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11-22   1909

[칼럼] 춘향전을 영화로 만들어도 아동성범죄인가

춘향전을 영화로 만들어도 아동성범죄인가

 

어떤 표현물이 아동성범죄를 유발할 정도로 ‘음란’하다면 기존의 음란물규제로 제재하면 된다. 왜 세계 각국은 아동포르노규제를 별도로 두고 있는 것일까? 아동포르노규제는 음란물규제와는 완전히 다른 목적과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음란물규제는 표현물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그런 오염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동포르노규제는, 아동을 성적 표현물에 출연시키는 것 자체가 그 아동에게 정신적 피해를 준다는 논리에 따라 그러한 아동의 성노동을 금지하는 것이 목표이다. (후자의 규제는 표현물의 음란성과 관계없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아동“음란물”규제는 잘못된 것이고 아동“포르노”규제가 옳은 용어이다.) 이에 따라 음란물규제는 음란한 표현물의 배포, 전시, 공연 등만을 규제하지만 아동포르노규제는 아동성노동의 결과물의 ‘존재’ 자체를 금지하고 있어 배포, 전시, 공연 뿐만 아니라 아동포르노의 소지 자체도 범죄시한다. 

 

이런 이유로 아동포르노규제는 아동성범죄 즉 아동에 대한 물리적 공격을 처벌하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에 포함되어 있다. 즉 아동을 성적 표현물의 제작에 동원하는 것 자체를 아동성범죄의 하나로 규정한 것이다. 즉 아동포르노규제는 표현물규제가 아니라 아동참여포르노제작규제이다. 

 

이러한 입법취지에 부합하게 아청법을 해석한다면 최근에 실존아동이 제작에 참여하지 않고 단지 아동“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동영상을 처벌한 것은 잘못된 법적용이다. 성적표현물의 제작에 동원되어 착취되고 있는 보호대상이 없는 상황에서 이 법을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2002년 우리 헌법재판소와 미국연방대법원 모두 아동포르노규제는 실존아동이 등장하는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아동캐릭터가 등장해서 성적 행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본 사람이 아동성범죄를 저지를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이 없다는 이유이다.  

 

법 제2조 제5호가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 .표현물(캐릭터)”가 등장하여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위 문구는 아동포르노규제의 원조인 미국에서 온 것이다. 미국연방법은 (1) 실존아동이 제작에 참여하거나 (2) 영상물이 실존아동이 출연한 것처럼 조작되었거나 (합성 등을 통해) (3) 모델이 된 실존 아동이 “인식될 수 있는” 기타 시각적 기법(그림, 애니, CG)이 이용된 경우를 아동포르노로 규정하고 있다. 즉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실존 아동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법2조5호도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면 “실존하는 특정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로 개정되어야 한다.  

 

물론 2011년 법 개정안을 통해 위 문구를 포함시킨 국회의원들은 단지 아동착취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아동성범죄 성향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표현물규제’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실존아동과 무관한 캐릭터의 성행위도 규제대상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문구 하나를 바꿀 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청법 전체의 해석을 바꿀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해석을 바꾸면 다음의 이유로 상위법인 헌법에 위반된다.  

 

현재 아청법은 표현물의 수령까지도 처벌하며(법 8조4항) 내용이 음란하지 않은 경우에도 처벌한다. 표현물규제의 대원칙 중의 하나는 표현의 발화자를 처벌해야지 수령자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명예훼손죄는 말을 한 사람과 말을 들은 사람의 상호작용으로서 평판의 저하가 발생해서 범죄가 완성되지만 그렇다고 말을 들은 사람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청법이 수령자를 처벌하는 이유는 애시당초 표현물규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아동포르노규제가 비음란물을 처벌하는 유일한 헌법적 근거는 아동성노동의 예방이라는 법익이다. 그런데 실제 아동성노동의 가능성이 없는데도 아동‘캐릭터’가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음란하지도 않은 내용을 처벌한다면 헌법에 위반된다. 이대로라면 은하철도999의 철이가 메텔의 목욕장면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는 장면도 위험해진다. 또 16세 남녀의 정사장면이 나오는 춘향전을 영화로 만들면 배우가 성인이더라도 확실히 아동포르노로 처벌된다.   

 

물론 애니나 CG로 이루어진 가상의 캐릭터가 은하철도999보다 훨씬 더 적나라한 성적 행위를 하는 작품들도 많이 있고 춘향전의 내용도 매우 적나라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이 정녕 음란하다면 음란물규제로 배포와 전시를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다. 형량도 훨씬 더 높은 아동포르노규제로 소지까지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근간을 뒤흔든다.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만화산업이 최근 아청법의 과도한 적용으로 실업자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 이 글은 11/19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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