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4-14   1007

<안국동 窓> 4월15일, 심판의 날에 재판관이 빠져서야

우리가 투표소로 가야하는 이유

기원전 아테네는 마라톤 벌판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퇴했다. 그 전쟁에서 이긴 뒤 새로운 논란이 일어났다. 페르시아의 반격에 대비하여 육군을 증강해야 한다는 주장과 해군을 육성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투표를 하게 됐다.

아테네 시민들은 도자기 조각에 자신의 의견을 써냈고, 그 결과에 따라 육군 대장을 추방하고 해군의 전력은 보강했다. 그 선택이 현명했다는 것은 10년 뒤에 드러났다. 다시 쳐들어온 페르시아 군을 아테네 해군이 깨끗이 물리쳤다. 성공한 투표의 전형이다.

우리의 투표일도 오고야 말았다.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야 찬반을 묻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국민투표와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테네 시민들의 선택과 유사한 점도 있다.

이번 총선은 각 지역구마다 다수의 후보자 중 적합한 대표자 한 사람을 뽑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향후 우리 정치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투표가 아니다.

무엇보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변화를 바라느냐 그렇지 않느냐다. 진보나 보수, 개혁이나 수구의 논쟁은 일단 제쳐 두고 보자. 투표 마감 시간을 눈앞에 두고 그걸 따질 겨를이 없다. 기표하기에 앞서 스스로 변화를 바라는지 그렇지 않는지만 생각해 보면 한결 쉽다. 늘상 해 오던 대로 혹은 지금처럼 사는 것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다면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불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더 나은 사회를 원한다면 변화를 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당이 변화를 추구하는 데 적당한지, 또 어느 정당이 변화를 거부하거나 부드러운 변화를 가장한 채 과거로 회귀하려는지 가려내면 된다.

또 다른 기준도 있다. 나는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운 세 가지 혐의가 타당성이 있는지, 국회의 탄핵 의결 절차는 정당했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면 투표소에서의 결정도 쉬워질 것이다.

이번 총선은 대통령 탄핵 시도에 대한 심판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유권자는 그냥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헌법의 제정자요 해석자임과 동시에 심판자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섰듯이, 후보자와 정당에 던지는 한 표로 헌법 재판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가도 하나의 기준이다. 지역 편중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적어도 하나 이상 탄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고질화된 지역주의를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부패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과제도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기준이다. 각 정당의 지금 모습뿐만 아니라 과거의 행태를 잊지 말고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 어느 정치인과 어느 정당이 스스로 깨끗하고 주위를 맑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2004년 4월 15일의 유권자는 각자가 대한민국 헌법의 재판관이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간접적 판단을 한다는 의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회를 재편하고 새 시대에 맞는 의무를 부담시키는 행위는 진정 헌법을 실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유권자는 헌법재판관이다. 심판의 날에 재판관이 빠져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필코 투표소로 가야 한다. 내가 정한 판결의 이유와 선고의 결과를 두 장의 투표지에 써 넣어야 한다. 우리가 이천오백 년 전 아테네 시민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야 한다.

차병직 (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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