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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2.08.30
  • 838

 

"투표, 왜 눈치 보며 해야 하나요?" 

[시민정치시평] 선거와 투표율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

 

# A씨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선거 기간에 맞춰 학교 동아리에서 부재자투표소 설치를 추진했다. 그런데 '부재자투표 예상자 2000인'이라는 부재자투표소 설치 요건이 발목을 잡았다. 타 대학에 비해 학생 수도 많지 않은데 선거 기간은 임박한 상황에서 재학생 수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기준인 '2000인'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는 포기해야 했다.

 

#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B씨는 선거일에 정상 근무를 했다. 공휴일은 고사하고 단 몇 시간이라도 투표할 시간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쉽지 않았다. 결국 투표는 하지 못 했다. 눈치 보지 않고 투표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부러운 일인 줄 몰랐다. 선거가 끝나고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사례를 알릴 수 있었다. 단, 음성변조는 꼭 해야 했다.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매 선거마다 투표율은 큰 관심사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모든 정당 및 후보자, 주무기관인 중앙선관위는 투표 독려에 힘쓰고 유권자들도 SNS를 통해 투표참여를 외친다. 이 모습을 보건데, 참정권을 행사하는 일을 두고 '높은 투표율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다'는 의견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선거의 투표율은 '위험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낮은 투표율은 필연적으로 대표자의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적 대표성에 문제를 가져온다. 지난 4월에 치러진 제19대 총선 투표율은 54.3%, 그 이전인 제18대 총선 투표율인 46.1%보다는 약간 증가했지만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공휴일이 아닌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은 더욱 저조하다.

 

왜 유권자들은 투표장을 찾지 않을까.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후보자가 제대로 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적어도 제도 미비로 인해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글머리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층은 대표적인 '투표권 사각지대'에 놓인 유권자들이다. 일반적인 개선 방안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위 사례와 같이 부재자투표소 설치가 너무 까다로워서, 고용계약상 근무시간 중에 외출이 불가능해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례는 부재자투표소 설치 요건 완화, 근로기준법상 법정공휴일, 투표 시간 연장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

 

물론 현행 헌법과 법률이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공직선거법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에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경우 사용자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며, 이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 조항까지 두고 있다. 그러나 사업주와 노동자 모두 위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8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유권자 투표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정호희 홍보실장의 노동자 투표참여 캠페인 사례발표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투표권 미보장 사례 신고센터를 운영할 당시 많은 사업주들이 전화를 걸어 투표 시간 미보장으로 실제 처벌을 받는지, 어느 정도 시간을 줘야 처벌을 면하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현행 법률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보장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투표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사업장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는 이미 선거가 끝난 후에 행해지는 사후적 조치인데다 신고자의 '생업'을 내걸어야 하는 일이다. 이 날 함께 참석한 고용노동부 박종길 근로개선정책관은 투표 시간을 보장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사용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법률이 명시하고 있는 참정권 보장은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투표율 숫자 안에 포함되지 않는 유권자 중에는 학내에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 학생들을 만나고, 2시간 투표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고용상 불이익의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유권자들이 있다. 이들의 숫자는 유권자의 어느 정도를 차지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시행한 적 없다. 다만 2011년 6월, 중앙선관위 의뢰로 한국정치학회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비정규직 노동자 8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를 통해 가늠해볼 수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 중 64.1%가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구체적인 요인으로는 '근무시간 중에 외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응답자의 42.7%, '투표 참여를 위해 자리를 비울 경우 임금이 감액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6.8%를 차지했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외부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율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선거가 끝난 후, 낮은 투표율을 두고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투표권 사각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들을 투표장으로 안내 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후보자 중심의 우리 선거 문화를 유권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행사하는 데 정파적 이해관계가 자리할 곳은 없다.

 

 

※ 이 글은 2012년 8월 30일자 프레시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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