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3-01-07   1597

[칼럼] 18대 대선 이후 인터넷심의, 어디로 가나?

 

18대 대선 이후 인터넷심의, 어디로 가나?

 

모 주간지에서 실시하는 연말 특집 ‘올해의 판결’에 내가 일하는 센터에서 기획하고 진행한 소송의 판결이 무려 3개나 선정되었다. 강제적 인터넷실명제 위헌결정, 포털의 무영장통신자료제공에 대한 손배소인정 고법판결, 기간을 정하지 않은 이메일 압수수색에 대한 국가배상판결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세 판결은 모두 인터넷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작년 12월 29일 헌재의 SNS등 인터넷상 선거운동 허용 판결까지 더한다면, 지난 몇 년간 인터넷상의 불합리하고 위헌적인 관행과 법제도들을 들쑤시고 문제제기를 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해도 ‘깔때기’라고 빈축을 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는 충분한가? 행정안전부가 2012년 펴낸 ‘2012 국가정보화 백서’에 따르면 2011년 국내 인터넷 이용률은 78.0%로 인터넷 이용자 수도 3718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열에 여덟이 인터넷이용자란 말이 된다. 여기에 스마트폰 이용자 수는 2012년 10월 3200만여 명으로 세계 7위라니, 가히 인터넷강국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며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18대 대선 후보들도 일제히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가 지난 4년간 후퇴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개선을 약속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대한 개편이 자리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은 OECD국가에서 드물게 행정기관이 인터넷 심의를 하고 제재하는 나라다. 매월 천여 건에 달하는 인터넷게시물이 행정기관인 방심위에 의해 소위 ‘불법정보’에 해당한다며 삭제하라는 ‘시정요구’로 사라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삭제요구가 음란, 도박, 마약과 관련된 게시물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방심위의 ‘시정요구’ 대상 게시물 중 논란을 일으켰던 사안들을 보면 방심위의 인터넷심의가 과연 적절한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명박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특정 단어 삭제, ‘2MB18nomA’ 트위터 계정 및 유사계정 차단, 쓰레기시멘트에 대한 게시글, 김문수 지사에 대한 비판 등 공익적이거나 정부 비판적인 게시물도 삭제해왔다. 국가나 정치인에 대한 조롱이나 비판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거나,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품평이나 비판에 대해서조차 그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삭제했다. 공교롭게도 그 누군가는 주로 ‘힘이 있는’ 쪽이었다.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이와 같은 방심위의 인터넷심의를 폐지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였다. 특히 국가인권위가 통신심의 폐지를 권고한 이유는 명쾌하다.

“행정기관은 사법부와 달리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그 판단이 자의적이거나 정치권력을 비호하는 용도로 동원될 가능성이 있고 사법심사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행정기관의 판단 내지 처분은 잠정성을 띨 수밖에 없”고, “행정기관의 판단에 따라 표현행위를 차단하는 것은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발생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방심위는 스스로를 늘 민간독립기구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쓰레기시멘트 고발 게시글 삭제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원은 이미 방심위가 그 운영과 위원 위촉 및 예산편성 방식 등에서 행정기구임을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방심위의 시정조치는 행정기관의 검열에 해당하고, 행정기관의 검열을 금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데 이상적인 매체라고 평가받고 있다. 누구나 장소와 시간과 금권에 구애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 특정계급 혹은 권력이 독점할 수 있었던 고전적 매체인 출판, 신문, 텔레비전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방적이다. ‘만인의 의사표현의 장소’인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가진 자로서는 통제를 시도하려는 유혹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방심위라는 기구의 존치가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표현물에 대한 제재는 최종 사법부가 내리는 것이 맞고 따라서 행정기관에 의한 심의는 잠정적 효력을 가질 뿐인데도 현실에서는 행정처분의 공정력과 ‘실질적’ 강제력으로 인해 행정기관의 결정만으로 표현물에 대한 즉각적인 유통규제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잠정적 효력을 고려하면 행정기관에 의한 유통규제는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점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방심위의 통신심의를 폐지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시민사회는 줄기차게 행정심의는 폐지하고 사법심사로 표현물 유통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어쨌거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방심위의 행정심의는 손을 보겠다고 하니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다만 그 과정이 소통과 합의의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은 자명하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

* 이 글은 12월 19일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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