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0-05-17   1552

[선거법 연속기고 ③] 민주주의의 불안한 심판, 선관위


[선관위, 선거법 비판 연속기고 ③]

민주주의의 불안한 심판, 선관위




홍재우 교수 (인제대 정치외교학과)


프로야구 부산 롯데 자이언츠의 로이스터 감독은 최근 공 반개만큼 넓어진 스트라이크존 규칙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트라이크존은 홈플레이트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새 규칙은 야구 규칙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마치 축구에서 공이 골대만 맞아도 점수로 인정하면 더 이상 축구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원칙을 훼손하고 불명확한 규정 때문에 일관된 판정을 내리기 어려워졌고 동시에 자의적 판정을 내릴 근거도 갖게 됐다.


선거는 일종의 경기다. 경쟁하는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으며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지만 그 결정은 경기 내용에 좌우된다. 좋은 경기는 사회의 여러 이해갈등을 분명히 드러내야 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후보들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는 한 사회가 선거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시끄럽게 떠들고 다투며 사회적 선택을 만들어가는, 너도나도 참여하는 경기이자 축제여야 한다.


현실 선거판의 자질구레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을 보장하고 지켜내는 것이 선거법과 선관위의 임무이자 존재 이유다. 선거법이 잘못되어 있고 선관위가 편파적인 경기운영을 한다면 그 경기의 내용과 결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과 선관위가 과연 이런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앞선 칼럼에서 김종철, 서복경 교수가 지적했듯이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모호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폭이 좁아 결과적으로 선거법이 선거의 민주적 의미와 원칙을 훼손하고 참정권 실현의 걸림돌이 되었다. 더구나 경기의 심판 격인 선관위는 선거법을 불공정하게 적용하거나 규제 위주로 해석하고 있다. 쏟아지는 비난 때문에 억지로 균형을 맞춰가는 듯 보이지만 트위터 규제, 4대강 집회의 불법화, 대학 투표소 설치 조건 등은 선거를 통한 표현도, 논의도, 참여도 모두 막고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직권남용의 차원이 아니다. 외려 선관위의 결정은 선거법이 규정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선거법 위반이다. 우리는 선관위가 선거법을 위반하는 모순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적 경쟁의 공정한 심판관, 민주주의 원칙의 든든한 수호자가 되어야 할 선관위가 민주주의를 배반하는 권력기관이 된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선관위 종사자들은 선거에 관해서는 이론과 실제에 있어 뛰어난 전문가들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도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선관위의 존재 가치를 부인하고 있다. 선거법에 얽매여서 어쩔 수 없다는 그들의 하소연은 게으른 핑계거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선관위는 광범위한 유권해석의 재량권을 지닌 헌법기관이다. 선거법에 문제가 있으면 지속적인 의견개진을 하는 동시에 재량권을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규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촉구하고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의 권한 확장만 추구하는 관료적 행태를 버리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 처신도 버려야 한다.


선관위가 계속 시민들에게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요구한다면 이 시대의 유권자들은 이 재미없고 더는 민주주의가 아닌 경기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경기장에 병과 쓰레기를 던지지는 않겠지만 발랄하고 상상력 넘치는 도전을 통해 스스로에게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부당한 경기의 판을 바꾸려 할 것이다.


선관위는 이제라도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 5월 17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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