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찬반 논란 종식시킨 민주주의 대축제”

3.20 백만인대회의 의미

지난 20일 밤, 서울 광화문 4거리로부터 시작되어 시청앞 광장까지 이어진 30만개의 촛불은 그 광경만으로도 장관을 이뤘다. 행사를 주관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 범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측 추산에 따르면 전국 41개 도시에서 촛불행사에 참여한 인원이 40만 명. 여기에 온라인으로 참여한 45만 명의 네티즌을 더하면 이 날 행사 참가 인원은 무려 85만명에 달한다.

탄핵찬반 논쟁에 종지부

우선 행사를 주관한 국민행동 측은 “탄핵에 대한 찬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국민행동 상임집행위원장)은 “여론조사 결과 70% 이상이 탄핵에 반대한다고 나오는데도 탄핵을 주도한 야당들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언론의 편파보도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20일 대규모 촛불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는 이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처장은 “탄핵반대에는 너무나 명확한 합의를 이뤘기 때문에 20일 행사는 연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집회 형식을 취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며 이미 국민들은 탄핵반대를 넘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적 여론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친노 대 반노’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식 대 비상식,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라고 반박한다. 김 교수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보다는 상식에 어긋난 행위, 너무나 반민주적인 행태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3.20 백만인대회’로 확인된 범국민적인 탄핵반대 여론은 이후 야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촛불시위 다음날인 21일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촛불시위 배후에는 열린우리당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당내 동요는 이미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 대표 경선출마자인 김문수 의원 등 핵심인사들에 의해 ‘탄핵철회론’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민주당내에서는 ‘탄핵사태’ 책임을 물으며 당 대표진 사퇴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흐름이 양 당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김기식 처장은 “탄핵의 정당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내부로부터 문제제기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당락이 급하니까 면피용 제스추어를 취하는 면이 크다”고 진단했다.

민주주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준 것

무엇보다 이번 촛불행사의 의미는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정치시위라는 점에 있다. 87년 6월 항쟁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 절차적ㆍ형식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면, 제2의 6월 항쟁으로 불리우는 이번 탄핵반대 운동은 민주주의의 실질적ㆍ내용적 진전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며, “기대만큼 급속하게 발전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4-5년 안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부분 완성해낼 것 같다”고 예상했다. 서 총장은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을 비롯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활동할 토대도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김기식 처장은 “역전 불가능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87년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민주화의 동력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민주주의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주의 심화의 구체적 과제로 “보수적인 정치세력의 의회독점을 깨고 진보정치세력이 그 열린 공간에 진입하는 것”을 꼽았다. 더불어 수구보수세력이 이번 사태를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 합리화된 보수당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새로운 시위문화 창출, 잃어버렸던 공동체문화의 재발견

무엇보다도 ‘3.20 백만인대회’를 통해 빛난 것은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과 시위문화였다. 미군궤도차에 의해 살해된 여중생 추모집회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이제 평화롭게 연대하는 저항문화의 표상이 되었다. 월드컵 당시 한국축구를 응원하며 쌓인 대중집회 경험과 그동안 축적된 시민사회단체들의 역량이 결합되어 2004년 3월,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탄핵안 가결 직후 긴급히 마련된 13일 촛불시위에서부터 새로운 시위문화는 시작됐다. 문화와 질서가 폭력과 억압의 자리를 대신했다. 탄핵안이 가결되던 순간의 분노는 해학과 풍자로 승화됐다. 시민들은 집회에 단지 참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기발랄한 피켓과 갖가지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고 가족단위의 참여도 많았다. 한마디로 참석한 모두가 주인공인 ‘민주주의의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던 것이다.

정현백 범국민행동 공동대표(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우리의 공동체 문화를 다시 발견”했다고 평가한다. “민주주의의 열망을 기반으로 후원금으로, 자원활동으로, 자발적 동참으로 그 행사를 함께 치뤄냈다”고 감탄했다. 정 대표는 “갑작스런 경찰의 봉쇄로 6시에 마련되었어야 할 무대가 10시가 되어서야 완성됐다. 주최측의 고의는 아니었지만 점점 추워지는데 행사가 계속 늦어져 너무 죄송했다”는 인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서주원 총장도 “말로만 외쳤던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의 참뜻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라며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럽다. 촛불을 들고 있던 이들은 물론 온라인을 통해 그 광경을 보던 이들도 비슷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라고 감탄했다.

김민영 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은 “백만인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승리를 확신하며 질서정연하고 평화롭게 민주주의 축제 한마당을 만들어냈다”며, 특히 30만명이 운집한 행사장에서 질서유지와 안내, 30만개의 촛불제작과 마지막 청소까지 도맡은 3천여 명의 자원활동가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된 지 단 몇시간 만에 1억 1천만원의 후원금을 모아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호기 교수는 “민주주의가 제도와 사회운동이라는 두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간다면, 제도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사회운동은 많이 성숙되었다”며 이번 촛불시위가 그것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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