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4-14   938

<안국동 窓> 공무원ㆍ교사의 정치적 권리와 총선

따사로운 봄 햇살이 사람들을 꼬드기던 지난 토요일,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앞 보도는 완전무장을 한 전경들로 가득 찼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집회 때문이었다. 전경들은 보도를 막고 오가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공무원과 교사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경찰의 이러한 조치에 항의했다. 법에 따라 종로경찰서에 신고된 집회였던 만큼 경찰이 이 집회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었다. 공무원과 교사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당연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을 뿐이었다.

경찰이 이 집회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당한 정도로 방해할 수는 있었다. 보도의 양쪽에 많은 전경들이 늘어서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민주화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민주화를 제대로 이루었다면, 이런 모습은 결코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시민이 바로 주권자이다. 시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 누구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사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다. 무력을 사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엄격히 규제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규제도 어디까지나 사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공무원과 교사는 ‘특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 세상에 ‘특수한 존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어떤 ‘특수한 존재’로서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누리게 되는 권리이다. 이런 것을 ‘천부인권’, 곧 ‘하늘이 부여한 권리’라고 한다.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이란 ‘특수한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민주공화국에서는 누구나 시민으로 태어나며 시민답게 살아갈 권리를 가진다. 공무원과 교사도 공무원과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공무원과 교사도 공무원과 교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다. 따라서 공무원과 교사도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다. 공무원과 교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무원과 교사는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 사회의 민주화 정도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어느 정도로 보장되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모든 정치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는 사회만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이다. 따라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는 불구적인 민주주의 사회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이제는 이런 후진적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면서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공무원과 교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정말로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지역주의와 정경유착에서 양분을 빨아들이는 반민주적 정당정치이다. 원내 최대당이 천억원이 넘는 불법자금을 심지어 ‘차떼기’와 같은 파렴치한 수법으로 받아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뚜렷한 근거 없이 탄핵한 것은 그 생생한 예이다.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이런 식의 낡은 반민주적 정당정치이지 당연한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공무원과 교사가 아니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더욱 더 넓고 깊게 보장해야 하고, 지역주의와 정경유착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은 영구퇴출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정치과정이 바로 선거이다. 선거는 단순히 대리자를 뽑는 행사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준엄한 심판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우리의 권리를 지키자.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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