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6-05-04   783

<안국동窓> 지방선거제도 유감

선거가 주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맥주 한잔 하면서 TV로 밤새 개표 방송을 보는 일이다. 당사자들이야 피가 마를지 모르지만 시시각각으로 정당이나 후보자별 득표수가 변할 때마다 순위가 바뀌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는 짜릿하다. 경마에서처럼 후보자간 경쟁이 접전일수록 더욱 주목하게 되고 흥미와 관심이 커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러한 개표 방송의 재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두 군데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의 선거 결과를 상당한 확신을 갖고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지역별 지배 정당의 공천을 받은 단체장 후보와 다른 정당 후보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선거운동을 통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벌어져 있다. 여전히 굳건한 지역주의의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역별 여론 지지도를 볼 때 단체장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역시 지역적 지배 정당이 모든 의석을 ‘싹쓸이’하는 일도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지방정치 내의 견제와 균형은커녕,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모두 한 정당이 차지하는 지역적 일당독점구조가 더욱 공고화되고 있는 것이다.

단체장 선거에서는 보다 많은 지지를 받은 한 후보만을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의 표는 ‘버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이런 결과가 예견되는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만일 어떤 지역의 전 의석을 어떤 한 정당이 다 차지하게 되더라도 그 지역 유권자 모두가 그 정당을 지지한 것은 아닐 것이다.6대4든,7대3이든 비율은 다르겠지만 그 지역의 ‘주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소수’ 집단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만다. 비례성이 낮은 현행 선거제도가 이런 문제를 낳고 있다.

이처럼 ‘일부’의 지지로 ‘전부’를 장악할 수 있게 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지방정치 내부의 견제와 균형의 부재라는 심각한 제도적 문제점을 낳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게 상대 지역 지역주의의 견고함과 배타성을 재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 주민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자극한다. 각 지역의 지역주의가 지방선거에서 이런 과정을 통해 재생산되고 강화되어 가는 것이다.

지방정치의 독점과 배제의 구조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선거 자체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찍어봐야 내 사람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안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굳이 안 찍어도 될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안 하게 된다.

우리 지방정치의 폐쇄성과 배타성은 서구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그 특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서구의 지방선거에서는 일반적으로 총선 때보다 많은 수의 정당이 지방의회에 진출한다. 이 가운데는 사냥, 낚시, 맥주, 자동차 등 ‘특별한’ 이슈를 제기하며 지방의회 의석을 차지한 정당들도 제법 존재한다. 이들이 던진 이슈는 사소해 보이고 우스꽝스러운 것도 있지만 지방의회가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고 또한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의석 획득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의 교육장이라는 지방정치가 우리나라에서는 다수의 독점과 소수의 배제로 이어지고 배타적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전개된 지방선거 과정을 지켜보면 지역 주민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 ‘다원적 지방정치’를 이루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또 잊고 덮어둘 일이 아니라 지방정치의 독점적, 폐쇄적 구조를 깰 수 있는 개방적이고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정을 위해 서둘러 중지를 모아야 할 것 같다.

* 이 칼럼은 서울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강원택 (의정감시센터 소장,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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