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표현의자유 2014-01-15   1338

[기고] 위헌적 규정…통신심의, 이대로 안녕한가?

위헌적 규정…통신심의, 이대로 안녕한가?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규정 개정 현장을 지켜보며

 

예상대로 였다. 그러나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1월 9일 전체회의에서 방송과 통신 심의의 근거가 되는 규정들을 개정했다. 이번에도 역시 ‘6대 3’이라는 고질적인 ‘마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부 여당 측 추천 위원 6명과 야당 측 추천위원 3명의 공방 끝에 ‘늘’ 그렇듯이 일방적인 6의 승리로 끝났다.

새로 전체회의에서 통과되어 15일 관보게재하고 시행되는 통신심의규정은 한마디로 위헌적이다. 방심위가 지금까지 인터넷 게시물의 불법성을 판단하고 삭제, 차단조치 등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하는 근거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제44조7>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방통위설치법) 제21조>다.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 통신심의규정일 터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통신심의규정은 방심위가 2008년 5월 출범하기 전 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규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따라서 근 10년 넘게 옛 정통부 때의 규정을 사용하여 온 셈이라 시대적, 기술적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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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9일 오후2시 30분 방송회관에서 언론노조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방통심의위의 심의규정개정 철회를 촉구했다(사진=언론노조)

게다가 심의규정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통위설치법 제21조에서 위임한 직무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시행령 상의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 이른바 “불온통신”에 대해 명확성의 원칙 및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따르면 통신심의규정상의 다수의 조항들은 위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제5조의 ‘국제평화질서위반 정보’, 제6조의 ‘헌정질서위반 정보’ 등은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할 만큼 범주가 모호하고 포괄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정조치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게시자에게는 자신의 게시물이 삭제, 차단되었는지 통지도 하고 있지 않다. 통지가 없으니 항변할 기회조차 없다. 행정기관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때는 그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지난 5년간의 방심위는 이와 같이 위헌적인 심의규정에 근거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게시물에 대한 삭제, 쓰레기시멘트의 위험을 알린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의 게시글 삭제, 김문수 경기지사 친일적 발언 비판 게시글 삭제 등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왔다.

이번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통신심의규정”은 지금까지의 것보다 한 치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전부터 지적해 온 법률의 위임한계를 벗어난 점은 여전하고 제재조치의 대상자인 포털 등에게는 있지만 정작 시정요구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게시자에게 사전이든 사후든 통지하는 절차, 의견제시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방심위가 최근 사법부의 의미 있는 판결들, 적어도 2002년 전기통신사업법의 이른바 “불온통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2012년 방통위 설치법의 “건전한 통신윤리”의 합헌결정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방심위도 보도자료를 통해 “심의기준의 명확성을 강화하고, 방송․통신 환경의 변화를 심의규정에 반영함으로써, 국민과 관련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이번 심의규정 개정의 필요성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심의 대상을 규정하는 안이 여과 없이 통과되었다. “국익에 반하거나”, “건전한 법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등 모호하고 포괄적인 조항을 신설해 자의적 해석의 여지는 더욱 많아졌고, 삭제, 차단 등 시정요구의 대상이 되는 게시물의 작성자에게는 여전히 통지 및 의견진술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표현에 대해 심의하는 것 자체가 우리 헌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검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지적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표현에 대한 검열이 금지되는 이유는 표현물이 표현되기도 전에 차단되는 점과 위축효과 때문이다. 위축효과란 합법적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으로 판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표현 행위를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 이전에 내려지는 행정기관의 판단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잠정적인 판단에 의해 표현이 차단되고 억제된다면 이는 가히 검열의 효과와 맞먹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위임한계를 벗어나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심의규정들은  예측가능성을 높이기는커녕 무엇이 해도 되고, 무엇은 해서는 안 되는 표현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유해성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나 유해의 가능성만으로 표현물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조화될 수 없다”는 2002년 헌재의 결정은 방심위 위원들에게는 그저 한낱 선언에 불과한 것인가?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방심위 의사결정과정이다. 이번 통신심의규정이 의결되는 과정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허울만 썼을 뿐이지, 심하게 말해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알다시피 현재 방심위 위원은 전체 9명으로 대통령이 3인, 관련 국회 상임위에서 3명 그리고 국회의장이 3명을 위촉한다. 이러다 보니 항상 정부여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이 6, 나머지가 3명의 야당 추천위원이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위원 9명이 각각 토론을 통해 설득과 타협을 통해 심의와 결정에 임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방청을 해 본 결론은, 매번 일방적인 “다수 의사의 관철”이라는 결론이었다. 정치적인 사안, 권력의 문제가 안건으로 상정되었을 때 예외 없이 이 6대 3 구조의 맹점이 재연되었다. 아무리 헌재의 결정문을 눈앞에 들이대도, 관련 법률과 합리적 논거를 제시해도 정부 여당측 추천위원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6대 3의 구도라면 그 어떤 설득과 타협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니 방심위 해체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 이 글은 2014년 1월 15일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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