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0-05-13   1457

[선거법 연속기고 ②] 선거권을 반환하라


[선관위, 선거법 비판 연속기고 ②]

선거권을 반환하라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6월2일, 대한민국 유권자는 최대 8개의 투표용지에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이 말은 1개만 사용할 수도 있고 투표장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2010년을 사는 한국 유권자 가운데 ‘투표한다’와 ‘하지 않는다’ 중 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권자가 투표하지 않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제도와 경쟁구도, 개인적인 이유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유권자의 몫이 아니다. 그런데 그 제도가 선거권 행사를 가로막고 있다. 입법자와 선관위는 선거권을 유권자에게 되돌려야 한다.


첫째, 14일의 선거기간을 거쳐 8개의 투표권을 행사하라는 건 투표하지 말라는 것이다. 2006년 선거에서, 서울 거주 유권자가 6개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알아야 했던 후보자 수는 평균 28명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2명씩의 후보자를 섭렵해야, 간신히 후보자는 알고 투표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먹고살기 바쁜 시민들로서는, 투표장에 가서 이른바 ‘줄투표’라도 할 생각을 하는 게 고마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뭘 알아야 관심도 가고, 관심이 있어야 호불호도 생기고 투표도 하는 것이다. 선거기간은 늘어나야 한다.


둘째, 현행 선거법은 후보자가 가능한 한 유권자를 만나지 말도록 하는 친절한 규제들로 넘쳐난다. 선거법 ‘제7장 선거운동’에는 60개의 조항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안 되는’ 선거운동에 대한 규정이다. 후보자들이 법을 지키기 위해 이것도 피하고 저것도 피하면서 간신히 전달해 주는 정보들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뭘 알아야 관심도 가고 투표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깨띠 개수까지 지정해 주는 선거법의 친절함이 아니라, 후보자와 유권자가 만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셋째, 선관위가 ‘선거쟁점’을 정의하고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일반시민들은 선거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쟁점’이란 찬반을 논할 주체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선거에서 그 주체는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고 찬반을 논하면 비로소 ‘선거쟁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본격적으로 찬반을 논하기도 전에 ‘선거쟁점’이 정의되었으니, 이제 유권자들은 할 일이 없게 되어 버렸다. 선거의 장에서 할 일이 없어진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넷째,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의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987년 헌법에 이름을 올린 것은, 공정한 선거경쟁을 가로막았던 국가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 유권자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서구 많은 국가들에서 선거관리기관이 행정부 소속인 이유는 말 그대로 선거‘관리’만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이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심판의 개입이 너무 잦으면 흐름이 끊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면 관객이 자리를 비우게 된다.


유권자의 선거권은 공휴일에 평등하게 투표용지를 교부받을 권리가 아니다. 유권자는 투표하겠다고 먼저 선택하고 그다음에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과 후보를 선택해야 투표하러 간다. 선택을 위해서는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 유권자가 선거에 관심을 가질 시간과 정보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5월 13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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