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4-01   766

<안국동窓> 쿠데타의 망령

세상에는 별 이상한 일들도 다 많다. 엊그제 이 나라에서는 다시 또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이화여대에 김용서 교수라는 자가 있는 모양이다. 이 자가 한국해양전략연구원이라는 곳에서 강연을 했단다. 강연의 요지인즉슨, 지금은 ‘좌익 인민혁명이 전략적 고지(국가권력)를 재탈환(탄핵기각)’하려는 ‘혁명상황’이며,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군부 쿠데타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자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는 첫째, 국민들이 한시 바삐 이 현실이 ‘혁명상황’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둘째, 정상적인 선거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경유하는 사이에 이미 치밀하게 준비된 좌익 인민혁명이 전략적 고지(국가권력)를 재탈환(탄핵기각)하게 된다는 사실과 좌익정권이 일단 정권을 강화한 후에는 최고 권력자와 각료가 모두 사살 당하기 전에는 결코 자진해서 물러나는 역사적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좌익 혁명가들은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다’라는 좌우명에 철저하고, 패배할 경우에도, 인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권을 팟쇼에게 넘겨주는 것이 인민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철저한 당성에 입각한 책임감 때문에도 결코 신사적인 거취가 있을 수 없다.

셋째, 따라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성립된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에는 왜 군부 쿠데타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히틀러식 포퓰리즘에서는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가 친위대(SS조직)를 활용하여 군부자체를 얽어맴으로써 군부의 저항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이 자의 주장을 다시 조금 풀어서 쓰자면 이렇게 되겠다. 1. 촛불시위는 치밀하게 준비된 좌익 인민혁명이다. 2. 노무현 대통령과 각료들을 모두 사살해야 한다. 3.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 아주 재미있는 주장이다. 이화여대에는 참 재미있는 교수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행정학과에.

김용서 교수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쿠데타 촉구 강연을 하기 전까지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석준 교수(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부산대 김석준 교수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였다. 이 사람은 대단히 보수적인 인물로 이미 잘 알려졌는데, 작년에는 ‘바른사회’ 어쩌구 하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더니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이 되었다. 또 그러더니 갑자기 한나라당의 지역구 후보가 되었다. 심판이 갑자기 선수가 된 것이다. ‘역시 한나라당’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 공천이었다.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개판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공천이었다. 이 사람이 주장한 ‘바른사회’는 사실 ‘개판 사회’였던 모양이다.

이미 김석준 교수로 말미암아 이화여대 행정학과의 위신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김용서 교수가 김석준 교수보다 더 화끈하게 외치고 나섰다. 두 사람이 하는 짓을 보자니, 사람의 눈길을 더 끌기 위해 ‘홀딱쑈’를 벌이는 것 같다. 이화여대 행정학과는 어디서 이렇게 화끈한 엔터테이너들을 구했는가?

그러나 김석준 교수의 변신은 ‘역시 한나라당’이라고 비웃고 넘길 수 있지만, 김용서 교수의 주장은 그런 식으로 용서할 수 없으며 용서해서도 안 되는 무서운 주장이다. 쿠데타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이 사람이 과연 교수 자격이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화여대 재단은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정말 이 사람이 교수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쿠데타로 망가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복원하기 위해 1961년 5·16 쿠데타부터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피땀을 흘려가며 고생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 위에서 무참하게 죽어갔던가?

김용서 교수의 망언을 듣고 열렬히 박수를 친 예비역 군인들이 있었단다. 박정희 밑에서, 전두환 밑에서, 행세하며 살았던 옛날이 그리운 자들이 아직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늘밤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꿈을 꾸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드는 이 자들에게는 반민주 세력이라는 말도 아까울 뿐이다. 아니, 이 자들에게는 말이 필요없다. 헌정을 유린하자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이 자들에게는 법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쿠데타는 무력으로 헌정을 마비시키고 권력을 잡는 것을 뜻한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정변’이지만 법의 뜻으로는 ‘내란’이다. 이 나라의 원조 내란범은 다름아닌 박정희이다. 그의 딸로서 영남의 여영주가 된 박근혜씨가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었다. 박정희가 다시금 이 나라 최대당의 대표가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쿠데타의 망령’이 다시금 설치고 다닐 만한 세상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씨가 텔레비전에 나와 아버지 얘기를 하며 ‘눈물 정치’를 펼치는 것을 보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박근혜씨는 아버지가 원조 내란범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버지를 본받아 다시금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외쳐대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홍성태(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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