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7-01-11   634

<안국동窓> 국민 냉소 녹여줄 ‘희망의 정치’를

연초부터 정치권은 올해 12월에 치러질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선 통합신당 추진을 놓고 당내 갈등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한나라당은 당 대표의 부적절한 성희롱 발언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것은 지난해부터 예상되었던 일이긴 하다. 5·31 지방선거 이후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을 추진했고, 한나라당은 판세 굳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론매체들도 유력한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전달했다.

그러나 정작 주권자인 국민은 차갑기만 하다. 참여정부에 걸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국민의 정치불신은 매우 깊어져 더욱 냉소적이 되었다. 한나라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무언가 국민에게 확실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난 2002년 대선과정을 휩쓸었던 열기가 17대 대선을 앞둔 지금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16대 대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정한 지역에 압도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1인 보스가 끌어가던 사당정치, 지역정치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선거과정에서 돈이나 지역감정, 색깔론, 언론의 선거개입 등이 예전보다 힘을 많이 잃었다. 그 대신 국민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적극 참여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과 방향을 보여주었다. 정책적 차별성에 무관심하고 돈이나 지역주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던 유권자가 낡은 정치의 틀을 거부했다. 국민의 정치 불신과 정치 무관심이 심각하지만 정치가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 준다면, 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만 보여준다면, 국민의 능동적인 정치참여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16대 대선이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한국 정치는 낡은 정치의 수렁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다. 정치부패 척결, 민주주의적 거버넌스 정착, 국민적 자유의 확대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음에도 정치는 여전히 국민의 원성을 듣고 있다. 되풀이되는 파행, 보이콧 등 국회는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경제권력에 휘둘려 재벌 눈치보기, 건설족 비호 등에 바쁘고, 부적절한 골프와 성희롱, 폭언 등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민생은 어려움에 빠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일년 내내 체제정비만 하다가 허송세월을 했다. 집권야당이라고 불리는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공격에만 열을 올렸을 뿐 국민에게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앞세워 예산안을 비롯해 거의 모든 안건 처리를 막기에 바빴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건 희망이다. 양극화가 완화될 수 있다는 희망,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희망, 내집 마련이 쉬워질 거라는 희망, 교육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희망,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될 거라는 희망, 노후가 보장될 거라는 희망 ….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희망들이 이뤄지리라는 기대를 품지 못하고 있다.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지금의 높은 지지도, 멋진 새판짜기도 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국민들은 희망을 주는 후보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구호에 그치는 희망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첫걸음은 신뢰를 얻는 것이다.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찬란한 장밋빛 구호가 아니라 지금까지 국회와 정당들이 미뤄놓은 민생법안 등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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