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얼마나 빚이 많은지 알고 있다?

[오피니언칼럼] 개인신용정보와 자기정보관리권

은행에서 거래를 시작하거나 신용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나 계약서 한 구석에 [개인신용정보의 제공·활용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만 한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이 동의서는 그러나 무시무시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이렇게 모은 개개인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와 금융거래정보를 조합하여 금융기관의 영업에 활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당신의 집으로 전화하여 “나는 네가 얼마나 빚이 많은지 알고 있다”면서 대출 상담을 한다고 생각해 보시라. 생각만 해도 불쾌하고 위험한 일이 대형 보험회사에서 어엿이 행해졌다고 한다.

지난 6일 금융감독원은 삼성생명 주식회사에 대한 특별검사 결과 중 하나로 “신용정보 대출영업 활용”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나 보험설계사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삼성생명은 은행연합회로부터 받은 신용정보들을 조합하여 [타금융 2천만원 이상 아파트 거주자] 명단을 만들고, 이를 보험설계사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전화를 통해 “삼성생명 대출로 전환하라”고 권유하게 했다고 한다.

이 명단에는 삼성생명 고객의 신용정보 뿐만이 아니라 삼성생명 고객이 아닌 사람들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대출받은 금융기관 이름과 대출 액수 등 금융거래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삼성생명에게 자사에 금융거래를 신청한 사람도 아닌 사람들의 신용정보까지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영업에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는가.

법적으로 ‘신용정보’는 “금융거래 등 상거래에 있어서 거래상대방에 대한 식별·신용도·신용거래능력등의 판단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정보”를 말한다. 신용거래 증가와 함께 금융기관의 고객 신용도 판단이 중요하게 되면서 신용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오남용을 피하기 위해 신용정보를 공적으로 관리하는 제도가 등장했다. 현재 신용정보는 각 정보주체의 동의하에 일정한 요건을 가진 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 신용정보를 집중하도록 되어 있고 은행연합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금융기관에서 거래를 시작하면서 작성한 “동의서” 때문에 신용정보는 그 금융기관과 은행연합회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그렇게 저장된 정보는 우리가 또 돈을 빌리거나 카드를 빌리려고 할 때 신용도를 판단하는 수준으로 활용된다. 금융기관에서는 은행연합회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우리 이름을 입력하고 신용거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이에서 나아가 은행연합회로부터 그 데이터베이스 자체를 인도받은 다음 누가 거래 신청을 한 것도 아닌데도, 데이터베이스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여 명단을 만들고 영업에 활용한 것이다. 이는 법이 허용하고 있는 ‘신용도 판단을 위한 이용’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활용된 ‘주소·전화번호’ 등은 더 이상 ‘신용도 판단을 위한 신용정보’가 아니라 영업을 위한 ‘연락처’로 전락한 것이다. 이는 신용정보법에서 금융기관에게 특별히 인정한 ‘신용정보 이용자’로서의 지위를 악용한 것이다.

다행히 검찰에서는 위와 같은 정보 이용 행위가 법률위반이라고 하여 회사와 담당 임원을 벌금에 처하는 약식기소 판단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러한 판단이 잘못되었다며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해 놓은 상황이다. 처음 참여연대의 검사요청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금융감독원이 늦게라도 특별검사를 실시하여 위법사실을 밝혀내고, 그 과정에서 검사자료 제출지연과 누락까지 적발하여 경고·문책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안전한 신용사회의 구축은 개인신용정보의 접근에 대한 엄격한 제한과 그 위반행위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이 전제되어야 하고, 만일 이 사건과 같은 행위들이 당장의 물질적인 피해가 없다거나 피해자들의 집단적인 법적 대응이 없다는 이유로 경미하게 취급된다면 정보 누출을 꺼리는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종국적으로는 신용 사회의 붕괴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다른 금융기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가 타 금융기관과의 거래 정보를 문서화하혀 자신의 영업 목적으로 위법하게 이용하고 그러한 신용정보이용도 ‘적극적 활용’의 한 형태로 적법하다며 다투는 것을 보면, 소비자가 기업을 믿을 수 있는 진짜 ‘신용’ 사회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진(변호사,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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