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7-01-04   893

<안국동窓> 대통령 ‘바보’ 만들기

새해가 되었어도 희망이 담긴 덕담조차 듣기 어렵다. 일제와 독재의 역사에 뿌리를 둔 부패세력만이 희망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을 뿐이다. 일부 개혁세력의 잘못이 개혁에 대한 희망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무서운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꿀릴 게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정말로 무책임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노라면, 문제는 무책임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 같다. 대통령의 무책임도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그를 아예 ‘바보’로 만들려고 하는 조직적 책동들이 강력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적대시하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뒤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를 적대시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한나라당과 조중동이라는 거대한 적대세력에 맞서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건한 대오를 갖췄어야 했다. 묵자가 단지 4천명의 사람들을 단결시켜 10만명의 군대를 물리쳤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능력은 물론이고 의지마저 의심받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두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개혁의 요구와 기대에 대해 그 자신이 일관된 정책으로 부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단지 정권을 잡기 위해 개혁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개혁의 정치인에서 ‘배신의 정치인’으로 바뀌고 말았다. 둘째, 노무현 정권의 여러 주체들이 개혁을 왜곡하거나 저지하는 행태를 지속적으로 보였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방치하거나 심지어 지원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 때문에 적대세력은 노무현 정권을 우습게 여기게 되었고, 지지세력은 환멸에 차서 노무현 정권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국무회의를 직접 챙기는 등 더욱 열심히 일하겠노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노무현 정권에게 결정타를 먹인 아파트값 폭등과 관련된 최근의 논란은 그 극명한 예이다. 아파트값이 폭등하게 된 구조적 원인은 노무현 정권이 올바른 정책을 펼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현상적 원인은 노무현 정권이 투기세력과 개발세력이 고대하던 무조건적 공급정책을 재개하겠노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2004년에 거부했던 분양원가공개정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바로 노무현 정권 안에서 거센 반발과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아예 작심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기로 한 것 같다.

문제는 일반 건설업체에서 건설해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일반 건설업체의 아파트에 대해서도 분양원가공개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두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일찍이 아담 스미스가 잘 가르쳤듯이, 시장경제는 정보의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바로 필요한 정보의 완전한 공개와 충분한 소통을 뜻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장을 빙자한 사기와 폭리만이 횡행할 뿐이다. 우리의 아파트 시장은 바로 이런 상황에 있다. 건설업체는 터무니없이 분양원가를 높이는 사기의 방법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둘째, 이러한 사기와 폭리라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 일반 건설업체의 아파트도 분양원가를 당연히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자들이 나서서 이러한 당연한 정책의 실행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박병원 재경부 차관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말을 하고 나섰다. 일반 건설업체의 아파트에 대해서도 분양원가공개를 시행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바로 이어서 열린우리당의 강봉균 의원(전북 군산)은 마치 이들의 주장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똑같은 주장을 하고 나섰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재경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파트값 폭등이라는 기형적 문제는 토건국가의 한 축인 재경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와 ‘노무현 정당’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바보’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은 역설적 표현이었다. 그것은 일제와 독재에 뿌리를 둔 부패세력처럼 썩지 않고 순수하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 안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대통령 바보 만들기’ 책동을 보면서 우리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역설적 구호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정권 안의 잘못된 반발과 저항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바보 노무현’은 역설적 구호가 아니라 사실이 될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