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10-29   740

<수요논객> “게임이즈오버”

『사이버참여연대』는 매주 수요일,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수요논객>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참여연대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춘 글이라면 주제와 자격의 제한 없이 소개할 것입니다. 논객으로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자신의 성함과 신분, 연락처를 명기해 desk@pspd.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번 주 수요논객은 김시원님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게임이즈오버”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노무현 정권이 뭔가 어설프고, 불안하기 짝이 없으며, 일관성도 없고, 거칠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나라꼴이 말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또 “자격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는 이 현실이 견딜 수 없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들은 이 정권이 제발 세련되고, 안정되고, 노련하며, 일관되었으면 하는 주문을 밤낮으로 외친다. 하기사 듣도 보도 못한 촌놈이(아, 이 불경을 용서하시라) 하루아침에 주류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주류는 물론 주류연하는 이들의 속이 편할 리 없다. 그것도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인 다음에야.

“시민의 힘으로 정치개혁을!” 외치며 지난 대선에 열성을 쏟았던 노사모 관계자 제위께는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난 대선이 진보와 개혁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승리한 것이라 보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우리가 언제 적부터 진보와 개혁에 진정어린 한 편이었던가. 설사 손을 들어주었다 치더라도 그 슬로건에, 그 경향성에 취한(술 취한 것처럼) 적은 있었을지언정 단 한번이라도 그 컨텐츠에 동의한 적 있던가. 그 사례를 나열하는 것조차 촌스럽고 민망할 지경이다. 지난 대선은 그런 의미에서 단지 하나의 흥미로운 이벤트였고 게임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구기득권과의 절연이라는 개혁적 선택이었다고?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국민의 승리였다고? 천만의 말씀!

사람들은 게임을 즐긴 것이다. 무릇 게임은 결과가 쉬 예측되지 않을 때 흥미진진한 법이다. 아니 오히려 뻔히 보이는 결과가 극적으로 뒤집어 질 때 게임의 묘미가 더 해지는 것 아닌가. 국민경선제였던가. 그 흥미로운 이벤트가 한창 펼쳐질 때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개혁과 진보의 컨텐츠 때문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촌놈이”(아, 이 불경을 또 한번 용서하시라) 뻔하기만 했던 정치시나리오를 뒤집어엎는 경이를 보여주었던 데 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너무 지루해서, 연상만 해도 하품이 절로 나는 정치판이, 지나가던 개에게서조차 냉소와 조소를 한 몸에 싸안고 있던 정치판이, 경마장처럼, 화투판처럼, 21세기 최신버전의 컴퓨터게임처럼 사람들의 심장을 달뜨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게임이즈오버”. 모든 게 끝났다. 선거가 끝난 게 아니라 게임이 끝난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정치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당사자는 정작 진실로 정의로운 개혁을 중심에 놓고 선거를 치렀는지 모르겠으되,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는 게임 한판을 즐긴 것이다. 노무현의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노무현에 대한 기대는, 늘 그랬듯이 채 한 줌도 안 되는 몽상가들에게는 잔존했을지언정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시 지루함과 냉소와 조롱의 일상으로 원위치된 것이다.

보수언론과 구주류는 사정이 어찌됐든 결과가 이렇게 빚어진 데 대해 한 때 망연자실했으나 곧 정신을 수습했다. 특히 사람들의 이 심리를 놓치지 않았다. 이 틈을 최대한 이용했다. 어설프니, 불안하니, 일관성이 없느니, 거칠기까지 하다느니 하는 따위들은 이들이 써먹기엔 너무나 알맞은 이미지였고, 이를 이데올로기로 가공하는 데는 그리 힘든 품이 들지 않았다. 공연히 심심해진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주어진 질서를 또 다시 흔드는 도전이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울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과거에 비해 게임의 시나리오가 너무 천박하고, 고루하며, 구태의연한 것은 지금 이 버전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이다. 상종가를 치기에는 경쟁력이 없는 상품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중권력의 공황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윈도우로 표상되는 몰가치의 사이버시대를 근원적으로 불신한다. 있는 질서를 그대로 전제한 위에 모든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안정적이며, 일관된 것은 무릇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던 대로, 있었던 대로, 예전과 같이 하면, 옛 패러다임을 그대로 쓰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기본은 한다”고. 과거의 격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건 어차피 시행착오를 각오하는 것이다. 아마도 지켜보는 사람들보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권력의 욕망을 스스로 잘라내면서 가는 이가 더 힘들 것이다.

노무현은 자기 자신도 힘들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힘들어하고, 구주류도 힘들어하는 이 일을 왜,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대목을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보면 오늘의 이 대중권력의 공황사태는 단지 정적들의 싸움만은 아니다. 누구는 우리 안의 파시즘이니, 동의의 독재니 하는 별 희한한 개념어들을 생산해내며 굳이 어려운 논리를 펼치고 있으나 정치나 사회과학을 쥐뿔도 모르는 나로서는 이리 단순한 문제를, 칠천만 동포들이 다 싸 짊어지고 괴로워하고 있는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순수하지만 미숙한 노무현의 아마추어리즘과 교활하고 세련된 국민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부딪히고 있는 것일까?

김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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