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08-06-23   1500

불매운동이 불법인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광고를 실은 기업들을 상대로 광고 중단을 요구하고 불매운동을 펼치는 시민들을 검찰이 수사하도록 법무부 장관이 지시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는 검찰의 모습은 더더욱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지난 정부에서 검찰은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 행사에 저항하며 대통령과 ‘맞장 토론’을 벌인 바 있고, 송두율 교수에 대하여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 의견을 표명하였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구속 기소한 적도 있다. 또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불구속 수사하도록 분명한 법적 근거를 토대로 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총장이 항명성 사퇴를 하면서, 마치 조직원의 위신을 제대로 세워주지 못한 우두머리처럼 행세한 바도 있었다.

그때의 호기롭던 검찰은 이제 간데 없다. 검찰권 독립을 소리 높여 외쳐대며, 검찰의 ‘기개’를 칭송하던 조·중·동은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검찰을 애정어린 눈길로 보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소비자의 불매운동이 과연 위법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 정책을 고집하던 시절, 유럽 각국 소비자들은 이 나라와 거래하는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조직적으로 끈질기게 벌였다. 이런 불매운동에 대하여 유럽 각국 검찰당국이 수사를 하겠다거나, 단속을 하겠다고 위협한 적은 없다. 전세계적으로 유아용 분유를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 네슬레에 대하여는 지금도 여러나라의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후진국 영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분유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물이나 우유병의 청결상태가 나쁘거나, 물을 타서 제조한 우유의 신선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채 아이에게 먹여 생긴 질병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모유를 먹었다면 탈없이 자랄 어린 생명이, 분유 때문에 비명횡사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막대한 선전 공세와 병원들과의 결탁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분유 수유를 확산시키고, 분유 매출 증대를 꾀해 온 기업의 부도덕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분유 회사들에 대하여 소비자들이 펼치는 불매 운동을 수사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법당국은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본 적이 없다.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행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나아가,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다양한 의사표현 수단을 사용하여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설득할 권리도 있다. 조선 불매운동은 이미 오랫동안 있어 왔다. 그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겨레>에 대한 불매운동이 불법이 아니듯이. 조·중·동에 광고를 싣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역시 소비자의 정당한 선택권 행사의 한 모습이다. 담배나 무기 회사에 투자한 기업 혹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하는 화장품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 등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들은 상품 선택을 통하여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실천한다.

윤리적, 정치적 이유로 소비자들이 행하는 상품선택 및 적극적 설득 행위를 수사하고 단속하겠다는 것은 적나라한 정치적 탄압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의 검찰이라고 해서 소비자의 선택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검찰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보호하려는 대상이 조·중·동에 광고를 싣는 기업들인지, 아니면 조·중·동 그 자체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른바 ‘프레스 프렌들리’한 정부의 검찰이 아니던가? ‘비즈니스’와 ‘프레스’ 사이에 끼어 갑자기 범법자 취급을 받게 된 소비자의 모습은 이 정부에서 한없이 초라해진 ‘시민’의 모습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 이 글은 6월 23일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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