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인지대때문에 재판청구 포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줄임말) 등과 함께 10월 27일(화) 오후 2시부터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인지(印紙)제도와 재판청구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인지대는 기본적으로 재판제도를 이용하는 데 드는 수수료입니다. 그런데 현행 인지대 산정방법은 소의 유형이나 사건의 복잡성, 재판의 난이도 등과 관계없이 책정하고 있습니다. 인지대를 과다하게 책정해 경제적 약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여야 함에도 현행 인지대는 소송목적의 가액이 증가할수록, 심급이 올라갈수록 그 액수가 증가(항소심 1.5배, 상고심 2배)하고 있어 경제력이 없는 국민들의 재판청구권 행사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례로 최근 증가하고 있는 사측의 노조측에 대한 손배가압류 소송의 경우 천문학적인 손배액수에 따른 인지대 부담으로 노조측이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현행 인지제도 전반에 대한 개괄적 검토, △ 인지대가 재판청구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사례에 대한 분석과 검토, △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한 인지제도의 개선 방안 등에 관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입법개선 방향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10월 28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토론회 후기입니다.  손잡고의 윤지선 간사가 작성하였습니다.

 

“재판청구권 침해하는 인지제도 개선해야”

법조인, 시민사회 “돈 없어 재판 못받는 사회적 약자, 더 이상은 안돼”
 

법원 행정서비스 수수료인 ‘인지대’로 인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손잡고, 참여연대 등이 27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연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에 참석한 법률전문가들은 “소가(소송목적 값) 중심적인 현행 인지제도가 법에 대한 접근성을 돈으로 막고 있다”며 인지제도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인지대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말한다. 그간 헌법재판소는 인지대의 입법목적이 남소방지(불필요하고 성공가능성이 없는 소송을 방지하고 남소에 따른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에서 오는 법원 업무의 양질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에 있다고 명시해왔다. 

 

“남소방지 위해 재판청구권 침해하는 건 위헌”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행 인지법이 소가연동제(소송목적의 값에 인지를 연동시키는 제도)를 채택하여 소가가 증가할수록, 심급 상향제(심급이 올라갈수록 인지액도 오르도록 하는 것)를 채택하고 있어 실제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재판청구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 발제자들 사이에서 공통으로 제기됐다. 소가 및 심급상향제는 항소장에는 통상인지액의 1.5배, 상고장에는 2배의 인지대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기조발제를 맡은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인지제도의 소가 및 심급연동제를 두고 “오로지 경제적 이유를 근거로 한 남소방지목적으로 사법접근권의 불합리한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철 교수는 “남소방지의 공익적 효과보다 행여나 있을 수 있는 억울한 재판청구권 상실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경제적 이유만으로 정당한 권리자의 권리구제가 위협받을 수 있는 경우를 초래한다면 남소방지라는 입법목적은 그 헌법적 한계를 벗어나는, 정당성을 상실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수천억 손배소 노동자, 재판청구권 침해 대표 사례

 

이처럼 인지제도로 인해 재판청구권이 침해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노동사건’ 특히, ‘노동쟁의행위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꼽혔다. 

노동사례 발제를 맡은 민주노총 금속법률원의 송영섭 변호사는 사측이 제기하는 막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가 감당하기에 큰 ‘인지대 폭탄’으로 다가온다며 “현재 진행중인 전체 손해배상 청구액 1300억 원을 기준으로 하면 항소심 인지대는 6억 8천만 원, 상고심 인지대는 9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송영섭 변호사는 “노조법에서 손해배상에 대한 면책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실제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일상화되었다”며, 이는 “법이 쟁의행위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본의 입장에서야 손배소에서 법원에 제출하는 인지대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있으나, 열악한 노동법 현실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법원을 통해 입증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는 재판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급해야만 하는 고액의 인지대 또한 넘어야할 큰 벽”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최병승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도 토론에 참여했다. 최병승 조합원은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파업으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제기된 7건의 손배소의 인지대를 마련하기 위해 모금하거나 빌려 충당했고 약 1억 원의 인지대를 납부했다”고 밝혔다. 

 

최병승 조합원은 “인지대에 대한 부담을 넘어 손배청구 자체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노동권의 행사마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며 그 심각성을 알렸다. 최병승 조합원은 “수백억에 달하는 손배청구가 부담된 조합원들은 회사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포기하고 신규채용에 응하면 손배청구에서 제외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초기 손배청구대상이 6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인 300명 정도로 줄었다”고 밝혔다. 

 

국가에 대한 국민권리 찾기 위한 행정소송에도 민사소송 준용

 

노동자뿐 아니라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한 국민들도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인지대로 인해 재판청구권을 침해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토론에 참여한 박주민 변호사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사례를 통해, “대규모 국책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사전에 갈등을 예방할 수단이 없다 보니 사업지의 주민들은 사업이 추진된 후 각종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통해 권리보장을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의 인지대를 포함한 모든 소송비용은 주민의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국책사업 현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장기투쟁과 경제적 기반 붕괴로 곤궁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일반적으로 적어보였던 인지대도 ‘가랑비에 옷 젖듯’ 부담이 점차 가중된다”고 덧붙였다.  

 

행정사례 발제를 맡은 허진민 변호사는 행정소송의 현행 인지제도가 민사소송의 인지 규정율 준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허진민 변호사는 “행정소송은 국가가 우월적 지위에서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것으로 대등한 사인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민사소송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며, “행정소송의 목적과 기능, 행정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측면에서 별도의 구체적인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민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에서까지 개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고 소가에 비례해 인지액을 납부하도록 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인지대, 재판청구권 침해 아냐” 기존 입장 재확인

 

이날 토론에는 심경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이 참여해 법원의 관점과 입장을 전했다. 

심경 심의관은 ‘남소방지기능’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수료’의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소가 및 심급 상향제’에 대해서는 “소가가 클수록 오히려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며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경 심의관은 “실제 소송에서 소송목적의 값 대비 인지액의 규모나 소송비용 중 인지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고, “인지대가 고액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막혀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민사소송비용의 최종적인 부담자는 피소하는 자이므로 목적적인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은 모두 회수할 수 있”고, “민사소송법상 소송구조제도를 통해 자력이 부족한 자에 대하여는 소송상의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덧붙였다. 

 

한편, 이 ‘소송구조제도’에 대해 김제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지대 자체를 그대로 부과하는 상황에서 소송구조제도가 종국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며 “소송구조를 받았지만 패소한 경우, 인지대를 기준으로 산정된 변호사보수 등 소송비용은 결국 패소자가 부담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국 인지대가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반박했다.

 

사회적 약자 위해 ‘인지대 상한제’, 감액·면제 제도 필요 제기

 

인지대 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재판청구권 침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기조발제에서 김종철 교수는 “중요한 것은 입법목적인 남소방지보다 헌법적 권리인 재판청구권이 침해받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재판청구권을 덜 침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 인지제 상한제를 도입 ▲ 미국의 경우와 같이 정액제 도입 ▲ 노동사건과 행정사건의 경우 헌법원리적 특수성을 고려해 부분적 재판무상제도를 도입 ▲ 개별소송의 특성에 따라 사법서비스의 비효율을 초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인지제도 감액 및 면제제도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발제자와 토론자 대부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반면 심경 심의관은 ‘인지대 상한제’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냈다. 

심경 심의관은 변재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2014년 제출한 ‘300만 원 인지액 상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인지법 개정안에 대해 소가가 5억이 넘는 경우는 1%에 불과하다며 반박했다.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소가가 7억3625만원인 경우에야 비로소 인지액이 300만 원이 된다”면서 “최근 4년간 제1심 민사본안사건 가운데 소송목적의 값이 5억 원을 초과하는 사건이 2012년 11,682건(1.12%), 2013년 12,014건(1.10%), 2014년 11,257건(0.99%)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사회를 맡은 황승흠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1%의 숫자에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1%가 1만 건이 넘어가는데 이는 우리나라 경제인구나 3천만이라고 봤을 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며, 1%를 특별 사례로 볼 것이 아니라 일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았다. 

 

한편, 노동사례 발제에서 언급된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2010년 손해배상 소송 현황을 보면, 7건 가운데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소가 5억을 상회했는데, 이날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노동사례에 대한 의견은 달리 언급하지 않았다. 

 

“인지대 산정기준 모호”, “사법부 예산 인지대 의존도 낮춰야”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인지대의 산정기준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데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적정한 산정기준을 검토하고, 사건의 개별성과 특성을 고려해 적용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대부분 동의했으나, 법원행정처의 의견은 일부 달랐다.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현행 인지액의 체계가 적정한지 여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도 “외국에서도 제소수수료가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책정된 것은 아니”라며 “현재의 수준이 적정한지 따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소가연동제를 채택한 일본과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인지대가 높은 편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단순히 GDP를 두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반박과 함께 유독 사법부의 행정서비스 비용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이중으로 부과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민재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법부 예산에서 인지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민재 변호사는 “2005년도에 사법부 1년 예산의 28%가 인지대 수입에서 충당된다”며 “이는 국가가 사법부 예산의 28%를 국민으로부터 세금과 별도로 받아서 충당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2014년에는 20%로 줄었지만 그 이유는 사법부 예산이 2014년에 60%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여전히 사법부의 인지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인지대 외에 별도 송달료까지 납부하는 것도 마찬가지 문제”라고 말했다. 

 

“남소방지 목적 인지대가 아닌 다른 방법 모색해야”

 

남소방지를 위해서는 인지제도가 아닌 다른 정책적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대부분 의견을 같이했다. 

변재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사법적 구조제도는 어쩌면 국민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일 것”이라며 “이러한 권리구제를 금전에 의해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인지대에 남소방지라는 목적이 있다면 이는 다른 제도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며 “인지대 개선 문제를 법제사법위원회에 다시 한 번 공론화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변재일 의원은 2014년 ‘300만 원으로 인지대 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인지법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계류된 바 있다. 

 

김제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상소 방지도 재판제도의 운용상 중요한 정책 중 하나이나 인지대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적절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며, ‘재판외 분쟁해결제도의 활성화’, 상소이유의 제한 등 남소방지를 위한 다른 적절한 정책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는 노란봉투캠페인 법제도개선활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아름다운재단 ‘노란봉투캠페인’ 지원 사업이다.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변재일 국회의원, 서기호 국회의원, 은수미 국회의원, 이상민 법사위원장, 이종걸 원내대표, 이춘석 국회의원, 전해철 국회의원이 공동주최로 참여했다. 

인지대때문에 재판청구 포기?

토론회 <인지(印紙)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 제목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일시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오후 2시~4.30분

장소   국회도서관 4층 입법조사처 대회의실

공동주최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참여연대공익법센터,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이상민 법사위원장, 변재일 국회의원, 이춘석 국회의원, 전해철 국회의원, 은수미 국회의원, 서기호 국회의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사법위원회

 

사회  황승흠 교수 (국민대 법학대학 교수 )

발제

 기조발제  김종철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사례발제  송영섭 민주노총 금속법률원장 / 허진민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토론 

변재일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심경 부장판사(법원행정처 사법지원 총괄 심의관), 김제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최병승(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박민재 변호사(대한변협), 박주민 변호사(민변)

  * 본 토론회는 아름다운재단의 노란봉투 캠페인 지원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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