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5-13   687

<안국동 窓> 민주화 제3기와 정부개혁의 과제

17대 총선으로 ‘참여정부’의 정치적 기반은 튼튼하게 다져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압박 속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황당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놀라운 결과에 한나라당마저도 면목을 일신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고 나섰다.

이로써 ‘정당의 민주화’를 핵심과제로 하는 ‘민주화 제2기’가 일단락되고 ‘민주화 제3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제1기’의 핵심과제가 흔히 ‘반독재 민주화’로 표상되는 ‘권력의 민주화’라면,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할 ‘민주화 제3기’의 핵심과제는 ‘정부의 민주화’이다. 권력도 바뀌고 정당도 바뀌는데, 정부는 구태의연하기만 하다. 이로부터 아주 많은 문제들이 빚어지고 있다. 이제 정부를 시대에 걸맞게 개혁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에 만들어졌지만, 현재의 골격은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에 만들어졌다. 박정희는 원천적으로 결여된 정치적 정당성을 경제성장으로 보완하려고 했다. 그에게 경제성장은 ‘존재이유’ 그 자체였다. 이를 위해 그는 한편으로 군사력을 이용하고, 다른 한편으로 근대 과학을 이용했다. 과학의 이름으로 무모한 성장정책을 합리화하고, 군사력을 이용해서 그것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것이다. 박정희는 이러한 개발독재를 위해 정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문제는 개발독재가 너무나 파괴적이라는 데에 있다. 먼저 그것은 사람을 파괴했다. 개발독재는 경제성장을 위해 사람들을 가혹하게 동원하고 이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예적 조건을 감수하고 따라야 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응징당했다. 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심지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준하와 최종길같은 분들도 살해당하고 마는 것이 개발독재의 암울한 실상이었다.

개발독재는 또한 자연을 마구잡이로 파괴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과 같은 공해병으로 말미암아 고도성장정책을 바로잡기 시작할 때에 박정희는 일본을 고스란히 모방한 파괴적 경제성장정책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착오적 정책을 펼치면서 그는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를 근대화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그 결과 금수강산은 순식간에 공해강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민주화는 단순히 정치개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정치개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정치개혁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개혁은 수단일 뿐이며,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회개혁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성공은 결국 사회개혁의 성공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개혁의 방향과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결과로 고도소비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이 사실에만 촛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참으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물질적 성공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사람과 자연의 파괴라는 이중의 파괴를 댓가로 치루고 이루어진 것이다. 개발독재는 사실상 ‘파괴독재’였다. 이러한 파괴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사회개혁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박정희체계’의 개혁은 이러한 사회개혁의 과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박정희가 그 골격을 만들어 놓은 사회체계, 곧 ‘박정희체계’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경제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친일파, 부동산투기, 학벌주의, 지역주의, 반인권, 자연파괴 등의 수많은 문제들을 정당화하는 비합리적이고 후진적인 사회체계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의 정부가 ‘박정희체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가 개발독재를 밀어붙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개발정부’는 그 동안 이루어진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기만 하다. 이른바 ‘국책사업’이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늘 마찰을 빚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발정부’는 자신의 조직적 존속을 위해 늘 개발사업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이제 상당한 정도로 민주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역의 자연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를 파괴하는 개발사업은 당연히 큰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역주민의 반발과 저항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 다시 말해서 박정희 때의 방식으로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 ‘개발정부’에 있다. 이 때문에 90년대 이후에 빚어진 파괴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안면도, 굴업도, 부안, 새만금, 경인운하, 시화호, 화옹호, 내린천댐, 한탄강댐, 동강댐, 사리원댐, 괴산댐, 도암댐, 북한산관통도로, 강남순환고속도로 등 일일이 예를 들 수도 없을 지경이다.

민주화 제3기의 과제는 정당정치의 민주화를 더욱 진척시키고, 사회개혁을 촉진해서 이 나라를 정말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건설교통부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정부의 근원적인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개발독재 시대의 정부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파괴를 발전으로 여기는 낡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의 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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