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표현의자유 2013-10-25   1256

[후기] ‘인터넷 게시물 지울까요,말까요? ‘모의통신심의 위원으로 참가해 보니

인터넷게시물 삭제할까요,말까요? 모의통신심의위원들20131019

모의통신심의 위원으로 참가해 보니

추상적이고 모호한 심의규정도 문제지만 내 글도 언제든지 삭제될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 엄습

 

이현정 참여연대 인턴12기

 

지금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누리고 있다’고 하지 않을까.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은 언제, 어디서든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 유신 독재 시절 사람들은 국가의 검열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검열도 생활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금지곡, 금서는 물론이거니와 내 생각을 스스럼 없이 말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캄캄한 지하실로 끌려가야 했던 그런 시절이 불과 3-40년 전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시민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은 엄청나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읽고, 쓰고, 때에 따라서는 유통하는 인터넷 상의 정보들이 사실 국가에 의해 검열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잘 알려져 있지 않다기보다는 오히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심의라는 포장 안에서 우리를 검열하고 있는 것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표현의 자유 페스티벌 넷째 날, <모의통신심의>에 모의심의위원으로 참가했다. 10건의 안건이 이 날 논의의 대상이었다. 모의심의가 다 끝나고 난 후에 안 사실이었는데, 안건 모두가 실제로 통신심의위원회에서 삭제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고 한다.

심의가 시작되고, 12명의 위원들이 안건을 보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으며 다양한 생각이 오갔다. 사실 위원들 각자의 손에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이 들려 있었고, 처음에는 단순히 ‘규정’이 내 손안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것을 의식하게 되고, 들춰 보게 되었다. 그러다 모의심의는 이 규정과 심의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직접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므로 규정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이후 더 활발한 논의가 전개될 수 있었다. 

전체적인 심의 과정에서, 항상 의문을 갖게 한 것은 안건으로 상정된 게시물도, 사진도 아닌 바로 ‘규정’이었다. 이 규정은 첫째, 모든 국민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한 안건은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다고 하는 소설이었는데, 음란물로 분류되어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이 소설은 ‘사회통념상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하고 성적흥분을 유발하고……’로 시작되는 심의규정 제8조 1항에 의해 제재를 받았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을 말할 수는 없겠으나, 소설이 아무리 음란하더라도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접하는 인터넷 뉴스 양 옆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민망한 광고들만 하겠는가.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최근에는 음란과 폭력이 노골적인 경우가 빈번한데, 방송이 일방적인데 비해 인터넷은 직접 클릭해 들어가야 하는 이용자의 적극성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방적인 방송보다 파급력이 적다고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올려진 소설에 대한 삭제 조치는 마땅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일부 위원들은 해당 소설에 대해 나름(!!) 잘 쓰여진, 어느 정도 예술성이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둘째, 규정은 너무 소심했다. 규정이 소심했다고 보아야 할 지, 이를 적용하는 심의위원들이 소심했다고 해야 할 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긴 하다. 물론, 법이나 규정이 미래에 있을 법한 위험들을 미리 예측하고 제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만약 그 제재가 너무 자의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예로, 초등학생이 개인 블로그에 폭발물 제조법을 게시했는데,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는 이유로 삭제된 게시물이었다. 이것이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과 여러 정황으로 보아 모의심의위원들은 삭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단순히 폭발물 제조법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삭제했다면, 도서관에 있는 수 많은 화약, 폭탄 제조방법과 관련한 도서들은 진작에 폐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셋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규정이다. 규정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여 의도한 대로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했다. 과연 이것이 정말 헌정질서를 위반했는가, 과연 이것이 정말 풍기문란을 조장했는가, 과연 이것이 미래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가 하는 모든 것들은 심의위원 개인의 ‘선택’에 따라 좌우될 경우가 너무 많아 보였다.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이 정말 명예훼손인지, 어떤 게시물이 정말 혐오감을 주는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조항이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 보였다.

약 2시간에 걸친 <통신모의심의>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떠돌았다. 통신심의규정에 대한 문제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올린 글들도 얼마든지 삭제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 검열이 곧 자연스럽게 자기 검열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정말 심각한 테러나, 혐오, 과도한 모독이 아니고서야 그것을 국가가 나서서 심의라는 명분 하에 검열하고,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런 고민들과 함께, 헌법 제21조의 언론•출판의 자유가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생활 속에서 적용되어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요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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