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회계장부는 ‘복사금지’, 3개월간 손으로 베껴 쓴 보고서

[인터뷰] 시민단체 자원봉사자 권형하 씨

“어떤 선관위에서는 ‘지금 준 자료라도 보려면 보고 아니면 나가라’는 태도를 취한 곳도 있었습니다. 필사 작업에 참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부 선관위의 권위적이고 비협조적인 자세였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위원장 : 지은희)가 지난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실시한 각 지구당의 정치자금 회계보고서에 대한 열람 및 필사 작업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권형하(21.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3. 사진) 씨.

그는 지난 3개월간 1주일에 두 번씩 20여 회에 걸쳐 7개 지역 선관위를 방문했다. 이들이 일군 개가는 그간 말로만 떠돌던 정당의 부실 회계장부를 직접 확인했다는 것. 선관위조차 그간 제대로 꼬집어내지 못했던 것들이다.

권 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이를 위해 보통 2-3일 동안 하루 4-6시간에 걸쳐 한 지구당을 방문해 A4 용지 40장에서 많게는 300장 분량의 회계보고서를 베끼는 ‘단순작업’을 해야 했다. ‘관할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자금의 수입금액과 지출에 관한 내역 및 결산내역과 첨부서류를 그 사무소에 비치하고 공고일부터 3개월간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현행 정치자금법 24조 2의 1항에 의해 선관위가 열람만 허가하고 복사는 금지하기 때문.

권형하 씨는 이번 필사 작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선관위의 권위적인 태도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정치자금 회계보고서 복사를 금지하고 있는 현 정치자금법은 국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관위, ‘나가라’며 윽박지르기도

이번 조사 작업은 참여연대, 한국 CLC,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참교육 학부모회 등 단체 회원 25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이들이 서울지역 38개 지구당을 방문해 회계보고서를 일일이 손으로 베끼는데 걸린 시간은 71일 총 329시간. 평균 2명이 2일 동안 8.7시간에 걸쳐 1개 지구당의 회계보고서를 베낀 셈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역 선관위를 방문해 회계보고서를 베끼는 과정에서 42.9%가 ‘선관위와 마찰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권형하 씨는 “특히 여학생들끼리 갔을 경우 담당자들이 더욱 권위적인 자세를 취했다”며 “너희같이 어린애들이 무슨 정치를 아느냐며 무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떤 선관위에서는 신분증을 제시했는데도 신분 확인을 해야 한다며 40분 가량 앉아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제 후배가 방문했던 선관위에서는 일부러 다른 자료를 보여주는 등 노골적으로 조사작업을 방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다른 선관위에서는 아직까지 선관위가 움직일 때 각 정당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선관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름길이라고 격려해주시는 곳도 있었습니다.”

권씨는 또한 “한 선관위에서는 저희가 회계보고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해당 지구당에 보여줘도 되냐는 확인 전화를 하기도 했다”며 “지구당을 감시해야 할 선관위가 지구당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실사조사에 참여했던 신광식(한국 CLC 사무국장) 씨는 “이번 조사를 통해 선관위에서 일상적인 사업을 거의 안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신 국장은 “200여평 규모의 사무실에 하루 동안 전화가 열 통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며 “선관위가 각 지구당의 회계감사 등 일상적인 사업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00장 회계보고서 일일이 손으로 베껴야

정치학도인 권 씨는 과동아리 ‘참정'(참되고 곧은 정치를 꿈꾸는 모임)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이번 조사에 참여하게 됐다. ‘이번 실사 작업을 통해 무엇을 느꼈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나라 정치가 학교에서 배웠던 이상적인 정치와는 너무 거리가 멀고 되돌아오기 힘들 만큼 굳어져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고 대답했다.

권 씨는 “그러나 이번 조사 작업과 같이 시민들이 직접 정치인들을 감시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굳어져 있던 정치적 관행들이 조금씩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치자금 회계보고서 열람기간을 3개월간으로 제한하고 복사를 금지하고 있는 현 정치자금법에 대해 시민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는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유권자의 기본적인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오는 28일 헌법소원을 제출할 예정이다. 중앙선관위도 지난 5월 정치자금법 24조에 대해 회계보고서의 사본교부를 가능하도록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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