의 개혁만으로도 한국 정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민주화’를 향한 정치개혁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이고, 따라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사회개혁의 길이 크게 열릴 것이다.

이제까지 말한 것을 거꾸로 되짚어보자. 정치개혁의 핵심은 금권정치의 개혁이고, 그 제도적 요체는 정치자금법과 의원선출제도의 개혁이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금권정치의 개혁에 반대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경유착 구조의 척결에 반대하는 것이고, 결국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의 건설에 반대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자는 정치개혁을 추구해야 하며, 또한 정치개혁을 정말로 원하는 자는 반드시 정치자금법과 의원선출제도의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정치개혁인가? 그것은 정경유착으로 이득을 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엄벌을 가하고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개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정치개혁이 국민적 소망이요 시대적 요청인 것은 이 때문이다. 누가 이러한 정치개혁에 반대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그들을 심판할 때가 되었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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