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5-14   1547

<안국동窓> 정쟁의 극치에 대한 미완의 판단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례적으로 훈계를 덧붙였다. 탄핵심판 결정을 선고하면서, 이유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의 확고한 태도를 요구했다. 탄핵소추를 기각한 결론은 대부분 예상한 것이지만, 경고와 충고를 함께 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좋게 해석하면 고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달리 평가하면 화합과 새출발을 내세워 탄핵을 의결한 행위에도 명분을 부여하는 타협의 결론이다. 논란의 여지도 그만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각하해야 한다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주장은 비교적 가볍게 배척했다. 국회의 사전 조사 불충분, 사전 고지나 의견 진술 기회 부여 의무에 대한 판단은 시비를 걸 데가 없다. 하지만 탄핵안의 제안 설명과 토론의 생략,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과 일방적 표결 진행, 국회의장의 대리투표는 어떻게 평가한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국회에 훈계를 했어야 옳았지 않았나 모르겠다.

물론 각하 절차에 한해서는 이율배반적 기대가 있었다. 각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엄격한 적법 절차의 요구를 무시한 것으로 비판할 수 있다. 반면 각하를 해 버린다면, 야당이 밀어붙인 탄핵 사유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아예 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정쟁의 불씨는 남겨 두게 된다.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서, 측근 비리와 정국 혼란 및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는 것은, 그 주장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시중의 모든 교과서에 누누히 기재된 사연임에도, 지난날의 다수 야당이 무시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됐던 지점에서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를 세 가지나 지적했다. 총선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모른다”,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한 발언은 모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적과 당직을 가질 수 있는 대통령의 이 정도 발언이 선거법 위반이냐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의 이런 확인을 지금으로서는 유권적 결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는 정말 문제가 심각했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알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통보한 서면에는 위반이 아니라고 기재했다.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반응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 위반이라 지적했다. 아울러, 비록 제안에 그쳤지만 재신임 국민투표를 거론한 것도 헌법 실현과 수호 의무의 위반이라 질타했다. 재신임 국민투표가 가능한가는 헌법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있었던 사안이고, 대통령조차 위헌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헌법 위반 행위라고 선언해 버리는 것은 지나친 점이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실과 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탄핵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법익 형량의 원칙에 따라 그 정도의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는 파면 사유는 아니라는 이유다. 이것은 법학의 세계에서 흔히 비례성의 원칙이니 과잉금지의 원칙이니 하는 이론이다. 대통령을 파면했을 경우 예상되는 혼란과 문제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했을 때 예상되는 혼란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마지막 결론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혼란을 좀 가라앉혀 보려는 듯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여 안착했다.

나름대로 혼란을 최소화하려 노력한 가운데 선고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던지는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자. 우선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의 본질은 정치적 심판 절차가 아니고 규범적 심판 절차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첨예한 정치적인 사안이라도, 헌법재판소는 법적으로만 판단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를 인정함으로써 다수 야당의 무리한 탄핵소추 의결이 정당성을 얻게 되는가. 상당히 민감하고 우려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해선 반대 논리도 여전히 유력하고, 위반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사소한 위반이다. 따라서 지난 3월 야당이 감행한 탄핵소추 의결은 정당성이 결여된 것이거나, 아주 미약한 정당성을 지니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탄핵은 다른 고급공무원의 탄핵과는 분명 다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시도 그 자체로 격렬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수반한다. 2001년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 탄핵을 두고 찬반 양측이 거의 내전 수준까지 간 것이 극단적 예다. 그러므로 대통령 탄핵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으로 가능한 방법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소추 의결은 정당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덧붙여 기억해야 할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 집회는 바로 헌법재판소 이전에 그 논리를 보충하는 실질적 재판이었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는 끝내 소수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수 의견을 내세운 재판관과 그 수까지 숨겼다. 겨우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소수의견을 밝힐 근거가 있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음을 알렸을 뿐이다.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이유에서 자신한 것과는 달리, 이 부분에서 상당히 정치적 판단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비록 서둘렀다고는 하지만, 63일이란 시간은 너무 길었다. 미국 클린턴의 경우와 비교해도 그렇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정지한 가운데 두 달여를 지냈다는 것은 조금 심했다. 대통령 권한의 전면 정지나 탄핵심판 기간의 문제는 다른 여러 쟁점과 마찬가지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어쨌든, 너도 나도 처음 경험한 대통령 탄핵 과정이었다. 꼭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그것은 진지하게 대립한 정치적 사건도 아니었고 심원한 이론을 따져야 할 법적 사안도 아니었다. 단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우리 정치인들이 벌인 정쟁의 극치였다. 앞으로 비슷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문이라도 펼쳐 들자. 헌법재판소 결정문이라도 읽자.

차병직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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