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반노 구도? No!”

전문가가 본 탄핵정국의 성격

야 3당의 탄핵안 가결 이후 전개되고 있는 탄핵정국은 어떠한 세력구도로 분석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 민주당 등 탄핵을 주도한 야당세력이 현 탄핵정국을 ‘친노(親盧)·반노(反盧)’ 구도로 끌고 가려 애쓰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을 단호히 반대하며 ‘민주·반민주’ 구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야당과 보수언론, ‘친노·반노’ 구도 전환 안간힘

탄핵정국을 친노·반노 구도로 가져가려는 야 3당의 시각은 14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17대 총선은 친노·반노의 사생결단적 전쟁이 될 것”이라는 말에 압축돼 있다. 이미 여론조사를 통해 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나타난 탄핵 찬성·반대 구도나, 민주·반민주 구도로 총선정국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는 방어전략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저조한 지지율을 부각시켜 친노·반노 전선을 형성하면,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지역의 결속과 함께 정국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적극적인 정국반전 구상을 드러낸 것이다.

최 대표의 정국 구상에 화답하듯 조순형 민주당 대표 역시 15일 “탄핵에 반대하는 친노 세력이 합법적으로 의결된 탄핵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탄핵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여론을 ‘친노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야당의 이런 정국 구상에 대해서는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서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탄핵안 가결 전에는 사설을 통해 ‘사과도 표결도 거부한 대통령’ 등의 제목으로 탄핵안 추진의 정당성을 옹호하다가, 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비등하는 탄핵반대 여론을 감안한 듯 양비론의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김인영 한림대 정외과 교수가 자유기업원의‘executive essay’로 실은 ‘탄핵정국은 권력다툼’이라는 글을 16일 긴급히 인터넷 사이트에 전재했다.

김인영 교수는 이 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탄핵정국의 본질적 핵심은 지난 1년 동안 만들어진 친노 세력과 반노 세력 간의 권력다툼의 한 과정일 뿐”이라며 “탄핵을 중심으로 한 친노와 반노의 다툼은 선악의 대결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도 아닌,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권력을 흔들어 뺏으려는 세력간의 권력다툼에 다름 아니다”고 규정했다. 최 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정국 구상에 그대로 부합되는 글이다.

중앙과 동아 역시 각종 사설과 탄핵정국 관련 기사에서 현 정국을 친노·반노 구도로 분석하거나, 끌고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16일자 중앙일보 사설 ‘경찰의 촛불집회 금지 결정 옳다’는 탄핵 반대와 찬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양진영의 주장을 설명하면서, “촛불집회 주최측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수호 운동이므로 이를 친노 대 반노의 대립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규탄집회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계산이 한창이다”는 말로 친노·반노 대립구도를 은근히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중앙일보 14일자 ‘친노·반노 대립 심각’ 기사 역시 압도적인 흐름인 탄핵반대 운동을 친노 세력과 반노 세력의 대결로 몰고가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동아일보 16일자 ‘부동층 40% 총선표심은?’이라는 제목의 여론조사 기사는 탄핵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낸 각각의 집단을 반노와 친노로 분류하고 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시론은 “방송사는 친노 인사들을 동원해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고 반대여론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탄핵정국을 친노·반노로 설명하거나, 끌고 가려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시각은 여론동향과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양상에 전혀 맞지 않으며 대국민 설득력도 없다는 지적이다.

우선 탄핵안이 가결된 12일 오전까지만 해도 여의도에 모인 상당수 인원이 노사모나 국민의힘 등 친노 성향 단체의 회원들이었으나, 당일 밤 촛불집회부터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이 탄핵반대운동의 주력으로 등장했다. 지난 주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보면 주부, 학생, 넥타이부대부터 어린이 동반 가족까지, 조직동원과 무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행사를 주도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탄핵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국민행동 구성단체들의 성격도 탄핵정국이 친노·반노 구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잘 설명해준다. 김민영 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은 “FTA 국회 인준에 반대해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던 전국농민회 같은 단체도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 중에는 파병을 강행하고 개혁 일관성을 상실한 노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단체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친노·반노와 무관하게 탄핵안 가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라는 공통된 인식하에 공동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대학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숭실대, 전남대, 한양대 등 전국 25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지난 15일 ‘탄핵반대 대학생운동본부’를 결성하고 17일부터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가할 계획을 밝힌 것. 내부적으로는 자칫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라는 대의를 위해” 탄핵반대 운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전문가들, ‘민주·반민주 구도 ± α’

범개혁진영의 전문가들은 현 정국이 친노·반노 구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데 기본적으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현재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노사모 같은 단체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과거 민주화 투쟁세력이 동참하고 있는데 이는 친노·반노 구도로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친노·반노가 핵심 코어를 형성하고는 있지만 상당한 중간층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이 사과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60%대에 이른 것은 반노 세력과 중간층의 여론이 더해진 것으로 보아야 하고, 탄핵 반대의견이 70% 대에 이른 것 역시 친노 세력과 중간층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한국사 교수는 “나 자신이 집회에 참석했지만 결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해서는 아니다”는 말로 친노·반노 구도를 반박했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역시 “친노·반노 구도는 권력주의적 기성 정치집단의 정략적 발상에 의한 것”으로 단정했다.

이처럼 개혁 성향 전문가들은 모두 친노·반노 구도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도, 일정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민주·반민주 구도로 바라보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현 상황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석 방법론으로서 민주·반민주 구도가 충분치 않다는 시각도 나타났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탄핵정국을 민주·반민주 구도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인사다. 김 교수는 “87년 이후 우리 정치는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3김의 보스정치와 파당정치, 이에 수반한 부정부패 등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이 계속 지연돼 왔다”면서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더디지만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고, 그것이 노 대통령 당선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탄핵안 가결을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나타난 기득권세력의 저항으로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탄핵안 가결은,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정당개혁을 수반한 정치개혁, 제왕적 대통령의 해체 등 전체적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에서 기존 권력을 상실할 위기감을 느낀 기득권 세력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현 정국은 민주·반민주 구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반민주 구도로 현 정국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다양하게 제기된다.

한홍구 교수는 “전에는 수구세력과 보수세력이 섞여 있었다면, 이번 탄핵안에 대한 여론에서는 수구세력으로부터 보수세력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발견된다”면서 “아직 적절한 용어를 찾지는 못했지만 민주·반민주 구도는 이런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손호철 교수는 “민주·반민주 구도보다는 탄핵 반대·찬성 구도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손 교수는 “탄핵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한나라당 뿐이었다면 민주·반민주 구도가 타당할 수도 있다”면서 “이라크 파병, 집시법 개악 등 정책에 대한 입장을 보더라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경우 민주·반민주 구도가 두 당 사이에 적용된다기 보다는 정파연합적 성격을 갖는 당 내부의 인적 구성에 따라 설정돼 있다”는 시각을 피력했다.

조현연 교수는 “민주·반민주라는 하나의 구도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면서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절차와 내용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탄핵 근거의 문제, 탄핵 추진 절차의 문제 등이 절차적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라면, 민생의 문제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내용’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절차와 내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가지 측면에서 어느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를 압도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교수는 “민주노동당과 민중단체가 국민행동과 함께 민주주의 수호에 동참하면서도 민생을 화두로 진보정치 실현이라는 구호를 표방한 것은 민주주의의 ‘내용’ 역시 이번 탄핵정국에서 강조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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