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보조금은 임자 없는 공돈 아니다

국민 ‘혈세’로 낡은 정치 부양해서야

정당이 쓰는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국민의 세금이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수백 억 원의 국민세금이 국고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에게 지급되며, 선거 때가 되면 또 수백 억 원의 선거보조금이 정당에게 지급되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제도는 1981년에 도입되었다. 1980년에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당근과 채찍을 써서 기성정치인들에게 다스리려 했다.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은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만만한 정치인들에게는 정치활동을 허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정당들에게 정당운영의 내실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국민세금을 나누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제도가 도입된 취지는 이처럼 고약했지만, 이 제도로 말미암아 정당운영이 정상화되고 정치발전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국민세금인 국고보조금이 멋대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1981년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은 8억 원이었다. 이것이 20년 사이에 몇십 배로 늘어나 2000년에는 516억 원이 지급되었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치러질 내년에는 1139억 원 정도가 지급될 예정이다.

정당의 보호 육성을 위하여 국가가 정당에게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의 액수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정치인들이 검은 돈에 손을 내밀지 않고, 정치개혁에 앞장서고, 정치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이 돈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새 천년이 시작되었어도 여전히 정치는 낡고 썩은 틀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지역으로 갈라져 민생은 팽개쳐두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는 정치에 국민은 신물이 나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정치무관심을 지나쳐 정치혐오의 단계에 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들이 정치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작년 4.13총선에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낙선운동이 벌어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돈세탁방지법의 제정 문제이다. 1999년에 미국에서 아흔 살의 한 할머니가 걸어서 미국 땅덩어리를 가로질렀다. 그 할머니가 열 한 달이나 걸려서 미국을 걸어다니며 한 말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돈 때문에 썩어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우리 정치를 썩게 만든 장본인인 정치인들은 이러저러한 여러 핑계를 내세워 깨끗한 정치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정치는 검은 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정치개혁위원회가 분석한 데 따르면 정당들은 재정자립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당재정의 기초인 당비가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채 5%가 안된다. 이에 비해 국고보조금은 전체 수입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재정자립도 제대로 못하면서 국고보조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국고보조금을 멋대로 쓰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2000년에 정당들에게 지급된 국고보조금 516억 원(한나라당 211억 원, 민주당 184억 원, 자민련 96억 원, 민국당 24억 원, 한국신당 1억 원) 가운데 제대로 쓰인 돈의 비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어디에 쓰였는지 정당이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돈이 거의 4분의 3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지출증빙서류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지출증빙서류 정상적인 것 가운데에도 그 쓰임새가 수상한 것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당 원로의 휘호·달력·화첩 제작비 등 정당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사적인 용도로 쓰인 돈들이 있는 것이다. 정당 사무원들의 봉급을 정책개발비라고 강변하는 것도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정당의 뿌리는 국민이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음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소중한 돈이다. 이 국고보조금을 계속해서 멋대로 쓰다가는 국민들의 저항에 부닥칠 수도 있음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국민소환운동이 벌어지고, 국고보조금 제도 폐지운동이 벌어지기 전에 정치는 반성하고 올바른 정치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손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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