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7-17   2004

[칼럼] 어느 검열자에 대한 벌금형 판결 유감

어느 검열자에 대한 벌금형 판결 유감

 

“음란물 게재 박경신 교수 벌금 300만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교수에 대한 1심 선고 후 각종 언론매체에 실린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사회적 권위를 인정받는 ‘국내 유명 대학 교수’가 음란한 ‘남성의 성기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뒷이야기의 소재가 될 법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한 교수의 기행에 관한 가십거리로 알려지는 것은 상당히 부당한 측면이 있다. 

뭐가 어떻길래?

이미 이 사건의 경위는 언론보도나 박교수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박경신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심의위원으로서 지난해 7월 한남성이 자신의 성기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것을 심의하게 되었다.

방통심의위의 다수 위원들은 음란물이라 판단하고 블로그서비스를 운영하는 포털사이트업체에 시정요구를 하였으며 정보통신사업자는 이에 따라 위 사진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박교수는 위 사진이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으며 준 행정기관인 방통심의위가 삭제를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위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면서 “이 사진을 보면 성적으로 자극받거나 성적으로 흥분되나요“라며 방통심의위의 결정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의 의도는 음란성 여부에 대해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이며 행정기구가 법원보다도 더 후퇴한 기준으로 국민의 표현물을 삭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박 위원을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유포죄’로 기소했다. 게다가 검찰은 다수의 음란물을 상습적으로 배포하는 등의 혐의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약식기소도 아닌 정식기소를 하여 형식적으로 징역형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미네르바,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언론소비자 주권연대 불매운동 사건 등과 관련하여 현 정권을 비판해 온 박교수에 대하여 보복성이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검찰이 통상의 음란물 사건과 달리 정식기소한 까닭에 기인한다.

박교수의 게시물은 과연 음란한 것인가

 

검찰의 정식기소가 기소권의 부당한 행사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박교수가 게재한 문제의 사진이 과연 음란물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대법원은 지난 2008년 판결에서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할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②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서, ③사회통념에 비추어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④예술적·사상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을 뜻한다.“ 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단순히 성기노출이라는 요건만으로는 음란물이라고 인정될 수 없고, 그 표현물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수준의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여 학문적, 사상적 가치를 가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음란성의 요건을 충족한 것이 된다. 또한 표현의 음란성은 지엽적인 부분이 아니라 표현물을 둘러싼 맥락(context)을 전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위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면 박교수의 게시물은 음란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단순히 남성의 성기를 노출한 것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성적 흥미에 호소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교수의 게시물은 표현의 맥락상 방심위와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논의의 목적으로서 학문적, 사상적 가치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박교수의 변호인단은 위와 같은 논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였다. 남녀의 성기 모양과 성행위를 알려주는 잡지 ‘웰치 성의 과학’은 일반 서점 시판중이며, 딸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목욕시켜 주며 발기된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는 영화 ‘저녁의 게임’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다. 남녀 간의 성행위를 묘사한 동영상 ‘미션 섹파서블’에 대하여 2008년 대법원은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유죄임을 주장하는 검찰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솔직히 검찰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증인신문에서 ‘백화점에 성기를 노출한 사진이 게재될 경우 음란한가’, ‘검열 기준에 대한 논평이 없는 성기 노출 사진은 음란한가’ 등을 질문하며 표현행위의 맥락이 없거나 혹은 현실적이지 않은 가상적 맥락을 상정하고 성기 사진 자체만으로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논증을 이끌어 내려고 하였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2008년 대법원의 판례 이전의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판례들을 나열하면서 “법원은 대체적으로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 경우 음란물로 판단하였므로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유사한 논증이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핵심을 비껴간 법원의 판결

 

검찰측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기는 남녀를 구분 짓는 1차 성징으로, 노출될 때 성적 수치심과 흥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제하고 “교육적, 사상적, 과학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맥락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음란한 사진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밝혔다. 그리고 박교수의 게시물은 ‘우리 사회 평균으로 볼 때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음란물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며, “성적 수치심이나 성적 자극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학술·과학·문학적 내용상의 맥락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다.” 라고 판시하였다. 

 

재판부의 논리에 따르면 성기를 노출한 표현물은 성적 수치심 유발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음란물이 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긍정적인 판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중요 쟁점 중 하나인 게시물의 학술적, 사상적 맥락의 가치는 부정하였다. 박교수가 평소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수년간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여 왔으며, 방심위 위원으로서 현행 통신심의의 부당성에 관한 의견을 블로그에 게재하여 왔고 이번 게시물을 블로그에 올린 것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라는 것이 명확한 점을 감안할 때 재판부의 판결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박교수는 왜 논란의 사진을 게시하였나

 

박교수 자신이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심위는 예전부터 그 권한의 정당성과 심의 절차에 대한 위헌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기관이다. 방심위의 심의 대상은 불법정보, 유해정보 및 ‘기타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로서 그 권한의 행사 범위가 매우 모호하여 심의대상이 자의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또한 심의 대상에 대한 삭제 등 시정요구는 형식상 권고이나 실질적으로는 시정요구 이행건수가 거의 100%에 가까워 강제조치로 기능하고 있다. 게다가 시정요구의 대상은 전기통신사업자에 불과하며 표현의 주체인 게시자들에게는 직접 통지를 하지 아니하고 사전적으로 의견제출할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있어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매우 높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대해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제한을 가한다는 점이다. 행정기관은 사법부와 달리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그 판단이 자의적이거나 정치권력을 비호하는 용도로 동원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현 정권에 대하여 비판적 내용을 방송한 MBC PD수첩, KBS추적60분, CBS 시사라디오프로그램 ‘김미화의 여러분’ 등에 대하여 법정 제재를 가하여 심의의 공정성에 관한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보고서에서 방심위의 인터넷 심의제도가 “사후심의라고 할지라도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재량의 폭이 한정되어 위축 효과가 방지될 정도로 심의대상과 심의기준이 명백하지 않는 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되고 그 결과 현행 헌법이 검열제도를 금지하는 취지에 부합되지 않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박교수가 자신의 블로그를 ‘검열자의 일기’로 명명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방심위 심의위원으로서 누구보다 방심위의 심의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 부당성을 블로그를 통하여 알리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심의 대상이 된 표현물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방심위 심의의 부당성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의 사진을 올린 것이다. 

 

이 사건은 성기사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박 교수는 시종일관 주장하였다. 과연 수천, 수만 건의 통신게시물에 대한 삭제여부를 정치적 지형에 따라 여야 추천 비율이 정해지는 “9명의 위원들”이 결정하는 것이 옳은가? 이것이야말로 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교수가 어째서 논란이 될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면서까지 방심위 심의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런 분들은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직접 방심위 회의를 방청해 보기를 권한다. 위원들의 회의장이 아닌 조그만 별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볼 수밖에 없지만 방심위의 심의 절차와 심의 내용을 방청하고 나면, 박 교수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익명의 변호사가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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