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공천하면 선거자금 받지말자”

김수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의 제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실사한 결과 드러난 비리 규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치자금의 핵심은 음성화된 자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정치자금보다 비공식적인 정치자금의 규모가 훨씬 크지만 이에 대한 감시는 전혀 안되고 있다.”

최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의 정치자금 실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수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47,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4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정당 보스가 자기 마음대로 써왔고, 이를 견제할 만한 장치가 어떤 정당에도 없었다”면서 “국고보조금, 기부금 등 공식적인 정치자금 외에 음성화된 정치자금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또 “정치인들 스스로 음성화된 정치자금의 투명화 노력에 나설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정치자금에 관한한 정치인들 스스로 개혁정책을 도입한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정치개혁은 시민사회의 요구나 대형 부패 사례에 따른 민심이반 등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이뤄져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 “독일 헌법에는 정치자금의 출처를 공개하도록 명시돼 있고, 국고보조금과 관련한 여러 가지 규제조항이 있다”고 제시하면서 “조만간 헌법소원을 제기해 각 정당의 회계보고서를 3개월 동안만 열람하도록 하며 복사를 금지하고 있는 정치자금법 등의 법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정당활동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각 정당이 민주적인 공천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선거자금을 주지 않는다는 등의 단서조항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한 “도대체 우리나라 어느 정당이 이념적 인센티브를 자극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정당활동비 중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이고 이같은 정치현실에서 당비로 운영되는 대중정당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음성화된 검은돈’ 흐름을 잡아야 한다

이번 정치자금 실사의 의의는.

“정치자금 감시는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지출감시, 수입감시, 불법적인 정치자금 감시. 그러나 우리 정치현실에서 수입감시와 불법적인 정치자금 감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치자금 감시 운동의 첫 번째 과제로 지출감시 운동을 벌였다.

시민단체들이 지출감시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정치자금을 더 이상 감시·견제의 예외 지역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돈의 흐름을 통해 정치인들의 활동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이제까지 정치자금 감시는 정치인, 선관위, 유권자들도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 정치자금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번 조사의 의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정치자금의 핵심은 공식적인 정치자금이 아니라 음성화된 ‘검은 돈’이다. 음성화된 정치자금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이번 지출감시운동을 통해 드러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언론사 사주 구속과 관련해 민주당 정대철 의원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기업이나 정치인이 부외(簿外)자금 없이 활동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김영삼, 김대중도 대통령 이전에는 많이 받아썼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회창, 이인제 등 현재 대권 후보들은 과연 ‘검은 돈’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질문해봐야 한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에서 음성화된 정치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실질적인 감시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개혁은 곧 정치개혁

시민단체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나.

“물론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생각하는가? 정치자금에 관한 한 정치인들 스스로 개혁적인 정책을 도입한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정치 개혁은 시민사회의 요구나 대형부패 사례에 따른 민심이반 등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이뤄져 왔다.

독일의 경우 당비납부에 따른 국고보조금 지급이나 보조금 지급 총액 제한 등 핵심적 사안은 헌번재판소의 위헌판결을 통해 이뤄졌다.”

미국의 경우 커먼코즈(common cause) 등 시민단체에 의한 정치자금 감시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정치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미국을 모범으로 삼아 운동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미국의 정치자금은 정당에 무제한 제공될 수 있는 헌금인 ‘소프트 머니’와 일정한 제한이 있는 후보자에 대한 헌금인 ‘하드 머니’가 있다. 미국도 ‘소프트 머니’에 제한이 없으니까 선거 때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이 쓰인다.

그러나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은 전반적인 돈의 흐름 자체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먼코즈와 같은 시민단체가 합법화된 정치자금의 흐름을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국은 ‘소프트 머니’ 형태로 정당에 기부되는 돈의 추적이 가능하니까 음성화된 정치자금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은 경제 전반의 투명성과 직결되어 있다는 주장인가.

“그렇다. 우리나라와 서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지점이다. 몇몇 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이탈리아를 예로 들면, 이 나라도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지수가 높다. 이탈리아는 지난 90년 정치인들에 대한 대대적 사정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가 당선된 최근 총리 선거에서도 불법적인 선거자금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는 곧 국가의 경제 자체가 투명하지 않으면 음성화된 정치자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어느 정당이 이념적 인센티브를 자극하는가”

이번 정치자금 실사를 통해 전체 정치자금 중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조적으로 당비납부 문제를 개선할 만한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당비납부율을 높일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 오랜 정당정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경우도 당비납부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당활동비에서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등 유럽 좌파정당은 대중적 지지에 기반한 대중정당으로 오랫동안 당비가 정당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론적으로 얘기하자면 한 개인이 정당활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은 금전적 유인, 이념적 유인, 정치적 유인 세 가지이다. 이 중 이념적 유인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계급 대립 등 이념적 유인이 쇠퇴함에 따라 당비납부율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도대체 우리나라 어느 정당이 이념적 인센티브를 자극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들을 늘리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당비 납부의 문제는 단순히 재정 자립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당내 민주성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 아닌가.

“물론 유럽의 정당들도 국고보조금의 의존도가 늘어나지만 오랜 대중정당의 역사에 기반해 정당활동의 민주성이 높다는 점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 정당은 대중정당이 아니라 잘 봐주면 명사정당, 사실은 몇몇 정치 보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당(私黨)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공적으로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을 정당의 보스가 자기 마음대로 써 왔다. 이를 견제할 만한 장치가 어떤 정당에도 없었다.

몇몇 보스에 의해 정당의 모든 일이 결정되는 비민주성은 자체적으로 해소되기 힘들다. 오히려 국가와 국민이 이를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당활동비의 상당부분을 국고보조금을 통해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은 국고보조금의 사용방식과 내용을 통제할 명분과 권한을 갖게 된다.

단순히 자금문제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정당활동의 민주성과 투명성도 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자금으로 국고보조금이 각 정당에 평년의 두배가 지급된다. 이때 각 정당이 민주적인 공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선거자금을 주지 않는다는 등 단서조항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정당활동에 대한 지나친 국가의 통제가 아닌가.

“정당은 동일한 정치적 권력을 가진 개인들의 결사체인 동시에 공적인 성격을 가진다. 독일의 경우 헌법에 정치자금의 출처를 공개하도록 명시되어 있고 국고보조금과 관련한 여러가지 규제조항이 있다.”

향후 시민단체에서 정치자금과 관련해 어떤 운동을 펼칠 것인가.

“조만간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각 정당의 회계보고서를 3개월동안만 열람하도록 하며 복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유권자의 알권리를 침해한 조항이다.

이외에도 헌법소원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등 유관 위원회에 정치자금법, 선거법, 정당법 청원안을 제출해 법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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