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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1.12.27
  • 2968

허위사실공표죄에 ‘허위’라는 판시가 없다 - 선거에서 진실을 추방하다

 

정봉주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도 명예훼손죄와 마찬가지로 허위에 대한 규제이며 나는 다른 허위규제와 마찬가지로 허위에 대한 입증책임이 왜곡되어 있다고 본다. 즉 허위여부를 판시하기 전에 발화자의 성실성 즉 ‘말한 사람이 자신의 말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있는가’ 판단을 먼저 하거나 그러한 성실성 판단 만으로 사건을 종결짓는다. 나는 이러한 입증책임의 왜곡은 전적으로 판사들이 형법 제307조 제1항 진실적시명예훼손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명예훼손에서 진실이든 허위이든 법적 책임을 부과할 수 있으니 재판의 포커스가 허위 여부가 아니라 발화자의 성실성이 되어 버린다. 이런 태도는 공직선거법상 허위규제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봉주 판결문에서 그 논리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우선 대법원은 허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검사가 가지고 있음을 확정적으로 말한다.

 

“공직선거법 제250조제2항 소정의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검사가 공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것이 필요하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위 죄가 성립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그 증명책임의 부담을 결정함에 있어 어느 사실이 적극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증명은 물론이고 어느 사실의 부존재 사실의 증명이라도 특정기간과 장소에서의 특정행위의 부존재 사실에 관한 것이라면 여전히 적극적 당사자인 검사가 그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할 의무를 부담한다(대법원 2003.11.28 선고 2003도5279 판결, 대법원 2004.2.26. 선고 99도5190판결, 대법원 2006.11.10. 선고 2005도6375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의 논리 모순

 

게다가 다음과 같이 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의혹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민주주의 정치제도 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이고 그것이 선거과정에서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공직선거에 있어서 후보자의 공직담당 적격을 검증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므로 그 적격검증을 위한 언론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후보자에게 위법이나 부도덕함을 의심하게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하며, 공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쉽게 봉쇄되어서는 아니된다.”

 

후보자에 대한 의혹제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 재판에서는 더욱더 허위입증책임을 검사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바로 뒤에, 위 두 문단에 할애된 종이가 아까울 정도의 법리 전개가 나온다.

 

“한편, 근거가 박약한 의혹의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비록 나중에 그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더라도 잠시나마 후보자의 명예가 훼손됨은 물론 임박한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오도하는 중대한 결과가 야기되고 이는 오히려 공익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되므로, 후보자의 비리 등에 관한 의혹의 제기는 비록 그것이 공직 적격 여부의 검증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제한 허용될 수는 없고 그러한 의혹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어야 하며, 그러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그 의혹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이를 벌할 수 없다 (대법원 2003.2.20 선고 2001도613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7.7.13. 선고 2007도2879 판결 등 참조)

 

위의 문단을 잘 읽어보면 ‘근거가 박약한 의혹제기는. . . 유권자들의 선택을 오도한다’고 한다. 얼핏 문제없어 보이는 문장이지만 심각한 오류가 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허위에 오도되는 것이지 ‘근거의 박약’에 오도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허위’라는 중요한 요소를 빼놓고 발화자의 성실성 만을 문제삼고 있다.

 

비리의 가벌성과 비리행위자의 권력이 강할수록 비리의 비밀성은 더 높을 것이고 비밀리에 저질러진 비리일수록 의혹제기자가 접한 근거는 박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비리에 연루된 자가 중요한 선거의 후보자일 때 근거가 박약할수록 의혹제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선거 때는 심각한 비리일수록 의혹제기를 하지 말라는 명령과 같다.

 

선거 때는 심각한 비리일수록 의혹제기를 하지 말라?

 

혹자는 위 문단이 ‘허위인 경우에만 그러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문단이라고 선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뒤의 문단을 읽어보면 그런 희망적 해석은 불가능함을 알 수 없다.

 

허위사실공표죄에 있어서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검사는 제시된 그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서의 증명을 할 수 있다. 이 때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위 법리에 비추어 단순히 소문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허위성에 관한 검사의 증명활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정도의 구체성은 갖추어야 하며, 이러한 소명자료의 제시가 없거나 제시된 소명자료의 신빙성이 탄핵된 때에는 허위사실 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 (대법원 2005.7.22. 선고 2005도2627 판결, 대법원 2009.3.12. 선고 2008도11743 판결 등 참조) (편자 주 - 같은 취지의 내용이 위에서 강조된 200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나와 있음.)

 

대법원은 놀랍게도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 허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결국 의혹제기자에게 전환시켜 버렸던 것이다. 의혹제기자에게 의혹이 진실임을 소명할 의무를 부과하고 검사가 이를 탄핵하기만 하면 허위사실공표죄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검사는 허위임을 직접 입증할 필요가 없이 의혹제기자가 제시한 근거를 탄핵만 하면 된다. 대법원이 이런 기준으로 원심과 항소심의 사실판단을 수긍하였기 때문에 필자는 정봉주의 대법원 유죄판결에 ‘허위에 대한 판시가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원심판결과 그 채택증거를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제시한 소명자료의 신빙성이 탄핵된 반면 피고인이 직접적인 표현 방법 또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 방법으로 공표한 ‘이명박 후보자가
허위사실공표죄에 ‘허위’라는 판시가 없다 - 선거에서 진실을 추방하다 김경준과 공모하여 주가조작 및 횡령을 하였다는 사실’, ‘이명박 후보자가 BBK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허위임이 증명되었으며, 피고인의 이명박 후보자에 관한 의혹제기가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근거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경우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것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허위의 증명’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혹자들은 말한다.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의혹제기를 신중하게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헤서 허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한다는 것은 ‘진실이라도 증거가 없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 되고 결국 선거를 진실에 있어서 궁핍하게 만들 뿐이다.

 

선거는 진실의 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고 긴절한 시점이라는 것에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진실의 추구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증거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의혹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을 가장 잘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빛 속으로 걸어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가 BBK주가조작 여부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은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겠는가? 바로 이명박을 포함한 BBK관련자들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진실을 밝힐 동기가 전혀 없다. 결백하다면 결백하니 밝힐 이유가 없고 잘못을 했다면 더욱 밝히길 거부할 것이다. 이들이 침묵을 포기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들이 침묵의 장막을 뚫고 나온 미미한 단서에 근거해서라도 의혹을 제기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입증책임을 바꿔서라도 의혹제기를 힘들게 하지 않으면 ‘선거판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걱정을 가장 잘 해소하는 방법이 바로 가장 의혹을 쉽게 해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명할 수 밖에 없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공표죄를 포함한 대부분의 명예훼손성 허위규제에서 진위를 잘 밝힐 수 있는 사람은 항상 말의 대상이 된 사람이다.

 

물론 “A는 X를 했다”라는 의혹제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A는 X를 하지 않았다”라는 소극명제를 입증해야 하고 이게 만만치가 않다. 누군가 무턱대고 “박경신이 호스트바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의혹제기를 하면 나도 당장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입증하기 쉬운 사람은 결국은 A일 수밖에 없고 박경신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법원들도 수십년 수백년을 걸쳐 실험을 해보다가 결국에는 검찰이 입증책임을 지는 것으로 확정하였고 우리 대법원도 일반론으로는 검찰이 입증책임을 가져야 함을 호기롭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아랫것들"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

 

그런데 그 호기가 선거법에서는 흔적없이 사라져 200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고 이상훈 대법관은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판례 하에서는 BBK관련자들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백번 유리하다. 허위사실공표죄를 수사하는 검사도 의혹제기자의 근거가 충분했는지만 조사하면 되지 실체적 진실을 밝힐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당연히 의혹제기자는 백번 불리하다. 그럼 진실은 누가 밝히는가? 선거에서 진실이 간절하다면서 도리어 진실을 위한 투쟁이 선거판에서 추방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누군가 자신에게 근거없는 의혹제기를 할까봐 밤잠을 못 주무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왜 내가 “호스트바에서 일한 적이 없다”는 추정으로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가? 고려대 교수라서? 특정 대학 출신이라서? 외관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것부터가 위선이고 편견이다. 나아가 모두가 ‘나는 소수가 아니다’는 추정 속에 살려는 욕망이 바로 소수에 대한 차별의 토양이다. 그래서 모든 차별은 원래 자기증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자기증오 속에서 명예훼손죄 모욕죄는 태어났다. 이 법들이 모두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는 "아랫것"들을 처벌하기 위해 시작된 법임은 역사적 사실이다.

 

선거에서 진실을 추방한 자들, 편히 주무시길 ?!

 

명예는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제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의혹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주장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오늘도 편히 잠을 잔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마음껏 몰아세울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기에 나는 편히 잠을 잔다. 대한민국에서는 모 의원이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해서 근거없는 주장을 했다가 당한 돌팔매질 못지않은 비판의 자유가 허용된다는 사실에 나는 편히 잠을 잔다.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호스트바종업원과 같은 소수의 한 명(아니 강간범이라도 마찬가지이다)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받는 것 자체를 끔찍하게 여길 정도로 나 스스로 ‘완벽한 다수’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편히 잠잔다. 그런 두려움에 잠을 못 주무시고 명예훼손죄 모욕죄를 사수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공직선거법에서는 허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시켜서 ‘증거가 없으면 침묵하라’는 법리로 정봉주를 감옥에 넣고 "선거에서 진실을 추방한 분들", 편히 주무시길.

 

* 이 글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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