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7-12   1992

[칼럼] 도종환 의원 작품 삭제 논란과 표현의 자유

도종환 의원 작품 삭제 논란과 표현의 자유

 

누군가 해프닝이라고 했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의 작가로서의 작품에 정치적 해석을 달아 삭제하니 마니 하는 논란의 결과만 보면 가히 해프닝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해프닝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사안이다.  

 

 

사건의 발단은 교과서 검인정심사를 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내년도 중학교 국어 교과서 검인정 합격 통보를 하면서 16개 출판사 중 8개의 출판사에 도종환 시인의 시와 산문을 다른 시로 교체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알려 지면서다. 평가원의 관계자는 “도종환 시인이 현역 정치인인 만큼 교과서 내용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며 그 근거로 “교과목 별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을 보면 ‘교육의 중립성 유지’라는 항목“을 들었다.

우리에게 시인으로 더 익숙한 도종환 시인이 지난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거다. 당연히 여론이 들끓었다.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말이 안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자 평가원 관계자는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해당 출판사가 도 시인의 시를 삭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본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애써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이 사태는 11일 평가원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상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에 따르는 모양새를 취하고 문제의 권고를 철회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문제가 모두 끝나는 것일까? 실은 이번에 불거진 특정 작품에 대한 삭제 논란은 교과서 내용 수정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기억하겠지만 교과부 장관의 2009년 역사교과서 수정지시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반기업적인 정서를 확산하는 표현이 들어간 사회교과서 수정 요구 사건 및 최근 특정 종교인 단체의 생물교과서에 시조새와 말의진화 과정 삭제 요청 논란 등 학생들의 교과서 내용에 대한 이러저러한 수정은 끊임없이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도종환 시인의 작품 삭제 논란은 평가원이 문학적 감수성의 영역마저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려고 했다는 문제가 있지만 더 엄밀하게 따지면, 국가 또는 공적기관이 교육내용에서 무엇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또는 가르치지 마냐를 정하려 한다는 데 있다. 국가나 그에 위임을 받은 공적기관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견해 또는 입장을 정설로 세우려고 할 것인데, 정권을 잡지 못한 쪽의 견해 또는 입장은 과연 교육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이 옳은가?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에서 찾아보고 싶다. 평가원은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삭제 권고한 근거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평가원은 이를 정치적 의도로 쓰여진 작품이나 정치활동을 하는 작가의 작품은 배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한 듯하다.

그러나 헌법에서 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교육방법이나 교육내용이 종교적 종파성과 정치적 편향성에 의하여 부당하게 침해 또는 간섭당하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진리교육이 보장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란 학생에게는 교사와의 사상적 교류이며 또 장래의 표현을 위한 정보를 접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뭘 알아야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표현할 수 있을 터인데, 그 “알아야” 또는 “알고 싶은” 대상을 국가(또는 국가가 위임한 공적 기구)가 결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헌법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행위가 아닐까. 물론 이에 대해서는 민간으로 구성된 검정심의위원회를 두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검정심의 위원 구성은 교육의 당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 교사, 학부모, 학교 등의 의견을 고루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인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교육을 받을 권리를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렇다면 국가가 선호하는 한 입장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의해 선호하는 견해 또는 입장만을 가르치도록 하는 것은 다양한 시각을 접하면서 자신의 사상 및 표현을 형성해 나가는 학생의 장래의 표현의 자유를 미리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번 도종환 시인 사건이 주는 교훈이라면, 국가(교육과학기술부 등)가 직접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의 당사자가 고루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평가원이 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에서 명시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