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기타(aw) 1998-06-09   693

[김대중정부 100일 평가] 사회분야(1)

한겨레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대토론회 (6월 9일)

김대중 정부 100일을 진단한다. – 사회분야

▣ 사회 : 조흥식(서울대 사회복지학)

▣ 발표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

▣ 토론 : 오성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최 열 (환경련사무총장)/ 이남순 (한국노총사무총장)/ 이경숙 (여성민우회대표)/김형태 (천주교인권위원장)

▣ 발표문

김대중 정부 100일의 평가 : 사회정책 부문

김동춘(성공회대,사회학)

1. 도입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와 대량실업 사태에 직면한 오늘 한국에서는 불평등의 심화, 삶의 질의 저하, 범죄와 폭력의 증가, 이혼와 보호아동 급증, 주부매춘 등의 가족 붕괴, 날로 횡포화된 청소년 폭력 등 매우 우려할만한 사회적 분열과 위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50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오늘처럼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사회정책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로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달리 사회정책 부분에서 새로운 자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과거 정권의 유산인 정치집단을 비롯한 기득권 층의 도덕성과 정당성의 결여, 통제위주의 행정 관행, 사회운동에 대한 자배층의 억압적 태도와 운동 자체의 문제해결 능력의 취약성, 노사 간의 깊은 불신, 만연한 가부장주의와 성차별 관행,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법과 제도 등이 잔존하는데서 오는 사회통합 기제의 결여, 낮은 사회보장 수준 등은 신정부의 사회정책 수행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는 정치와 경제의 잔여범주가 아니라 정치의 초석이며 오늘과 미래의 경제다.(주 : 부패로 인한 비용, 노사간의 교섭의 비용을 돈으로 따지면 얼나나 될까? 모르긴 하여도 사회적 교섭과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은데서 초래된 손실은 기업의 경쟁력 부재로 인한 손실 못지 않게 클 것이다.) 사회정책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해 주는 점에서 최고의 경제정책이며, 또 사회정의와 형평성을 통해서 사회적 통합성을 유지시켜주는 점에서 경제정책 그 이상의 것이다. 사회정책은 구성원들에게 함께 일하도록 북돋어주고 신뢰를 유지하도록 동기화 해주는 점에서 공동체의 유지 및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경제가 무너지더면 상대적으로 쉽게 회복할 수 있지만, 사회가 무너지면 몇 배의 물적인 자원을 투자하여도 원상으로 회복하기 어려룰뿐더러 국가나 시장 그 어느 것으로도 복원하기 어렵다. 사회의 공장으로서 ‘가족’은 경제, 정치질서의 유지는 물론 생산력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인데, 만약 가족이 무너진다면 그것을 복원할는데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경제, 사회정책은 재정지출을 통한 물질적인 보장의 측면 보다는 그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유인의 구조, 즉 동기화의 메커니즘과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사회정책은 사실상은 법과 그것의 집행에 있으며, 법과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세력관계가 그것을 좌우한다.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의 불로소득, 대학서열화로 인한 경쟁의 장벽, 채용 시 성차별로 인한 여성 노동력의 평가절하 구조는 불합리한 유인구조, 동기화 구조를 만들서 경제를 마비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마비시키게 된다. 성장이 지속되어 이러한 유인구조 내에서 패배한 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한 문제는 은폐, 유보된다. 그러나 성장이 지속되지 않을 때 문제는 한꺼번에 폭발한다. 오늘의 IMF 사태는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동기화의 메커니즘으로서 사회정책이 엄격한 원칙과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군사독재와 고도성장의 신화로 지내온 지난 시절 사회정책다운 사회정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질서유지와 공동체성은 억압과 통제로 대신되었으며, 복지는 성장으로 대신되었다. 관료주의와 성장주의의 위세 앞에서 사회의 자생력은 길러질 수 없었고, 따지고 보면 오늘의 IMF 사태는 지난 10년의 민주화 이행기간 동안 정의, 형평, 참여, 신뢰 등의 개념에 기초한 ‘사회 만들기’ 작업을 게을리하면서 섣부른 세계화, 개방, 경쟁의 논리를 들이대면서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사회형성 작업을 억눌러온 구군사정권 엘리트들과 재벌들의 오만과 독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노동법 개정이나 4대 보험제도를 완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국가경쟁주의 논리린 세계화, 신자유주의 논리를 끌여들어 과거청산을 제대로 못했음은 물론, 미래지향적인 사회정책의 초석을 놓은데도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오늘 김대중 정부는 지난 10년간에 응당 이루어졌어야 할 과제를 다시 떠 맏게 되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의 사회정책은 30년 군사독재의 유산과 김영삼 정권의 부정적 유산들을 청산하고 21세기 통일된 한국사회 건설의 초석을 놓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정책을 만들어가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된 경제질서와 IMF 관리체제 하에 있는 신정부가 실업, 복지 문제 등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또 만족할만하게 해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좁은 틈에서나마, 그리고 돈을 적게 들이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전제를 갖고 출발한다. 신정부가 사회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국민의 고통과 비극을 최소한도로 줄이면서, 동시에 차기 정부나 21세기 초반에 한국사회가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2. 신정부의 사회정책의 이념과 추진방법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근저에 있는 철학이다. 즉 노동, 복지, 교육, 여성, 환경 등 사회 부문의 정책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기조를 시장 내에서의 개인의 책임의 영역에 둘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책임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자유주의와 국가개입주의)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동, 복지, 교육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과 그 한계 및 개입의 방식과 성격에 대한 원칙적 입장 수립의 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냉전-국가주의 질서 하에서 정책의 철학이나 이념은 설자리가 없었고, 90년대 들어 국가주의가 약화된 공간에는 무차별적인 시장 논리만이 자리를 잡게되어 통제논리와 시장논리가 잡탕이 되어 관련당사자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재벌과 은행, 공기업 개혁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혼선에서 그러한 철학과 원칙의 부재는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6대 국정지표와 100대 과제를 보면 김대중 정부는 당면한 IMF체제 극복을 최대의 과제로 하되 민주주의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 자율적 시민사회, 국민 화합, 차별없는 사회, 행복한 가정, 열린교육, 능력있는 사회, 성장과 복지의 균형, 생산적인 복지, 국민건강권 보장, 노동제도의 유연성, 동반자적 노사관계의 수립, 인적자원 개발체제 구축 등 사회, 교육, 복지, 노동 분야의 정책적 과제를 제시하였는데, 그 기조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노사정 위원회 설립, 국민건강권 개념 , 동반자적 노사관계, 인적자원 개발체제 등 일부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들어있으나, 기조는 역시 생산적인 복지, 노동제도의 유연성에서 나타난 것처럼 김영삼 정부가 추진해오던 신자유주의의 기조를 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애초의 언술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집약되어 실천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는 언술상으로는 “민주주의와 경제”의 병행발전을 내세우고 있으며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조합주의적(corporatism)인 노사타협을 유도하고, ‘대화정치’를 강조하면서 민주노총과 대좌를 하며, 실업기금을 조성하여 실업자 구제에 나서는 등 정책의 방침과 시행에 있어서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IMF 비상체제라는 핑계하에 신정부는 경제 부문에서도 물론 사회관련 분야에서도 단순한 수사를 넘어서서 민주주의, 사회적 시민권 확보를 위하여 가시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자유치와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해 정국안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한 것이나, “지금은 해외투자자들이 돈을 갖고 들어올려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나 노동계의 유연성이 확보되어있지 않고 총파업이 일어다면 들어오지 않는다”는 발언들은 국정의 최소책임자로서 비상시국을 돌파하기 위한 고충의 산물로만 이해하기에는 “국가위기 극복와 수출 100억불 달성을 위해 국론분열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개발독재 시절의 박정희의 언사와 너무나 유사하여, 불안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비상시국이니 무조건 협조해야하며, 협조하지 않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언술은 군사독재 시절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철학의 빈곤이 감지되며 ‘국민의 정부’라는 구호를 의심케 한다.

당선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육성으로 표현한 정책방향이나 국민회의가 발표한 신정부의 100대 과제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노동문제에 관한한 “유연성 확보를 통해 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 외에 보다 전진적인인 노사, ‘과 같이 복지의 필

요와 이유에 대해 논거를 제기하기 보다는 과거 정권에서 언급된 것을 반복하였으며, 교육에 있어서도 ‘실력사회론’ 등과 같이 별로 새로운 것이 없을뿐더러 그 논리적 철학적 기초나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첨부되지 않는 방안들만 나왔다. 100대 과제 제시핸율화

화대, 교육환경과 여건의 개선, 의료보험 통합, 국민연금개선 등 노동, 복지, 교육에 관한 과제 들 역시 김영삼 정부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뿐더러 거시적 밑그림에 바탕을 두지 않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앞서 말한 바 김대중 정부가 해야할 일었고,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즉 분단 하에서 지탱되어온 최소

개임주의 복지정책, 간섭과 통제로서 노동, 교육 정책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다. 그것을 바꾸지 않고서는 21세기적 국가전망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그 동안의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이나 관련 장관들의 발언, 정부가 내놓은 정책안들을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의 기조는 경제정책의 기조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잡혀있는 것이 분명하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는 바 노동에서의 경쟁력 강화론, 복지에서의 생산적 복지론, 교육에서의 ‘수요자 중심론’은 과거의 경제성장에 복지를 종속시킨 것과 사실상 동일한 궤적에 있는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우리사회에 적용하려는 것이다.(주 : 건설부 등에서 뉴딜식 공공사업 확대를 주장한 바 있으나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재원낭비의 우려가 있는 사회간접자본투자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되 대규모 외자유치와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 1998.4.8. ) 국민생활 최저선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이 원칙적으로 지적되고 있지 못하다. 이는 “복지병 유발 우려”발언에도 나타난 것처럼 현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가 신자유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한풀이 복지론’ 역시 전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복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정부는 근로의욕의 촉진에 중점을 두면서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노.사.정 협의구조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개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벽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럽식의 노사정 사회협약기구 혹은 딜식의 국가 개입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가 80년대 영국 식 개혁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IMF 체제 하에서 외국 자본의 유치를 국가적 목표로 삼고 있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적 시장경제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주의 보다는 영 미식 시장주의에 가깝다”고 밝히면서 유럽식의 복지자본주의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 타협의 체제는 신자유주의 기조 속에서 섬처럼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이다.

정부는 80년대 대처가 추진했던 영국식 신자유주의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경제의 위기는 70년대 말 영국의 위기와 근본적으로 성질을 달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문제가있다. 우선 영국의 위기는 경제성장에 뒷받침 되지 않는 공공지출의 확대에서 기인한 것인데 반하여 한국의 그것은 오히려 최소개입주의 복지정책, 즉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가재정 하에서, 금융부실과 정경유착, 재벌체제과 관료부패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영국과 달리 한국의 기업들은 정부의 과세조치나 보편주의적인 복지정책(universalist welfare state)으로부터 기업활동의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라(주 : 물론 대처의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반드시 정당했다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미국, 영국 등 복지후진국이 복지정책에 대하여 가장 비판적이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경제개혁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블레어(Blare) 가 지적하는 것처럼 영국의 불평등은 확대되었고, 복지의존인구는 늘어났으며, 사회적 균열은 심화되는 등 중병을 앓고 있다.), 오히려 보편주의적 복지의 부재 속에서, 구조조정 작업을 게을리하고 과다차입으로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였으며, 기업별 노사 교섭체제로 정치적 안정을 위한 비용을 일부 지불함으로써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의 젊은이는 한번도 복지의 안전판 속에서 일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기피한 적이 없을뿐더러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많이 배우고 열심히 일할 자세가 되어 있다. 한국의 위기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에서 초래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불합리한 개입(개입의 성격과 양상)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문제의 근원이 아니며, 은행과 재벌의 부실 및 그것을 조장한 부패한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설사 기업별 노사교섭관행과 근로기준법의 몇 조항들이 노동에 대한 과도한 보호의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체제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산별교섭이나 보편주의적인 복지정책 대신에 도입한 것으로서, 대책없이 그것을 무너뜨린다면 노동자나 소외층은 이제 벼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해체이며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의 강점이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자본으로 지목되어 온 사회적 통합성의 상실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완전한’ 혹은 들씌워진 신자유주의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장의 신호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개입, 나아가 적절한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외국 연구기관과 월든 벨로 등이 충고하였듯이 지금 한국사회를 시장에 맡겨서는 안되며 그 동안 잘못된 제도, 법, 관행을 고치기 위해 과도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야 하며, 시장과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제3섹터인 사회운동 부문을 활성화해야 할 시기이다. 만약 르 몽드 지가 지적하는 것처럼 오늘 한국의 위기가 족벌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의 모순에서 온 것이라면 족벌자본주의를 지탱해온 제도, 법, 관행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것이 개혁의 우선 순서가 되어야 한다. 약자에는 법대로를 들이대고 강자에게는 법이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면 게임의 룰을 지키는 자는 없을 것이다. 예를들자면 시장의 거래관행을 가로지르는 계약의 불투명성 극복, 평가 과정의 공정성, 평가를 위한 정보의 공개, 계약위반자에 대한 제재가 수반되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는 엄청난 부작용을 양상할 것이다.

사회정책 수행에서 철학적 비전, 나아가 정부의 역할과 그 한계를 일관된 원칙 하에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는 자원의 배분이 일관되기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그것은 곧 개혁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장의 작동은 하나의 신호체계로 작용하는데, 그 신호체계가 혼선을 일으키면 예측가능한 행동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노동시장 정책, 복지정책, 교육정책 등의 사회정책은 노동자를 비롯한 구성원들을 노동시장에 편입, 유인,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유인체계로서 작용하고, 동시에 노동의 보호를 통해서 생산활동의 안정적인 지속을 보장한다. 그런데 “부당노동행위 억제, 1년 뒤 IMF 극복을 통한 실업 고통의 해결”이라는 전망은 노동자를 유인, 참여시키기에는 극히 미봉적인 대안에 불과하다. 정리해고를 감내해야하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IMF 사태의 실질적인 책임자 자연인들(기업가와 관료)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나누어갖고 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이다. 소외된 자를 또한번 소외시킨다면 어떠한 사회정책도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장의 신호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진입과 퇴출은 물론 노동시장에서의 퇴출과 진입의 장벽도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해고와 재취업이 엄연히 비시장적 관행에 의해 압도당하는 조건에서 시장논리 보다는 시장의 신호가 작동할 수 있도록 원초적인 법과 제도, 관행을 제정비 해야 하며, 만약 그것이 단시간에 어렵다면 원칙이라도 분명히 하면서추진 일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경영권 참가’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전제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작동을 촉진하기 보다는 소유자의 권력 독점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왜곡된 시장구조를 확대재생산 할 가능성이 높다.. IMF가 요구하는 경제운용에서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막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기업의 경영권 독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유권 절대주의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계약관계에서 이러한 불합리성을 그대로 둔 채 약자들을 개혁에 이끌어내겠다는 무리이다.

교원노조의 허용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교원노조 측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이기 보다는 비뚤어진 교육제도 하에서 기득권을 가진 교장과 교감, 그리고 자녀의 학업성취에만 주로 관심을 갖는 반개혁적인 주체들에게 공을 넘기고 있다. 결국 50년 분단체제에 속에서 육성되어온 억압적 법률, 소유권 절대주의, 학력만능주의를 인정한 상태에서의 시장논리라는 것은 곧 그러한 질서의 확대재생산을 의미하며, 단지 불만이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소극적 사회정책(negative social policy)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복지의 원칙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가난한 자에 대한 국가, 지역, 가족, 개인의 책임은 얼마만큼인가? 국민생활최저선 ‘보장’인가 아니면 개인적 책임의 문제인가? 보편주의적이어야하나 잔여적(residual)이어야 하나? 왜 정부는 복지향상에 돈을 지출해야 하는가? 사적 보험에 의존하는 기존 위험 방지 체제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교육과 의료는 공공의 과업인가, 그렇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러한가?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남녀평등을 위한 법안은 사회정의의 실현은 물론 사회정의의 수립과 가족의 재생산과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가? 우리의 문화적 조건은 과연 시장주의적인 개혁을 용이하게 해 줄 것인가?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2, 3년 이후 재취업이 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IMF로 인한 비상 상황을 들먹이기 이전에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원칙과 입장을 갖고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자신은 물론 주요 정책담당자인 청와대의 수석이나 장관들의 육성에서 시원스로운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총론이나 철학은 학자의 몫이 아니라 권력자의 몫이다. 총망라하여 개혁을 추진하기 보다는 줄기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총론과 각론이 구별되고, 기조를 잡되 당장해야할 과제와 장기적으로 해야할 과제를 구분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는 지난 100일 동안 그러한 발걸음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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