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12-23   1004

<안국동窓>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

마침내 한나라당의 ‘생떼정치’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이른바 ‘4대 개혁입법’, 그 중에서도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말았다. 이제 열린우리당은 더 이상 개혁을 운운하지 못하게 되었다. 명백히 반민주적인 한나라당의 ‘생떼정치’가 거둔 큰 성과는 전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전략적 배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서 열린우리당은 적극개혁세력과 온건개혁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번의 ‘4자회담’으로 개혁의 가장 큰 적은 열린우리당 내의 온건개혁세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 같다. 그 대표자는 바로 이부영 의장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그의 관심이 개혁이 아니라 정권 재창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4자회담’의 결과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정권 재창출로 개혁을 길게 이어가자는 전략’이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개혁보다는 정권 재창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스스로 입증해 준 것이다. 물론 정당이 정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권 재창출의 전략이다.

이부영 의장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낡은 질서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의 ‘보수 경쟁’으로 정권 재창출을 이루려고 하는 것 같다. 사실상 한나라당이 하자는 대로 하면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그 좋은 증거이다. 이부영 의장은 아무래도 너무 오랫동안 한나라당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국가보안법이 어떤 법인가? 그것은 냉전독재시대를 상징하는 법이다. 이 반민주적 법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고 냉전독재시대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이 법을 지키기 위해 ‘생떼정치’를 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국가보안법은 그야말로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냉전독재시대의 개혁을 내걸고 만들어졌다. 적어도 이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을 내걸고 횡행한 정권보안과 부패보안의 문제를 개혁하겠노라고 천명했고, 바로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의 제1당이 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의 연내 폐지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것이다. 이부영 의장과 온건개혁세력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보다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천정배 원내 대표와 적극개혁세력은 어떤가? 이들도 결국 온건개혁세력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좀더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과 ‘보수 경쟁’을 벌여야 영남표를 얻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정권 재창출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동진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한나라당이면 무조건 된다’는 영남 지역주의는 냉전독재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냉전독재시대의 개혁을 통해서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열린우리당이 해야 할 일은 한나라당과의 ‘보수 경쟁’이 아니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냉전독재시대의 개혁이다. 이러한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열린우리당에게 미래는 없다.

대통령은 ‘임시직’이다. 이 상태대로라면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고 국가균형발전의 이름으로 대형 국책사업을 곳곳에서 벌이고 있지만, 이런 ‘토건국가’ 정책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주전공 분야이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의 ‘보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없다.

개혁을 저버리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린우리당의 운명이다. 열린우리당의 온건개혁세력은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를 중단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적극개혁세력은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를 막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수 경쟁’의 정치는 개혁세력이 아니라 반개혁세력을 위한 정치이다.

홍성태 (정책위원장,상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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