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12-01   896

<안국동 窓> 최병렬 대표가 구하겠다는 나라는 ‘한나라당’인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단식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거리로 나서 거리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넘어온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한나라당은 기다렸다는 듯 국회를 뛰쳐나갔다.

16대 국회 정기국회의 회기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국회를 포기한 것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구태여 국회포기로 대응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며 나라를 구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오히려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국회를 포기한다는 것이 도대체 납득이 되는 일인가.

대통령 측근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특검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법과 절차에 따라 재의결하면 된다. 재의에 필요한 의석은 182석인데 이미 지난 특검법 통과시 184표를 얻지 않았는가. 합법적인 방법과 절차를 포기하고 등원 거부, 의원직 총 사퇴, 대표 단식 등 무리한 방법으로는 특검을 실시할 수가 없다.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다. 특검제가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상설 특검제가 아닌 상황에서 모든 특검은 정치적 목적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전의 특검은 권력의 비리를 밝혀낸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특검도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밝혀내자는 명분은 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이 무리하게 통과시킨 특검법은 비리규명에 목적이 있지 않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인한 책임과 부담에서 빠져나가려는 의도라는 건 특검법이 통과되는 과정을 보면 세 살 먹은 어린이도 알 수 있다.

SK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불법정치자금 100억원을 받아쓴 사실이 드러나자 한나라당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단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잡아떼고, 검찰청사에 우르르 몰려가 겁을 주고,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좌추적을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야당 죽이기라고 소리를 높였다. 100억원을 받아쓴 사실을 시인한 뒤에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한다고 사과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남용하여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국회에서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또 대통령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밝혀내자는 것이 아니라 특검 실시와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통해 대선자금에 쏠리는 국민의 비난과 관심을 희석시키고, 검찰수사를 방해하자는 의도로 특검을 추진했다.

대선자금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서 선거 때 정치권이 검은 돈을 어디에서 얼마나 많이 어떤 방법으로 받아썼으며 또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알아내고,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지도록 하며, 다시는 돈정치, 돈선거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정치개혁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추진하는 일이다.

특검법을 통과시킨 뒤 쟁점은 대선자금의 실체로부터 특검법이 옳으냐 그르냐, 거부권 행사가 정당하냐 아니냐 하는 정쟁으로 바뀌었다. 한나라당이 저질렀던 불법적 돈 거래와 그 책임 문제는 뒤로 밀려났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볼 때 특검과 단식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한나라당이 쾌재를 부르는 사이 정국은 비틀거리고 있다. 16대 국회가 지난 4년간 미뤄와 내년에 16대 국회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될 1200여건의 법안, 내년도 예산안, 적체된 민생·개혁과제 등 밤을 새워가며 다 못할 일거리가 팽개쳐진 것이다. 국민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추진하는 척하던 정치개혁도 주춤거리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최병렬 대표의 단식농성장에는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는 구호가 크게 쓰여져 있다. 단식으로 구하겠다는 나라가 ‘한나라당’이라면 성공한 것이지만, ‘대한민국’이라면 한나라당은 길을 잘못 들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구하는 길은 단식에 있지 않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난날의 깨끗하지 못한 정치를 청산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다. 스스로 2002년 대선자금의 실체를 고백하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 그리고 정치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만이 나라를 구하고 나아가 한나라당이 사는 길이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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