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기타(aw) 2003-02-11   747

노무현 시대 정치개혁의 방향

[칼럼] 손혁재의 <정치전망대>

21세기 들어 첫 번째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내세운 ‘정권교체’,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내세운 ‘정치교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내세운 ‘패러다임 교체’ 가운데 유권자들은 ‘정치교체’를 선택했다. 새로운 정치를 약속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노무현의 당선은 한국정치사에 큰 한 획을 그었다. 특정한 지역에 압도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보스가 끌어가던 사당정치, 지역정치가 막을 내린 것이다. 돈이나 지역감정, 색깔론, 흑색선전, 언론의 선거개입 등이 예전에 비해 힘을 많이 잃었다.

새로운 정치는 시대적 열망

낡고 썩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고자 하는 유권자의 선택이 노무현의 당선을 가능케 했다. 대선 정국을 강타한 ‘노무현 바람’은 정치인 ‘노무현 개인’에 대한 기대와 지지라는 좁은 뜻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유권자들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게 희망을 걸게 된 것은 ‘국가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자질’보다는 그의 ‘일관된 소신과 원칙의 정치’ 때문이었다. 특히 지역주의 극복과 언론개혁이라는 현안에 대해 보인 ‘일관된 개혁적 태도’가 새로운 정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노 당선자는 승리의 기쁨에 들떠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민심을 읽어야 한다. 16대 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개혁이다. 개혁만이 살길이다. 개혁에 실패한다면 우리 사회에 앞날은 없다. 노무현 시대는 문민과도기인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대를 마무리짓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가게 될 것이다.

문민과도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국정운영에 실패한 정치는 지난날을 반성하기보다는 정파적 이해에 매달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등 퇴행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갈등과 대립에 시달리고 있으며, 생각의 차이를 근거로 상대를 증오하는 증오의 정치가 일상화되었다. 이 같은 야만과 광기의 역사를 청산하는 과제가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노 시대의 화두, 정치개혁

최우선 개혁과제는 낡고 썩은 정치의 틀을 바로잡아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정치개혁이다. 지금까지의 정치가 갈등과 대립의 정치였다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화합과 조화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평소에는 소외시키고 배제시켰다가 필요할 때만 동원했던 동원의 정치에서 참여의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밀실에서 패거리들이 움직이던 닫힌 정치를 광장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열린 정치로 바꿔야 한다. 돈과 지역감정 등 비합리적 요인들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깨끗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

2000년 2월에 국회 의석 26석을 줄이는 등 정치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정치개혁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개혁과 국정운영의 힘있는 추진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정치개혁의 과제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준법서약서를 없애고 양심수를 전면 석방하는 일, 국가보안법을 없애고 조작간첩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을 철저하게 막는 일 등이 선거법·정당법·국회법·정치자금법의 개정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개혁과제이다.

개혁의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나 정치개혁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2004년 4월 15일에는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진다. 선거법 제24조는 선거가 치러지기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2003년 4월 15일 이전에 선거구획정이 끝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개혁을 할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3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으레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을 해왔지만 이번의 선거구 획정은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에는 인구의 증감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의 선거구 획정은 지금까지의 선거구 획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와 관련해서 두 개의 위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9일 ‘정치개혁추진 범국민협의회’ 구성 합의 직후 정치개혁연대 주최로 열린 ‘정당개혁, 이렇게 하자’ 토론회

첫 번째 위헌 판결은 현재의 전국구 선출방식이다. 유권자들이 각 지역구의 후보들에게 던진 표를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로 간주해서 전국구 의석을 배분하는 현재의 방식을 고치는 길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국구 자체를 없애고 모든 의석을 지역구선출로만 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이미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의회의 비례대표에 대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실시한 바 있다. 따라서 정당투표제라고도 불리는 1인 2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은 확정적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의석 배분 비율이 1 대 1이 되어야 한다. 진입장벽도 소수세력이나 신진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돕기 위해 2% 이상의 득표나 지역구 1석 정도로 해야 한다. 정당명부 작성도 당의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두 번째 위헌 판결은 투표의 등가성 문제이다. 1인 1표(one man one vote)의 평등선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서는 1표의 투표 가치도 평등(one vote one value)해야 하므로 인구편차를 헌법재판소가 권고한 2 대 1이 넘지 않도록 고쳐야 한다. 아울러 정치자금법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회 자신이 만든 선거법을 지키는 일이다. 2000년 총선 당시 국회는 1999년 4월 13일까지 획정해야 할 선거구를 2000년 2월 9일에야 획정했다. 선거법 제24조가 강제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이라 지키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10개월 동안이나 선거구 획정을 지연시킨 것이다. 정말 이번에는 법규정을 지키면서 정치개혁이 제대로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손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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