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회계보고서도 무사통과

지구당 운영비로 국회의원 개인 빚 갚기도

‘지구당 운영비를 국회의원 개인 빚 갚는 데 사용’, ‘내역을 알아볼 수 없도록 겹쳐서 복사한 영수증 제출’, ‘같은 명목으로 중복지출’….

이처럼 엉터리 회계보고서를 들이밀어도 무사통과하는 곳이 있다. 각 정당과 지구당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 누군가가 각 정당과 지구당이 제출한 회계보고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소명절차’를 마치면 대부분 ‘단순 사무착오’로 처리된다. 결국 선관위는 각 정당 회계장부의 잘못된 점을 친절하게 지적해주는 ‘자문역’으로 전락한 셈이다.

최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가 각 정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일부 정당과 지구당은 선관위에 허위 회계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를 감시해야할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감사기능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허위·부실 회계보고서 용인, “선관위 직무유기”

지난 4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지역지구당 정치자금 실사작업을 통해 자민련 송광호 의원이 정치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사 결과 시민연대는 자민련 제천·단양 지구당 회계보고서에 나타난 기타 경비 중 3000만원이 송광호 의원 개인의 차입금 변제에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3000만원을 언제 차입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또 자민련 제천·단양 지구당은 영수증 일부가 누락됐는데도 영수증이 있는 것처럼 비고란에 첨부서류 번호를 기재했고, 사업자등록번호는 같은데 업체명이 틀린 영수증을 수차례 첨부한 사실도 발견됐다.

그러나 지난 2월 지역 선관위의 ‘정당의 회계보고서 심사조서’에 따르면 “보완 요구 사항이 없다”며 “일부 미흡한 부분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회계처리 절차에 의해 적정하게 작성되었다”고 적시돼 있다. 선관위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회계보고서의 잘못을 발견하고 해당 지구당에 회계보고서를 다시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충청북도 지구당은 A4 용지 1장에 6장의 영수증을 겹쳐서 붙인 뒤 이를 복사해 회계보고서에 증빙서류로 제출했다. 영수증 사본은 지출금액, 업체명 등이 확인가능한 상태로 제출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제출한 서류로는 이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지역 선관위는 이 문제 역시 시민단체에서 지적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양준석 간사는 “제천·단양 선관위 관계자는 자민련 회계담당자가 몇 년 동안 일해왔던 사람이라 믿고 제대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면서 “지역 선관위는 각 정당 회계보고서의 지출 총액이 맞는지만 확인하고 영수증 대조 등 실제적인 감사는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정치자금 감사할 의지 부족”

또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민주당 고창 지구당(위원장 정균환)의 경우도 회계보고서상 지난해 8월 1천만원을 같은 명목으로 중복 지출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민주당 고창지구당의 경우 1천여만원을 식대로 지출하면서 카드 영수증을 첨부했다. 또한 같은달 다시 카드 명세서를 첨부해 1천만원을 지출금액으로 중복 계상했다. 실사조사팀은 이를 선관위에 지적했고 선관위는 이에 대해 민주당 고창지구당에 소명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 고창지구당 회계담당자는 선관위에 “서울 사무소 임대료가 잘못 첨부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사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의원사무소의 임대료는 1200만원이었다. 그러나 선관위는 지구당의 소명을 받아들여 ‘단순 사무착오’로 처리했다.

전국 시민단체들의 실사결과 밝혀진 지역 지구당 정치자금의 허위·부실 회계보고에 대해 선관위는 대부분 ‘단순 사무착오’로 처리했다. 이에 대해 신광식 한국 C.L.C 사무국장은 “실질적으로 선관위가 정당의 정치자금 사용 실태를 감독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이강준 간사는 “지난 21년 동안 정당 국고보조금 사용에 대해 형식적인 지적만 했을 뿐 단 한차례도 위법사항에 대한 법적용을 하지 않았다”며 “각 정당에 대한 선관위의 관리·감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간사는 “특히 서울 중구 선관위 등 일부 지역선관위는 불법적으로 지구당의 허위 회계보고를 용인해주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는 선관위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선관위, 인력·권한 강화돼야

한편 시민단체들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중앙선관위 정치자금과 임호근 사무관은 “정치자금을 감사할 1차적 책임이 선관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정치자금은 공개의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통제와 감시를 받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임호근 사무관은 “정당 회계보고서를 공개하는 의미는 국민이 정당에 대해 직접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사후 처리가 제대로 되었다면 지역 선관위에서 서면심사 당시 누락된 부분을 직무상 오류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임 사무관은 또한 “지역 선관위가 각 정당의 업무를 관리·감독하기에는 권한과 인력이 부족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선관위의 조사대상이 제한되어 있으며 실사를 하기엔 인원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선거비용 등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선관위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처장은 “현재 선관위는 정치자금을 실사할 만한 사법적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며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관련 법규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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