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0-05-07   1737

[칼럼] 재갈 물리고 족쇄 채우는 선관위

재갈 물리고 족쇄 채우는 선관위

바른말도 얄밉게 하는 사람이 있고, 옳은 말도 우습게 들릴 때가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발언이 그런 경우다. 정 총리는 지난 4일 6·2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선거에 편승해 정부 주요 정책에 무분별한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 선거법의 범위 내에서 단호하고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4대강 사업이나 무상급식 문제 등 정부 정책이나 입장을 분별 없이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분별했다면 필시 반대를 위한 반대일 것이다. 근거 없는 비판이라면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딴죽걸기이자 깐죽대기다. 정 총리의 경고는 맞는 말이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왠지 우습게 들린다. 지난 시절 정부 정책에 비판을 서슴지 않던 자신의 과거는 잊은 채 정책 비판을 무분별한 것으로 싸잡아 금지하려는 의도로 들리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에 대해 수없이 그의 비판을 받았던 당시 정부는 그를 ‘무분별’한 비판자라고 평가했을지 모른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비판이 무분별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정부도 정부 정책 비판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이 동원되어 수사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기소도 한다. 그 중에는 무죄 판결이 난 것도 있다. 바로 비판의 ‘무분별성’을 누가 판단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무분별한 비판’이 아니라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 문제였던 것이다.

정 총리의 정책비판 금지 발언

통상 선거를 앞두고는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 논쟁이 더 뜨거워진다. 유권자의 표심을 잡으려면 정당은 정책과 공약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도 입후보자가 어떤 이념을 가진 인물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를 알아야 투표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정부 정책이나 후보자의 선거 공약에 대해 논란을 벌여야 한다. 유권자는 그 논란을 보면서 투표할 마음이 생기고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인지 결심하게 된다. 선거란 정치적 이슈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활발한 논쟁 과정을 통해 유권자가 표를 줄 후보자를 결정하고 표를 던지는 과정이다. 선거 쟁점이 부각되고 여야의 차이가 드러나야 유권자가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선거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벌이는 4대강 사업 찬반 집회나 서명운동이 선거법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4대강 사업 반대, 지역 시민단체의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 등에 족쇄를 채우고 재갈을 물린 것이다. 유권자가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인데,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는 선거 쟁점이라는 이유로 입도 뻥긋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는 것이다. 선관위가 제시한 금지 사례는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찬반 가두서명, 피켓을 이용한 거리행진, 인터넷 광고, 현수막 게시, 문자메시지 및 e메일 발송, 미사·법회·예배 등에서 특정 정당 후보자의 지지·반대를 호소하는 발언 등 너무나 광범위하다. 정부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국정설명회를 개최하거나 대중매체 광고, 홍보물 배포 등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하는 것도 금지 사례에 포함시켰다.

무상급식 운동, 선거법 위반인가

하지만 그것마저도 편파적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4대강 홍보활동은 못 본 듯 묵인하고 있다. 반면 현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의 활동만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분별 있는 비판을 막으려는 무분별한 금지 조치다. 심판이 한쪽 편 선수로 뛰면서 다른 편 선수에게는 선거법 위반의 경고 딱지를 붙이는 격이다. 주권자의 의사 표현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통제하고 부정한다면 선관위 스스로 선거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공명선거를 빙자한 엄격한 선거법 잣대는 정치 무관심을 조장한다. 유권자는 불복종운동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사법감시센터 소장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 이 글은 5월 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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