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3-08   2635

박경신 교수의 “검열자 일기”가 음란물 유포라는 검찰의 진심

말만으로도 형사처벌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순간 국민 모두가
위축되고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옛날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겨레> 공식 트위터 계정에 내가 ‘나의’ 성기사진을 올려서 기소되었다고 오보를 냈다고 알려줬다. ‘박경신 것이 아니다’라고 제보하겠단다. 그러지 말라고 했다. 재판과 담론의 핵심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서….

다른 신문들도 마찬가지지만 <한겨레>의 진짜 ‘오보’는 성기 소유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사 제목을 “검열자일기, 기소되다”로 뽑아주지 않은 것이다. 미네르바 블로그도 280여편의 경제평론글에서 단 2줄의 부정확한 사실을 찾아내 처벌한 것이고, 이번에 기소된 성기사진도 검열의 기준과 절차를 기록해두던 블로그 ‘검열자일기’에 속한 삽화이다. 법적으로도 음란성은 표현물 전체로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기사 제목은 ‘검열자일기’가 되어야 했다.

물론 나를 기소하겠다는 선(先)의지를 갖고 허점을 찾으려 한 것은 아니므로 미네르바 사건과는 다르다. 그러나 약식기소가 아니라 정식기소를 하여 징역형 구형 가능성을 열어놓은 이유는 ‘검열자’의 행적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네르바 건 기소 이유가 진정 ‘허위사실’이 아니고 ‘미네르바’였던 것처럼.

지금도 주변 인사들이 ‘축하한다. 엠비시대 반정부 인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데 사실 속에서는 열불이 난다. 엠비 비판을 한 적이 없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지난 4년 비판했던 사회현상의 당사자가 되어버려서 그렇다. 보수 쪽이 ‘광우병 걸릴 확률이 10억분의 1’이라고 하면 진보 쪽은 ‘번개치는 날 벼락맞을 확률도 10억분의 1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골프 약속을 취소하지 않느냐’고 답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국민들의 말놀이에 칼을 들고 들어와 죽자고 덤비는 검찰에 대해 나는 일관되게 비판적인 견지를 유지해왔다. 그건 검찰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말만으로도 형사처벌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순간 국민 모두가 위축되고 위축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서로 편가르기를 시작한다. 말을 섞기 시작하면 입장이 다르지 않았을 사람들도 서로 반엠비인지 친엠비인지를 눈치보게 되었다. 이런 취지에서 나는 지난 4년 동안 줄곧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의 폐지도 주장해왔던 것이고, 그 형사처벌을 이행하는 악역을 검찰이 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검찰도 내 도마 위에 오른 것이지 검사들에 대한 어떤 반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검사들이 국민의 재산·생명·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미네르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 <피디수첩>(광우병 보도) 사건들도 모두 그런 취지에서 법정진술도 하고 논문도 여러 편 쓰고 했는데, 결국 나도 말만으로 감옥에 갈 처지에 놓여 있으니 참 약이 바짝 오른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위로의 뜻으로 ‘축하’해주는 것이지만 이들도 하도 많이 당해서 그런지 말과 감옥의 연관성을 내화한 것이 아닌가 노파심이 들기도 하는데 이 상황에서 이제 <한겨레>가 이런 유머러스한 퍼포먼스를 해주시니…. ‘유쾌하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라고 믿고 나도 그냥 웃고 살긴 하겠지만, 감옥과 말의 관련성을 끊어놓지 않으면 진보-보수 편가르기는 엠비정부 이후에도 지속될 거라는 나의 법사회학적 신념은 변함이 없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들의 두뇌 속에 들어와 정사(正史)나 정설을 세워놓고 복종과 거부 중 선택하라고 하는 순간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궁핍해지고 진화는 마비된다.

다들 올해 선거 이후를 걱정한다. ‘노무현·김대중 정부 때는 우리가 행복했는가.’ 나는 다른 이유로 걱정이다. 이렇게 편이 갈라진 상황에서 무슨 창의력이 발휘되겠는가. 나도 감옥에 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무런 ‘노출’ 없는 경제학적 통찰만으로도 미네르바는 100일간 구속되었고 단지 회사의 광고정책이 맘에 안 들어 그 회사 물건을 안 사겠다고 했던 언소주 운동가도 60일 구속되었다. 최근에는 박정근씨도 오브제아트 작품 ‘사물을 보는 김정일’과 비슷한 감성의 (아마추어?) 온라인 포스트모더니즘 행위예술로 구속되었다. 나도 충분히 자격이 있지 않은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 글은 2월 29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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