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12-17   925

<수요논객> 칼럼니스트 서영석과 ‘의도론’

『사이버참여연대』는 매주 수요일,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수요논객>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참여연대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춘 글이라면 주제와 자격의 제한 없이 소개할 것입니다. 논객으로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자신의 성함과 신분, 연락처를 명기해 desk@pspd.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번 주 수요논객은 이영수님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음모론(Conspiracy Theory)은 어떤 사건이나 재난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음모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고방식이다. ‘진실은 절대 밝혀지지 않는’ 본질적 특성으로 인해 음모론은 절대적인 신봉자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모론적 인식틀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지 않는다.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음모설도, 굳어진 진실을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결국은 ‘소문’ 잘해봐야 ‘의혹’ 정도로 남을 뿐이다.

음모론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고방식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의도론(Intention Theory)’이라고 부른다. 음모론과 의도론이 다른 점은, 전자의 음모가 ‘악의’를 내포하는 것인 반면, 후자의 의도는 ‘선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의도론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의 대표 칼럼니스트 서영석 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의도론의 정의는 이것이다.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 다소 미흡해 보이거나 잘못되어 보이는 것이 있더라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구나, 혹은 다른 속내가 있겠지 라고 선의해석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 정책을 의도론에 입각해서 해석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서영석 씨는 10월 5일자 칼럼에서 파병론자와 파병반대론자들을 스펙트럼에 따라 구분한 뒤 자신은 원칙적인 파병반대론자에 속한다고 밝히고, 잔민당 지지자들에 대해 진정한 파병반대론자가 아니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은 파병불가피론을 세계관으로 갖고 있으면서도 노 대통령을 괴롭히기 위해서 파병에 반대한다는 논지였다.

그 후 10월 18일, 노 대통령은 기습적으로 추가 파병을 결정했다. 칼럼니스트 서영석은 이런 글을 올렸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북한문제 등 국익과 관련된 제반 사항 때문에 말로 직접적인 표현은 하고 있지 못하지만, 파병은 안 했으면 좋겠고, 정 파병을 한다면 비전투병 파병을 관철하고 싶은 겁니다. 이게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으로 읽힙니다.”

이후로 그는 파병론자와 파병반대론자의 대립구도를 전투병 파병론자와 비전투병 파병론자의 대립구도로 대체했다.

럼즈펠드 방한을 앞두고 ‘3천명 규모의 비전투병’ 이라는 구체적인 파병계획이 알려졌다. 의도론은 이렇게 발전되었다.

“우리 정부로서는 비전투병 3천명 파병이란 제안을 미국이 수용하든가, 아니면 말든가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셈이라고 하겠다…미국이 비전투병 파병을 거절한다면 파병 자체가 무산되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다. 현재 정부의 대세는 이쪽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세는 비전투병 파병안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자 ‘혼성부대’로 재빨리 방침을 바꾸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으로 국회가 마비된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파병하겠다고 해놓고 국회에서 동의안 처리가 안 되니 못 보낸다고 하면, 파병 철회를 하지 않았으니 미국이 뭐라 딴지 걸지는 못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군대를 안 보내는 것으로 낙착될 것이니, 바로 이런 것이 외교 아니겠는가.”

그가 기대하는 노 대통령의 의도는 슬프게도 노 대통령의 실제 의도와는 무관해보인다. 그의 조언대로 시간을 끄는 대신 노 대통령은 파병동의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껄끄러운 정국임에도 불구하고 4당 회담을 추진한 것이다. 이쯤되면, 국회에서 파병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일부러 악화시켰다는 해석도 나올 법한데, 서영석 씨는 4당 합의 이후로 파병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음모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 것처럼, 의도론의 진실도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의도를 ‘짐작’하고 이 의도에 맞게 사실을 꿰맞추어 ‘설’을 만든 후 그것을 맹신할 뿐이다.

의도론이 발호하는 배경은 내가 보기에 이렇다.

개혁을 기치로 당선된 노 대통령이 당선 이후 이렇다 할 개혁 정책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개혁에 반하는 모습을 보여 이에 실망한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되었는데, 소위 노빠들에게는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합리화는 처음에 노 대통령이 개혁을 할 의도는 있는데 기득권세력이 저항하여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기득권 세력과 무관하게 노 대통령 자신의 개혁성이 의심받는 사안에 대해서는 ‘원래 의도는 따로 있다’고 해석하는 의도론으로 완성되었다.

서영석 씨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의 끊임없는 딴지 걸기와, 민주당 구주류의 개혁신당에 대한 강한 거부감, 한나라당의 내각제 개헌 공갈, 재벌의 교묘한 발목잡기 등” 때문에 노 대통령이 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재벌이 어떻게 교묘하게 발목을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가 재벌의 반대에 부딪혀 뭘 못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를 못했으니. 그래서 ‘교묘하게’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나보다. 남들은 모르게 발목을 잡고 있으니 말이다.

조중동과 민주당, 한나라당은 눈에 보이게 딴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다 설명되진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여론인데, 우리 국민들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에 놀아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국민은 난데없는 재신임 발언에도 불구하고 옥석을 가리는 현명한 판단으로 노대통령을 재신임하겠다고 결정할만큼 훌륭한 국민이다.

“국민들이 재신임해 준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마음먹었던 개혁프로그램을 차근차근 해보겠다는 것이고, 국민들이 재신임하지 않는다면, 깨끗하게 물러나겠다… 뭐 이런 심정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마음먹었다는 개혁 프로그램이라는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도대체 재신임 국민투표 말고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에 못한 것이 뭐가 있는지. 물론 의도론자들도 모를 것이다. 알고 있다면 벌써 구체적으로 증거를 댔을 텐데, 그들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적이다’ 는 지상명제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음모론은 단지 ‘설’에 불과하고, 결국은 소문으로 흩날리다가 사라진다. 의도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개혁성을 강변하는 것은 허무하고, 현실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선의가 따로 있으니 무조건 믿고 기다리라는 것은 기만이다.

의도론의 폐해는 건전한 이성의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데 있다.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처럼, 의도론은 주관이 지배적이 되어 객관적인 판단과 절제된 언행을 방해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이 있은 날, 칼럼니스트 서영석은 10분의 1 발언에 대해 비판적으로 코멘트한 시민단체들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른바 시민단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는 필자가 알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알 필요도 없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한나라당의) 이런 공갈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못하는 이른바 시민단체들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얘기들만 잔뜩 늘어놓고 있는 것이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 것인지…”

그런데 그는 최근까지만 해도 시민단체에 대해 신뢰와 지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8월에는 “다음 총선거에서 엄정한 심판이라고 하지만, 주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누가 주체가 돼야 하는가. 바로 시민단체다.” 라고 했고, 또 10월에는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있다면, 정부가 비용을 부담할 터이니, 한번 갔다와서 보고서를 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을 겁니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사이에 시민단체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칼럼니스트라면, 시민단체를 정치인 심판의 주체라고 추켜세우고 국민을 대신해서 이라크 현지 조사를 보내자고 했던 사람으로서 시민단체들이 어떤 곳이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며 자기 글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오류를 제어하는 절제력은 갖춰야 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서영석 씨가 그 날 절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거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터진 날 건전한 이성을 갖춘 사람들은 10분의 1이라는 숫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5분의 1도, 100분의 1도 아닌, 왜 10분의 1 이어야하는지. 10분의 1과 ‘면죄부’ 사이의 연관 관계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10분의 1과 ‘대통령직 사퇴선언’의 연관 관계는 더욱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0분의 1은 안 될 자신 있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그럼에도, 혹시 10분의 1이 넘을 경우 대통령 자진 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제까지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비자금을 수사해온 검찰로서는 자신의 수사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사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울 것이라고도 생각하였다. 뭐가 문제인가?

서영석 씨 또한 10분의 1 에 담긴 의도가 분명히 파악되지 않자 애꿎은 시민단체에 화풀이를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선의’로 해석하여 거침없이 글을 써댔던 그도 10분의 1에 담긴 ‘선의’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나라당 앞에서 정치자금 공개하라고 이틀이 멀다하고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를 두고 ‘한나라당한테는 입도 벙긋 못한다’는 식의 유치한 마타도어를 퍼부은 것은, 분초를 다투는 인터넷 매체에서 어떻게든 빨리 글을 써서 올려야 하는 초조한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10분의 1 발언으로 인해 혹시 동요할지도 모르는 서프라이즈 펜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으로 이해한다.

괜히 시민단체에 화풀이하던 그는 이틀 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노캠프에서 받은 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은퇴할 수도 있다는 그런 얘기의 경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이미 직접 설명했으며, 사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말을 붙일 것은 없겠다”

서영석 씨가 칼럼니스트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그도 ‘선의’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창조한 괴물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견고해지는 의도론의 노예가 되어 이성을 무덤 속에 묻어 버린 그도 단지 희생양일 뿐이다.

다만, 나는 그가 언젠가 예의 그 싸가지 없는 말투로 “내가 뭐라고 했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날을 위해서 그동안 참아온거다. 이 조급한 변절자들아”라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맘껏 비아냥댈 수 있을 정도로 멋지게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수요논객>에 실린 글은 사이버참여연대의 입장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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