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8-31   982

<안국동窓> 제 1야당의 서글픈 카타르시스

1년여 전 한나라당이 주최한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민변 출신 국정원장의 임명에 반발한 몇몇 의원이 소위 ‘국정원 폐지법안’을 제출했을 때였다. 토론에 앞서 대기실에서 환담을 나누는데, 자연스레 대통령선거와 노무현대통령이 화제가 되었다. 대화의 분위기는 일방적이었다. 필자가 끼어들 틈도 없이 대통령과 노사모, 386세대에 대한 불만과 성토가 쏟아졌다. 불과 10여 분 정도의 짧은 이야기 끝에 내려진 결론은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집단 패닉

그 결론에 대해 참석자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불과했다. 그 이면에 자리잡은 허탈함과 불안감까지 감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5년을 절치부심했고, 2002년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잃어버린 5년(김대중정부)은 어찌어찌 버텨왔는데, 다가올 또 다른 5년(노무현정부)은 견디기 힘든, 아니 견디기 싫은 것이었다. 한국 사회의 주류로서, 수십년을 지배해온 기득권세력에게 ‘권력’없이 보내야 되는 10년은 너무 길게 느껴졌을 법도 하다.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을 욕하고 멸시하고 조롱함으로써 얻게 되는 잠시동안의 희열 밖에는 없는 듯 했다. 일종의 집단적 패닉(panic) 현상이다.

지나친, 너무 지나친

그 집단적 패닉상태의 결과가 대통령 탄핵사태였다. 도무지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정하기 싫은’ 대통령을 끌어내릴 방법에만 골몰한 결과이다. 하지만 우여곡절끝에 국민들이 탄핵을 막아냈다. 이제는 대권은 물론이고 의회권력까지도 내주게 되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한나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반성과 변화’밖에는 없었다. 당대표를 다시 뽑고 다가오는 대선을 위해 신발끈을 조여매었다. 호남화해를 내걸고 한나라당 최초의 호남지역 연찬회를 열었다. 의원들은 재기발랄하게도 직접 연극을 준비하는 성의도 보였다. 풍자와 해학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여전히 국민이 아니라 노대통령에만 맞추어져 있었다.

대통령의 어록, 과거사문제, 행정수도 이전을 빚대어 풍자극을 기획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자로 표시할 수 밖에 없는 민망스런 대사가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성비하와 욕설이 난무한다.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아직도 패닉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족적인 카타르시스

‘프로를 방불케하는 연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연극을 보면서 그야말로 박장대소했다. 그분들이 그렇게 즐겁고 통쾌하게 웃는 모습은 일찌기 본적이 없다. 흔하게 보는 정치인의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하는 함박웃음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모습이 왠지 서글퍼보인다. 자족적인 카타르시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풍자와 해학은 어려운 현실을 잠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유용하다. 아직도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는가. 어쩌면 다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불임정당이라는 별명처럼) 떨고 있는가. 그래서 그 어려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육두문자를 사용하여 성적 비하와 욕설을 내뱉는 것인가.

진정한 ‘환생경제’를 위해서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 죽었던 ‘경제’가 되살아난다. 헌신적인 어머니 ‘근애’에게 감복한 염라대왕의 배려이다. 저승사자는 ‘거시기를 달 자격도 없는 ×’인 아버지 ‘노가리’를 대신 데려가려 하지만 이 역시 ‘근애’의 간청으로 3년간 유예된다. 감동적(?) 결말이다. 이미 죽었다는 설정 자체가 과도하긴 하나 ‘경제의 환생’은 국민 모두의 염원이다. 그런데, 그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대통령 때리기’가 가장 효과적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특히 ‘3년간 유예’라는 한나라당의 염원을 실현할 생각이 조금이라고 있다면 이제는 대통령만 쳐다보지 말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에 나서기를 ‘권고’한다.

장유식 (변호사, 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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