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기타(aw) 2004-06-04   1792

[정치지형의 변화와 시민운동 5] 시민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모색

인터넷참여연대는 17대 총선을 계기로 달라진 정치지형이 시민사회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보고, 이를 기초로 시민운동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의미에서 기획시리즈 ‘정치지형의 변화와 시민운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정당정치 정상화와 시민운동(상)

2. 정당정치 정상화와 시민운동(하)

3.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설 것인가

4.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시민운동

5. 시민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모색

(여기서 다루는 ‘시민운동의 독자 정치세력화’ 모색은 90년대 이후 권력감시, 환경, 여성, 경제정의, 인권, 평화 등 신사회운동적 가치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시민운동단체나 시민운동단체 인사들의 특정 그룹이 독립된 정치적 주체로 제도정치권에 진입하고자 하는 모색으로 정의한다.)

시민운동 독자 정치세력화가 제기된 정치사회적 배경은 역시 제도정치의 한계다.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제도정치에 진입하는 것만이 시민사회적 가치의 구현에 있어 유일하거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인식이 계속 확장돼 온 것이다.

독자 정치세력화 모색의 역사

시대적으로는 독일 녹색당 등 유럽 각국에서 녹색당의 성공, 국내적으로는 시민사회의 1차적 과제였던 민주화의 진전으로 녹색가치의 구현이라는 새로운 가치운동의 기반이 구축된 셈이다. 시대 상황과 맞물려 ‘녹색당 시기상조론’과 ‘시민운동 정치적 중립’ 원칙의 후퇴 등도 독자 정치세력화 모색을 떠받치는 담론적 근거로 작용해 왔다.

시민운동 독자 정치세력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첫 시도는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운동단체들이 녹색당 창당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93년 녹색연합이 출범했다. 녹색연합 중심의 녹색당 창당 논의는 상당한 잠복기를 거쳐 98년 지방자치선거를 기점으로 다시 활력을 얻었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녹색정치포럼’을 통해 녹색당 창당의 필요성과 성공 가능성, 시민운동 정치세력화 등에 관한 깊은 논의가 오갔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컸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 테제가 논의의 확산과 진전을 가로막은 측면도 있었고, 독자 정치세력화를 고민하는 주체 내부에서도 시기상조론이 팽배했다. 정당 형식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한 녹색연합 역시 결국 정당 창당을 포기했고, 일부 인사들만 따로 2002년 5월 녹색평화당을 창당했다. 녹색평화당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사회당과 통합, 녹색사민당을 출범시켰으나 저조한 득표로 결국 해산의 길을 밟았다.

반면 환경운동연합 중심의 녹색후보들은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기초의원 15명이 당선됐다. 이 멤버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녹색정치준비모임을 만들어 정당 창당 준비를 해왔다. 녹색정치준비모임은 지속적인 논의와 조직 정비를 거쳐 오는 6월 10일 ‘초록정치연대’라는 준정당 조직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시민사회 중심의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1천인 선언’이 있었다. 정대화 교수 등 각계각층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1천인 선언은 “정치적 중립은 제도정치가 강제한 담론적 허구의 성격이 강하며, 시민사회적 요구를 이념적 기초로 삼은 새로운 정치주체가 형성될 때만이 제도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정대화 교수 등 핵심멤버들은 이후 정치적 중립에 대한 도전 성격이 강한 당선운동을 실천전략으로 내걸었으나 현재는 추진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다만 정치적 중립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 새로운 정치주체의 형성 등 이들의 문제의식은 물밑에서 진행되던 시민운동 독자 정치세력화 논의를 수면 위로 전면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여성 정치세력화

여성 정치세력화는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독립적인 정치결사체의 결성과 제도정치 진입 모색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독자 정치세력화로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조현옥 여성정치세력화민주연대 대표가 밝힌 대로 “정치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부문의 권력관계에서 여성과 남성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분되는 구조를 깨고, 현재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정치문화를 여성주의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여성운동의 근본 목표에서 본다면 독자 정치세력화의 흐름으로 볼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운동은 ‘영향의 정치’ 대신 ‘참여의 정치’를 내걸고 정치대표성 확대에 주력했다. 총선여성연대를 통해 여성 정치대표성 확대를 위한 제도개혁운동을 펼쳤고, 맑은정치네트워크를 통해 여성후보 당선을 위한 후보전술을 펼쳤다.

총선여성연대로 대표되는 제도개혁운동은 여성할당제,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 선거자금법 개정 등 여성 진입장벽을 낮추는 제도개혁 요구에 주력해 비례대표 여성할당 50%, 비례대표 의석 10석 확대, 국고보조금에서 여성발전기금 10%확보 등의 성과를 올렸다. 맑은정치네트워크의 102인 여성후보 지지운동 등 후보전략은 이런 제도개혁의 성과와 맞물려 5.9%에 불과했던 여성 대표성을 13%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총선 이후 여성계의 총선전략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여성 후보의 이념과 자질을 무시한 대표성 확대가 과연 불가피한 후보전술이었고, 여성운동의 목표에 부합하는가’라는 문제제기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조영숙 한국여성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대체로 여성 정치세력화를 대표성 확대-여성운동의 질적 업그레이드라는 단계론적 전략에 입각해 설명한다.

“100인 여성후보 전술은 전면적인 후보전술이라기보다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모든 평등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결정과 자원배분의 권한에서의 평등인데, 최소한 여성 대표성의 임계질량이 30%는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동일한 이념적 지향을 가진 여성집단의 진출은 아니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범여성’이라는 틀거리로 계속 갈 수 있는가 의 문제가 있다. 성평등, 풀뿌리, 반세계화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여성 세력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고민하고 있다.”

조현옥 대표 역시 “이미 2002년부터 이념에 관계치 않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면 모두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면서 “18대에는 보수와 진보, 또는 당을 초월해서 추천하고 지원하는 작업이 과연 가능할까, 이제는 분화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초록정치연대의 출범

오는 6월 10일 출범하는 초록정치연대는 생명, 평화, 미래, 풀뿌리, 나눔, 지구, 다양성, 성평등 등 8개 중심가치를 표방하고 있다. 초록정치연대는 환경연합 녹색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기초의원 10여명이 녹색당 출범을 준비하면서 지난해 초 ‘녹색정치준비모임’을 꾸렸고, 참여인사의 확대, 핵심가치의 확정, 조직운영원리 등 꾸준한 논의와 준비를 거쳤다. 시민운동 독자 정치세력화와 관련해 구체적 일정과 추진력을 갖춘 유일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초록정치연대는 환경과 생명 분야 활동가 40여명 이상, 여성운동에서 25명 안팎, 자치·지역운동, 평화운동, 연구자 모임 등에서 각각 10여명, 지방의회 의원 10여명 등 총 300여명 정도로 출발한다. 초기 참여규모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모임을 준비해온 서형원 간사가 “환경운동에 10여년 헌신해왔던 상당수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 비춰, 환경·생태운동 단체 출신의 중량급 인사들이 상당수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록정치연대가 표방하는 8가지 핵심가치는 물론 서구유럽의 신사회운동이 표방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이 합의한 조직의 운영원리는 현재 시민운동단체나 진보정당의 개방성이나 민주성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형원 간사의 얘기다.

“기존 정당의 위계적인 조직구조를 탈피해 평의회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참여하는 운영위를 두려고 한다. 직제, 조직구조에 있어서도 위원장 등을 두지 않고 수평적 협력관계로 가져가려고 한다. 전체 조직구조도 피라미드형이 아니라 각 지역이 자기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지역초록정치 조직이 연대하는 정당을 만들 것이다. 회장, 대표, 국장 등이 없다. 정치운동과 시민사회의 관계에서도 당 중심성보다는 시민사회 각 부분과 개방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것이다.”

제도정치권 중에서 초록정치연대의 출범과 관련해 가장 큰 이해를 가진 정당은 역시 민주노동당이다. 초록정치연대는 민주노동당 역시 국가주의, 민족주의, 성장주의 담론에서 대체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서형원 간사의 얘기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변혁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생태적 관점에서도 진보적 성향이 있다. 그러나 의제의 우선 순위와 초점이 다르다. 민주노동당 안에도 다양한 분들이 있고, 녹색의 문제와 관련해 단일한 입장을 갖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국강병론 비슷한 국가주의, 분배를 잘해야 성장이 잘된다는 논리에서 보이는 성장담론, 이것은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분명히 다르다.”

초록정치연대의 출범에 대해 시민사회는 대체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독자 정치세력화 논의는 계속돼 왔으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를, 조영숙 여성연합 사무처장은 “주체의 문제가 있지만, 상당히 유의미한 모델로 본다”는 평가를 내렸다. 첫 원내 진출로 정치적 긴장이 예상되는 민주노동당의 김윤철 정책위원 역시 “독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에 긍정적이며, 민주노동당의 의제 설정에도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2006년 지방선거와 독자 정치세력화

초록정치연대의 실험은 지역단위 시민운동이 2006년 지방선거에 적극 진출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평이다. 실제 대구참여연대의 경우 지역에서 대변형운동의 경향적 한계상황에 대한 타계책으로 기초의원 선거에 적극 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화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상근활동가, 임원 등이 기초의원과 겸직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분위기를 파악해 본 결과 2006년 기초의원 출마는 거의 대부분 지역 시민단체에서 검토 또는 추진 중”이라며 “기초의원을 중심으로 ‘참여자치후보’와 같은 전국 공동의 브랜드 사용도 검토하고 있으며 합의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윤 처장은 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를 고려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은 현재 분위기상 환경운동단체들은 녹색 가치를 기치로, 그리고 여타 단체들은 민주노동당에 흡수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민주노동당 역시 원내 진출 이후, 지역단위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도약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2006년 지방선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집권이 목표인 이상 표의 분산이라는 단기적 이해에 집중해서는 안되고, 실제 ‘녹색 의제’가 제도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분명치 않아 표의 분산 효과도 크지는 않을 것” 이라는 김윤철 정책위원의 전망처럼, 표의 분산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은 편이다.

서형원 간사 역시 “민주노동당이 아직까지는 지역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 만큼, 선거준비로서의 지역활동이 아니라 일상적인 지역운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면서도 “기초의원이 아닌 단체장의 경우, 지역적으로는 공동전략과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처럼 2006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풀뿌리 자치운동-민주노동당-초록정치연대 등 제 운동진영 사이에 시민운동 독자 정치세력화는 폭발력있는 의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독자 정치세력화를 화두로 제 진보운동 진영의 연대 지평 역시 훨씬 넓어지고, 연대의 양상 역시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초록정치연대 중심의 독자 정치세력화 움직임은 현재로선 연대의 문제보다는 조직과 주의주장이 얼마나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 지에 대한 실험적 성격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분배를 통한 성장 주장 역시 성장담론의 아류”라는 초록정치연대의 입장과, “성장을 위한 분배가 아니라 성장의 구성 내용이 무엇이냐는 문제제기로서 주장되는 분배는 결국 녹색의 가치를 반영한 분배”라는 민주노동당의 주장은 ‘의제의 우선 순위와 초점’ 이 다른 양 진영간 연대의 문제가 단순히 지방선거 선거전략보다 더 심층적인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중립의 원칙 역시 권력감시운동의 전문화를 준비하는 시민운동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강하게 요구되는 측면도 있다.

결국 초록정치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 독자 정치세력화 모색은 당분간은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지지와 관심 속에서 힘을 얻기보다는 상당 부분 주체의 준비정도와 정치력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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