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정당(법) 2003-11-20   2507

비례대표 의석수 둘러싼 여야 정당의 속셈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등 개혁보다 선거구제 이해득실만 저울질

지난 18일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3당의 정치개혁특위 간사들이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273명에서 299명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으나 절대 과반 의석을 보유한 한나라당이 현행 정수를 고집하면서 무산될 조짐이다.

이번 3당 정개특위 간사의 합의가 앞으로 선거구 획정 논의에 어떻게 반영될 지는 불투명하지만, 비례대표 의석수를 둘러싼 정치권 일반의 반개혁적 속내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비례대표 의석 비율에 대한 한나라당의 속셈은 시민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뒷전으로 밀린 정치자금 투명성, 비례대표 확대

지난 4월 정치권 일부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구성한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에서 시민단체는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정당기능 활성화 등 다른 정치개혁 과제들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의원정수를 300명 수준으로 확대하는 데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3당 간사의 합의와 무산 과정에서 드러난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는 지적이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정치권이 자숙,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전제로서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등의 개혁안을 먼저 다루고, 의원정수 확대 문제는 나중에 다뤘어야 하는데 그 순서가 바뀐 꼴”이라면서 “내용적으로도 소폭 증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사표 방지, 표의 등가성 확보 등을 위한 제도개선 논의가 핵심이 되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치권은 비자금 정국으로 국민의 최대 관심 개혁안이 된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와 관련, 그 핵심인 정치자금 후원 내역의 공개는 아예 논의대상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 12월 9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국회 정개특위 일정을 1주일이나 늦춰 올해 안에 주요 개혁안의 제도화에 나설 의지가 있는 지 의심케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계산

정치개혁안에 대한 정치권의 뒤바뀐 논의 순서를 논외로 치더라도, 여야 정당은 선거제도와 관련된 비례대표 의석수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의 요구와 동떨어진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를 이근 김용균 의원을 정개특위 간사에서 전격 교체한 한나라당에서는, 전국구 의석수와 관련 “현행 46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28∼30석 이하로 줄이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행 국회의원 정원 273석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30석 이하로 줄이면 지역구는 최소 16석이 늘어난다. 여기에 더해 선거구 인구편차 4대 1 이상은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에 따라 통폐합으로 늘어날 지역구 10∼20석을 감안하면, 결국 지역구 26∼36석을 더 늘리자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인 셈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한나라당의 의도는 정당 지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의석수를 보장하고 있는 현재의 지역구-전국구 비율을 유지하려는 이해와 함께, 선거구 통폐합 과정에서 당내의 심각한 분란 가능성을 지역구 의석의 유지 확대를 통해 제거하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회 정원 동결, 비례대표 의석 축소 등을 내비치는 한나라당의 기조에는 내년 총선전략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거나 최소한 유지하는 것이 국회 정원에서 한나라당 의석 비율을 최대로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더해 선거 때마다 정당 분란의 소지가 됐던 지구당 배분이나 공천권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총재가 없는 상황에서 당내 분란의 가능성을 지구당 의석 확대를 통해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것이다.

정당이 선거구 획정이나 선거제도에 어느 정도 정략적인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이 같은 한나라당의 주장은 현 1인1표제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의 취지, 그리고 이에 따라 실시하게될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역시 여성 후보 할당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에 대한 시민단체의 요구와는 거리가 두고 있다. 20일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를 299석으로 늘리는 것을 전제로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현 수준으로 묶고, 열린우리당은 늘어나는 의석수전부를 비례대표로 돌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단지 민주당은 이렇게 해서 늘어나는 지역구의 여성 할당, 열린우리당은 비례대표 50%의 여성 할당을 얘기하고 있다.

3당 중 열린우리당이 비례대표 의석 증가에 가장 전향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는 접근보다는 당론인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연계시켜 접근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 비율 어떻게 해야 하나

비례대표 의석수 문제는 정치 현실상 선거구 획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세부안 등 다른 제도 논의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시민단체는 지역구와 전국구 비율이 원칙 1대 1, 최소 2대 1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은 1대 1이 당론이다.

현 1인1표제가 국민 여론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해 보궐선거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 4∼8%를 달리는 민주노동당이 지지도 2∼4%를 달리는 자민련에 비해 원내 의석수를 한 석도 보유하지 못한 현실이 거론된다.

그러나 현행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하에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1대 1로 가져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대화 교수는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지역구와 전국구 비율 1대 1이지만, 지금 논의되는 선거구 획정 방식으로는 무리”라면서 “현행 행정구역과 선거구 획정 방식, 의원 정수 수준에서 1대 1로 가기 위해서는 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선거구 획정 인구 하·상한선 설정에 있어 지금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10만∼30만 방안이 도입된다면 지역구 의석수는 현 227석보다 많은 240석 안팎으로 늘게 된다. 국회 정원을 대폭 늘려 비례대표 의석에 배분하지 않는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1대 1은커녕 2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따라서 2대 1선으로 간다면, 선거구 인구 하·상한선을 12만∼36만으로 잡아 지역구를 200석 수준으로 줄이고 나머지 100석 정도를 비례대표로 배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만약 국회 정원 300석을 기준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1대 1로 가져가려 한다면 현 소선거구제 대신 대선거구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채진원 민노당 정당명부제 운동본부 기획국장은 “민노당의 주장은 정당투표를 기본으로 소선구제를 가미한 독일식이 사표 방지와 표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라는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치권이 진지하게 논의만 한다면 최근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정당투표식 대선거구제도가 그나마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안으로 긍정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회 정원 299석 확대로 늘어나는 의석 전부를 비례대표로 하자는 열린우리당의 안이 현재 여야 정당 중에서 비례대표 의석비율에 관한 최대 양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안대로 하더라도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은 2대 1에 훨씬 못미친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구 인구편차 문제와 의원들 반발 때문에 현 소선거구제 기준으로는 지역구 의석수를 대폭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로 가져가려면 비례대표 의석수를 대폭 늘리는 수밖에 없는데, 국민 감정과 한나라당의 반대를 생각하면 이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장흥배 사이버참여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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